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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디딘 그곳이 무대

오스카어 슐레머, 난간 위의 장면 (1931)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난간 위의 장면 (Scene on the Banister)

- 작가 : 오스카어 슐레머 (Oskar Schlemmer)

- 제작시기 : 1931년

- 전시장소 :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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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은 친근하고 따뜻함이 느껴졌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눈코입이 가깝게 모인" 인물군상은 마치 20세기 미국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모습이고, 그들의 피부와 의복에서 느껴지는 색감도 편안해보인다. 게다가 크지 않은 작품 내에 7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적당한 원근감과 균형감이 느껴지는 배치여서 더 편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조금 더 집중해서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살짝 위화감이 느껴진다. 이 위화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되짚어보니 모든 인물이 무표정으로 서로를 외면하고 있는 것에서 오는 정서적 거리감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은 한 공간에 있는데 서로 연결된 것 같지는 않다. 쉬운 말로 "안 친해 보인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계속 들여다보았다. 분명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따로 노는 건 아니다. 공통점을 찾았다. 모든 인물이 난간을 잡고 있다. 누군가는 팔을 잔뜩 구부려서, 누군가는 팔을 펴서, 누군가는 가슴 높이의, 누군가는 허리춤 높이의,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하여튼 난간을 잡고 있는 행위는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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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면이 떠올랐다. 마치 공연을 시작하기 전 '칼군무'의 준비 자세를 잡고 무표정하게 숨을 고르는 댄스그룹처럼, 커튼이 열리고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기 직전의 뮤지컬 극단처럼, 이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하나의 행위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개인을 뜯어보면 서로 연결되지 않은 개체이지만, 캔버스 전체의 '장면'으로 보니 이들은 큰 틀에서 연결되어 있다. '칼군무'를 준비하는 댄스그룹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표정을 감추어도 우리는 그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 그래서 제목에 굳이 장면(Scene)이 들어가나보다.


오스카어 슐레머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며,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하고 무대도 연출한 다재다능한 예술가이다. 그는 모든 영역에서 마치 무대를 연출하듯 "하나의 목적 아래 종합적인 균형과 안정감 있는 구도"를 추구했다. 그의 세계관에서는 인간이든 사물이든 전체적인 구도를 연출하는 동등한 피사체였다. 일절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의 안정감 있는 구도를 완성하는 이 작품도 이러한 세계관에 맞닿아있다.

슐레머는 당시 독일 사회를 지배한 환경적 요소들, 가령 1차대전 패전 후 피폐해진 환경, 산업화와 도시화로 희미해지는 유대감, 실용과 합리 속에서 새로운 미적 질서를 갈구한 모더니즘 정신 등을 적극 포용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은 어떠한 인간성도 표출하지 않아 온기를 느낄 수 없지만, 그들이 하나의 공간에 하나의 목적의식을 공유하는 것으로서 유대감을 내포하고, 화려한 장식이나 색채 없이 오직 사람과 사물의 배치만으로도 긴장감 있는 균형감을 연출하였다. 결국 그가 추구하는 것은 "완벽한 형태의 구도"이지만, 그 속에서 균형잡힌 구도의 서사를 채워줄 연출이 가미되는 셈이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만약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애니메이션 스타일이 아닌, 사실적인 인체 비례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다면 어땠을까? 같은 배치와 구도로 같은 균형감을 연출할지언정 이 느낌은 아닐 것 같다. 오히려 징그럽거나 기괴한 느낌이 들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애니메이션을 연상케하는 친근한 화풍 덕분에 이 작품은 빛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약 100년 전 슐레머가 살았던 세상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점점 더 파편화되는 개인, 그것을 조장하거나 권장하는 사회, 딱히 달라진 게 없다. 그래도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의 목적을 공유하며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는 우리 주변의 느슨한 유대감은 여전히 살아있다. 우리가 일상을 영위하는 이 공간, 지금 우리가 발을 디딘 이 자리가 하나의 무대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합리적인 조화를 추구하며 균형을 찾아간다. 슐레머처럼.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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