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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부캐'가 있었다면

프란시스코 고야, 전쟁 (1808)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전쟁 장면 (War Scene)

- 작가 :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 제작시기 : 1808년

- 전시장소 : 부다페스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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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고야는 18세기 후반 스페인에서 가장 잘 나가는 화가였다. 궁정화가의 신분으로 소위 '높으신 분'들의 초상화를 열심히 그렸는데, 그 수준이 상당히 탁월하여 인기가 많았다. 많은 유력인이 앞다투어 그에게 그림을 의뢰하였고, 당연히 경제적으로도 형편이 괜찮았다.


하지만 고야는 현실이 썩 내키진 않았다. 가끔 도발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의 문제작 <옷 벗은 마하>는 "최초의 나체화"로 불린다. 그 전까지 신화적 구도를 빌려 벌거벗은 여체를 그리는 화가는 많았지만, 평범한 여성의 알몸을 적나라하게 그린 건 고야가 처음이었다. 이는, 당시 귀족의 의뢰로 개인 소장용 작품을 그린 것인데, 훗날 그림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신성모독죄" 혐의를 받는 고초도 치러야 했다. 이런 에피소드를 보면 "높으신 분"들의 초상화를 멋들어지게 그리는 궁정화가의 내면에 기득권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 반골 기질이 있었던 건 분명해보인다.


그렇게 화가로서 명성을 차곡차곡 쌓던 고야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스페인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끝내고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가 다스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그의 혈육을 스페인 국왕으로 부임시키려는 시도가 있었고, 스페인 국민들이 이에 반대하여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1808년, 반도 전쟁이라는 표현으로 익숙한 스페인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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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은 인정사정 없이 스페인 민중을 학살했다. 고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본 전쟁의 참상을,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방법인 미술로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1808년에 완성된 이 그림이 바로 그 증거다. 무장한 군인들의 총구 앞에 벌써 많은 시신이 보인다. 심지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듯 두 팔을 들고 어딘가에 외치는 사람도 보인다. 사실상 무장한 군인이 민간인을 상대로 하는 일방적인 학살이었고, 고야는 참혹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


흥미로운 것은,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리고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작업실에 놔두었고, 심지어 작품 제목도 붙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야는 전쟁 중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판화의 일종인 에칭화로 그리기 위해 동판에 식각 작업까지 다 마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또한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1814년 뒤에도 고야는 이 작품들을 발표하지 않았다.


나폴레옹 실각 후 다시 스페인 왕실로 복귀한 부르봉 왕가는 고야를 궁정화가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이미 세상의 어두운 면을 즉시한 고야는 예전처럼 화려한 붓놀림으로 "높으신 분"들의 초상을 그릴 자신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때 <옷 벗은 마하>가 발견되어 고초를 치렀고, 처벌이나 제재를 받지는 않았으나 이를 계기로 세상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는 "검은 집"이라 불리는 자신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훗날 이 집에서 고야가 그린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현대미술 저리가라 할 정도의 기괴하고 일그러진 작품들이었다. 고야는 전쟁 중 그린 작품과, 검은 그림들을 그 자리에 놔두고, 홀연히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궁정화가였고 스페인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만약 그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그림을 내놓았다면 그만큼 파급력이 컸을 것이고, 반대로 탄압도 컸을 것이다. 궁정화가라는 그의 신분도 온전치 않았을 것은 물론이다. 그는 전쟁의 참상을 그렸고, 언제든 찍어낼 수 있게 동판까지 만들어두었지만, 끝내 세상에 내놓지는 못했다. 그 상처 때문일까. 아무도 마주하지 않은 채 검은 집에서 내면의 우울과 사투를 벌이다 끝내 고국을 떠났다.


괜한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오늘날 인기인처럼 "부캐"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그래서 궁정화가 고야가 아닌 사실화가 아무개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고야는 보다 건강한 정신으로 전쟁 후에도 작품 활동을 지속하지 않았을까? 역사에 IF는 없으니 부질없는 상상이다. 하지만, 전쟁을 겪은 직후 빠르게 산화하고 만 고야의 재능이 아까운 건 사실이다.


이 작품 <전쟁 장면>(고야는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았고, 그림을 소장하게 된 미술관에서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자 붙인 제목이다)은 차마 발표하지 못할 고야의 전쟁 그림으로서는 초기작에 해당한다. 멀찌감치 떨어진 관찰자의 시점에서 참혹한 학살을 덤덤하게 바라보는 듯하다. 이런 현실을 보았고, 그렸으나, 차마 세상에 보여줄 수는 없었던 한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는 것 같다. 이 또한 전쟁만큼 잔인하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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