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는 외롭다.

소외, 자발적인 소외. 그것을 위하여 나는 남미에 왔다.

by B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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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두려운 것,

님이 떠난 영안실에서, 혹은 그대가 떠난 길목에 서서

어깨를 들먹이며 오열한다.

지구의 끝 날이 온 것처럼. 마치 내일은 해가 떠 오르지 않을 것 같이 절망한다.


왜 우는 걸까. 왜 절망하는 것일까.

떠나는 님이 안쓰러워 우는 것일까. 아니면 헤어짐의 슬픔을 못 이기고 절망하는 것일까.


유행가 가사를 인용하면 그렇다.

이별도 헤어짐도 떠나감도 견딜만하다. 그것은 그렇게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다.

진짜 슬픈 이유는 그게 아니다. 슬픈 것은 떠난 그대나 눈물이 아니다. 진짜 슬픈 이유는 나 때문이다. 나이다. 혼자 남은 나.

그래서 나는 우는 것이다.



아주 덤덤한 얼굴로 나는 뒤돌아 섰지만 나의 허무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네. 아직 못다 한 말들이 내게 남겨져 있지만 아픈 마음에 목이 메어와 아무 말 못 했네.
지난날들을 되새기며 수많은 추억을 헤이며 길고 긴
밤을 새워야지

나의 외로움 달래야지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은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

-변진섭 님의 ‘혼자된다는 것’의 가사 중 일부.





소외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공포는 늘 있다.

늘 두렵다. 사는 게 그렇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종류가 다르다.

젊었을 때는 지지 않을까, 낙오되지 않을까. 도태되지 않을까의 공포가 크다.

늙으면 소외의 공포이다.

혼자 남는 것.

버림받았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


떠난다.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던 친구. 선배. 후배가 떠난다. 속절없이 떠난다.

죽기도 하고, 병에 걸리기도 하고, 또는 연락이 끊어지기도 한다.

나만 남기고, 이 험한 세상에 나 홀로 어찌 살라고, 떠난다.


나는 안다. 지금은 곁에 있지만 다들 떠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그들도 떠날 것이다.

작별의 인사도 없이...


그리고

그것은 내가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날 그 공포의 순간은 시시각각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소외. 자발적 소외,

두려움으로서는 놀랐을 것이다.

자신이 나를 지배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를 가스라이팅하고 나의 정신과 행동을 조정하는 두려움에 맞서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는 두려움이 나를 장악하기 이전에 내가 두려움을 장악해야 한다.


내가 나 홀로 남미에 온 이유이다.

소외. 자발적 소외.

소외되기 이전에 그 예방주사를 맞으러 여기에 왔다.


여긴 멀다. 내가 여행을 포기하고 집에 가려 한다 해도 이틀 이상이 걸린다. 말도 안 통하고, 말동무도 없다.

여기에서 나는 격리되고 소외되고 혼자이다.





남미는 외롭다.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하여 가방을 쌀 때가 가장 외롭다.

밥을 혼자 먹는다. 혼자 누워 잠을 청한다. 위험에 혼자 노출된다. 문제를 혼자 해결한다.

내 주위엔 아무도 없다. 정을 나누고, 말을 섞고, 술잔을 기울이고, 수다를 떨고, 난관을 함께 헤쳐나가 그 아무도 없다. 나는 혼자이다.

그렇게 남미를 여행한 것이 열흘도 넘었다.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 호텔 방에 어지럽게 소지품을 널려놓고 다시 가방을 싸자니 고독이 엄습한다. 그러나 소외도 즐겁다. 즐길 만하다.

산티아고의 마지막 날에, 호텔 라운지에서 문득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나도 몰래 씩 웃음이 나온다.

견딜만하다.



내가 이별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현상이다. 그 원인은 혼자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 소외에 대한 공포를 이겨낸다면,

다 떠나고 나만 혼자남아도 나는 슬프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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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산타아고여!

나는 파타고니아로 간다.









20 Feb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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