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잔인해진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잔인해진다. 개에게 그렇다.

by B CHOI


동거를 위한 폭력.

지금은 보지 않아 마음이 편하다. 한때 개를 소재로 한 연예 프로그램이 있었다. 인기가 많았다.


전문가는 고집이 센 개를 만난다. 그리고 아주 강압적인 방법으로 개를 제압한다. 개는 자기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주인마저도 외면해 버린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발버둥 치고 절규한다. 피를 흘리기도 하고, 숨을 못 쉬기도 하고, 배변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개는 꼬리를 내린다. 이 잔인한 과정을 방송은 여과 없이 보여준다.


변명은 한결같다. 우리가 너랑 같이 살기 위하여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네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잔인함은 너와의 동거를 위하여 네가 감내해야 할 과정이란 것이다.






남미의 동거방식.

남미의 개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냥 평생을 개로 살다가 개로 죽는다.

우선 개를 집에서 기르지 않는다. 견주는 개를 거리에 내놓는다. 그러면 사회가 개를 기른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개에게 밥을 주고, 개에게 쉼을 준다.


우리가 개를 일대일 개인이 양육한다면, 남미는 사회가 개를 양육한다.

개는 개인소유이지만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종의 강아지 공개념이 성립한다.

그래서 남미의 개들은 목줄도 하지 않고, 앉아 짖지 마 기다려 훈련도 없다.


사람들은 개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위로를 받고 싶으면 그냥 지나가는 개에서 선을 베푼다. 부담이 없다.






사랑이란 이름의 소유.

거의 모든 견주는 개를 사랑한다. 가족이라고 한다.

그러나 만일 동물애호가들이 한국의 개 생존 환경을 본다면 기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개는 아파트나 공동주택에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동물이다.

사람이 살기에도 넉넉하지 않은 공간에, 개까지 함께 살자면 모두에게 스트레스이다.


개는 짖는 것이 언어이다. 개에게 짖지 마 훈련은 침묵수행을 강요함과 다름없다. 성대수술을 한다면 사람에게 혀를 잘라내는 것과 다름없다.

개도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하다. 감정이 있고, 좋고 나쁨이 있다.

목줄에 끌려 잠깐의 산책으로 그 욕구가 해소되지 않다. 개는 뛰고 싶다. 친구들이랑 산이나 들을 달리고 싶다. 사냥도 하고 싶다. 열매도 먹고 싶다. 자고 싶고 쉬고 싶다.


사랑하기 때문에, 집안에 머물게 하고, 침묵하게 하고, 배변하게 하고, 훈련하고, 개인기를 가르친다.







사랑하기 때문에 잔인해진다.

그 애의 이름은 BB이다.

몰티즈 남자이다. 이 아이가 요즘 엎드려를 하지 않는다. 간식을 눈앞에 두고 엎드려하면 엉거주춤하는 척만 한다. 단청을 부리면서 온몸으로 아니꼽다는 표현을 한다.

BB 씨 나이가 14살, 사람 나이로 90 임을 감안하면, 그 노견에게 간식하나 주면서 앉아 엎드려하는 내가 스스로 보기에 참 비루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잔인했다. 14년 동안이나 개를 감금했다.

허락 없이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짖지 못하게 했다. 주어진 것 이외엔 먹지 못하게 했다. 하염없이 억압하고 통제하고 훈련하려 했다.

비비야 미안해.






사람은 개를 기르며 폭력을 배운다.

전문가는 어린아이와 강아지를 함께 키울 때, 서열을 정해 준다는 핑계로 아이 앞에서 강아지를 훈계하지 말라고 권한다. 아이가 강아지에게 폭력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강제하고 리드하는 취향을 습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지배하고 잔인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떠나간 개는 아름답다.

개를 기르는 것이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있고,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란 나의 선입견은, 깨졌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믿음이 커 졌다, 남미에 오고 나서 그 개판을 보고 생긴 일이다.


남미 페루의 벌판을 가다가 만난 한 농가에서 텅 빈 개집을 보았다. 개 집 앞에 이름표까지 있었다.

농부의 말로는 개가 떠나갔다는 것이다.


왜 목줄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려다 참았다. 그런 질문은 이 남미 외딴 마을 농부에겐 어울리지 않는 너무 저열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는 돌아오면 좋지만, 어디선가 더 좋은 곳에서 더 잘 살고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며 웃은 촌부의 얼굴에서 남미인들의 인생관이나 우주관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랑한다면,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떠나간 개도 아름답다.

훈련시켜서 함께 사는 것만이 행복은 아니다. 소유하고 지배하려 한다면, 가르치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남미에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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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Feb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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