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에델펠트, 자작나무 아래에서 (1882)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자작나무 아래에서 (Under the Birches)
- 작가 : 알베르트 에델펠트 (Albert Edelfelt)
- 제작시기 : 1882년
- 전시장소 : 바르샤바 국립미술관
21세기 초 방영된 자일리톨 껌 광고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요즘 표현을 빌어, 제대로 바이럴 되어 "휘바 휘바"를 외치며 잠들기 전 껌을 씹는 게 유행이 되었을 정도니까. 일개 껌 광고 덕분에 낯선 나라 핀란드가 더 친숙해졌다. 비록 광고에 묘사된 핀란드가 현실 고증이 되지 않은 오류 투성이였다는 게 함정이지만.
자일리톨 하면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작나무를 떠올린다. 우리에게 핀란드는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자일리톨을 씹으며 "휘바"를 외치는 흥겨운 나라다. 이것은 명백히 미디어의 파급력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시도가 약 140년 전에도 있었다.
19세기 후반, 핀란드는 러시아 대공국의 지배를 받는 형편이었고 유럽에서 변방으로 인식되었다. 핀란드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던 알베르트 에델펠트는 자신의 고국을 유럽에 알리고 싶었다. 그는 핀란드의 자연과 문화를 사실적으로 그려 파리에서 발표하기를 반복했다. 그림 한 점에 고국의 대서사시를 입체적으로 담아낼 수 없는 노릇. 한국에서 핀란드가 자일리톨로 압축되었듯, 에델펠트는 자신의 그림에서 핀란드를 압축하여 보여줄 아이콘을 택했으니, 그게 바로 자작나무다.
<자작나무 아래에서>는 헬싱키 근교에 있는 에델펠트의 작업실 부근에서 그린 사실적 풍경화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핀란드의 자작나무 숲에서 어느 여름날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는 장면을 그렸다.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도 아니고, 역사적 위인도 아니다. 이름 모를 평범한 소년소녀의 한가로운 시간, 거기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자작나무가 에델펠트의 관심사였다.
파리에서는 보기 힘든 자작나무의 희고 곧은 특이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을 테니 아마 이 그림을 본 유럽인은 그동안 생소하고 낯선 나라였던 핀란드를 "자작나무의 나라"로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자일리톨로 핀란드를 기억하듯이.
나무 그늘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재미있는 걸 읽고 있는지 살짝 미소를 머금은 여자아이, 세상 편한 자세로 누운 남자아이. 여름의 쾌청한 공기가 느껴지는 사실적인 걸작 속에서, 자작나무에 눈길이 가고, 자작나무의 나라 핀란드를 알게 된다. 잘 만든 광고 같은, 핀란드 화가가 핀란드에서 그려 현실 고증도 완벽한 이 그림을 향해 외친다.
"휘바 휘바".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