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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피곤해

율리우스 숄츠, 할머니와 손녀 (1863)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할머니와 손녀 (Grandma and Granddaughter)

- 작가 : 율리우스 숄츠 (Julius Scholtz)

- 제작시기 : 1863년

- 전시장소 : 드레스덴 알베르티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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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중후반 독일 드레스덴에서 주로 활동한 화가 율리우스 숄츠는 사실주의적 역사화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던 중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독일인 은행가 카프헤르(Kap-herr) 가문의 의뢰를 받아 가족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다. 약 4년간 머물며 여러 점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는데, 훗날 자서전에 언급하기를 "러시아 수도(상트페테르부르크)를 구경할 틈도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의뢰인의 그림을 그리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숄츠가 카프헤르 가문의 초상화 여섯 점을 그렸다고 하는데, <할머니와 손녀>는 가장 먼저 완성된 작품이다. 그 제목 그대로 할머니와 손녀가 주인공이다. 다시 말해서, 의뢰인인 은행가의 어머니와 딸이 주인공인 셈이다. 일단 할머니 품에 뒹굴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 어린 딸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귀금속을 야무지개 움켜쥔 손매를 보고 있노라니, 마치 우리가 자녀 돌 스냅사진을 찍을 때 아이가 집중하라고 손에 뭐라도 쥐어주는 것과 똑같아 보여 미소를 자아낸다.


기분 탓일까. 정작 손녀를 안은 할머니는 매우 피곤해보인다. 어림잡아 두 돌쯤 되어보이는 손녀와 하루종일 붙어있을 할머니가 오죽 힘들까. 그 와중에 손녀를 안은 손가락을 보니 그림 그리는 중 도망치지 못하게 힘 주어 붙들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쩌면 이미 한창 실랑이를 마친 뒤일지도 모른다. 다크서클 내려온 듯 짙은 눈매에 피로가 잔뜩 묻어있다. 그래, 육아는 피곤하다.


작가의 의도에 상관없이 이렇듯 내 마음대로 등장인물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이 작품이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잘 그려졌다는 걸 뜻한다. 두 눈과 온 몸에 두른 장신구에서 빛이 반사되는 것까지 또렷하게 표현할 정도로 숄츠는 빛과 그림자를 사실적으로 포착했다. 스카프의 주름과 매듭에 맺힌 그림자까지도 몹시 생생하다. 화사한 색조의 연출로 따뜻한 분위기를 담아내 가족의 단란한 한때를 느끼도록 한다.


마치 우리가 가족사진을 찍듯이 가족의 단란한 추억을 포착해 기록으로 남겨두는 이 작품이 어떤 경위로 가문의 저택을 나와 드레스덴 미술관에 소장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족의 유대감과 따스한 정서는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훗날 구동독에서 정권수립 기념우표를 만들 때 이 작품을 도안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공산주의 정권이 <할머니와 손녀>에서 엿보이는 따듯한 감정선과 가족간의 유대를 프로파간다로 선전하였다는 뜻이니 숄츠의 실력이 그 정도로 대단하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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