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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 시작은 한 우물 파기

by 인문학도 최수민 Feb 25. 2025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융합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 이런 얘기들 많이 합니다. 융합형 인재가 어떤 건지 보니, 수학 문제도 잘 풀고, 과학적 사고력도 갖추고, 인문학적 소양까지도 갖춘 뭐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뛰어나면 상당히 창의적인 사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4차 산업혁명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융합형 인재를 얘기할 때 직업 얘기를 많이 합니다. 앞으로는 직업을 여러 번 바꾸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만 잘해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이죠. 그래서, 융합형 인재가 되려면 뭘 해야 할까요?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두루 갖추어야 한 분야를 통달하는 데 유리하다는 뜻이겠죠.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이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여러 분야의 지식을 갖추어 놓으면 한 분야를 공부할 때 새로운 자극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런 말이 힘을 얻어서 다양한 분야에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전공은 물리학인데 논리학 수업을 듣는다든지 말이죠. 학교에서도 장려하는 태도입니다.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죠.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전공은 인문학이지만 수학, 교육학 수업도 일부로 듣곤 했습니다.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정말 실질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러한 노력이 겉핥기식 노력이 되지 않으려면, 우선 한 분야를 제대로 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토를 넓히려면 먼저 튼튼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야겠죠. 튼튼한 보금자리가 중심이 되어야 멀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갔다가 돌아와서 쉬고 다음날 또 나갈 수 있고, 적과 싸워서 지면 돌아와 재정비할 수 있습니다. 보금자리 없이 그냥 돌아다니기만 하면 어제 내 땅이었던 게 오늘 남의 땅 되고, 오늘 내 땅이었던 게 내일 남의 땅 됩니다. 의미 없이 돌아다니는 게 되는 거죠. 즉 한 분야를 먼저 내려다볼 줄 알아야 다른 분야의 지식을 접했을 때 제대로 써먹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글쓰기 수업 때 모둠 주제가 '인공지능'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요약 과제로 골랐던 책이 '다정한 인공지능을 만나다'(장대익)였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 중 하나가 '공감'이어서 인공지능의 공감을 주제로 기말 보고서를 쓰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철학과 인공지능'이라는 동영상 강의를 본 적이 있어서, 내용을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다시 들었습니다. 이 하나의 강의를 제대로 팠기 때문에 공감이라는, 제가 잘 모르는 주제를 의미 있게 남길 수 있었습니다. 영토를 확장한 것이죠. 저는 '공감하는 인공지능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검토'라는 기말 보고서를 완성했습니다.

  융합형 인재가 별로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융합형 인재에 대한 접근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여기저기 기웃거려 가지고는 안 됩니다. 잡지식만 많아질 뿐입니다. 흡수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한 우물을 먼저 파 놔야 그때부터 융합이 시작됩니다. 다른 분야의 지식을 내가 잘 아는 분야에서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가 보입니다. 제가 이렇게 주장하긴 했지만 사람마다 공부하는 스타일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스타일로서 참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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