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교대식이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있었다. 아니다. 거긴 달랐다.
산티아고 대통령궁
호텔이 대통령궁에서 멀지 않았다.
대통령궁 앞에는 광장이 있다.
거기엔 말을 탄 경찰들이 경비를 선다.
나는 산티아고에 머무는 동안에 매일 이곳을 지나가야만 했다.
난 대통령궁에 근무교대식을 하는 것도 몰랐다.
그냥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광장이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계획할 요량으로
거리를 걷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근무교대식이다.
근무 교대식은 남성적이다.
비록 여성군인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남성적이다.
칼각이 잡힌 군인들의 행진과 광장을 울리는 복창소리는 나에겐 향수이다.
나는 한때 군인이었다. 대한민국 육군의 예비역 병장이다.
기마병들이 앞장을 서면 군악대가 뒤 따르고, 그 뒤로 초병들이 행진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나라들의 교대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개의 밴드
밴드가 크다. 두 개다. 하나는 부라스밴드이다. 행진하기에 적합한 신나고 씩씩한 금관악기와 타악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한 개의 밴드는 아주 소프트하다. 감미로운 소리가 난다.
근위병들의 근무교대가 끝나면
군악대의 연주가 시작된다.
에레스 뚜라든가. 예스터데이 같은 올드 팝들의 연주가 이어진다. 연주는 한참이나 계속된다.
연주의 수준은 최고이다.
그냥 음악회이다,
남미에서 느끼는 감정의 호사.
소리가 때론 보이기도 한다. 소리가 손에 잡힐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소리는 연기처럼 피어나서
아침 한때 광장을 메우고 은은히 남미의 하늘로 춤추며 사라져 간다.
딱딱하고 각진 군인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은은하고 감미롭다.
레퍼토리는 시대를 건너뛰며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들이다.
연주는 꽤 길다.
나그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느닷없이 추억을 만난다. 감성지수가 올라간다.
칠레 정부의 선물
시민과 관광객들은
군악대와 하나가 된다.
근위병과 기마병과 군악대가 차례로 자리를 떠난 후에도
광장에 남아서 서 있으면, 그 감미로운 멜로디들이 들리는 것 같다.
칠레 정부가 시민과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선물들 가운데 최고이다.
고맙다.
산티아고의 좋은 추억들 가운데 하나이다.
수준 높은 올드팝의 기억.
21 Feb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