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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 안타깝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by Jaeyoon Kim

능력과 용기에도 불구하고 기회 오지 않아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은 왜 그토록 정은임은 방송국에서 미움을 받았을까, 라는 의아함이다. 나는 방송국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며, 더더구나 방송국 프로그램 편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1995년도에도 그러했고, 2004년에도 똑같은 과정을 밟으면서 그녀의 방송은 그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중단되었다. 정은임씨가 라디오에서 맞이한 기쁨의 순간은 너무 짧았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그 끝까지 가볼 용기가 있었던 그녀가 아직 하고 싶은 것을 채 해보지도 못하고 중단되었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죽음은 이르게 올 수도 있고, 더디게 올 수도 있다. 그건 사람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은임씨는 그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단 한 가지 안타까움, 방송국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기다림으로 보내야만 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비디오를 소개하거나, 혹은 내일의 날씨를 알리거나,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들은 (내가 보기에)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정은임씨는 자신을 컨트롤할 때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기 감정을 고스란히 내보이면서, 세상이라는 실패의 모순에 분노를 느끼면서, 그래서는 안된다고, 그걸 말하기 위해 전력투구할 때 가장 멋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올해 여름은 정말 덥다. 이만큼 더웠던 것은 십년 전이었다고 한다. 그해 여름 매주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헐떡거리면서 여의도까지 갔었다. 나는 그때 당신에게 영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 위해서 일주일 내내 준비를 하고 그곳까지 갔다. 내가 떠들기 시작하면, 당신은 아나운서답지 않게 턱을 고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지금 나는 이제 세상에 없는 당신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이 편지가 당신에게 도착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제 나는 누구에게 나의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누가 그렇게 내 영화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줄까? 세상은 점점 시시해져가고 있고, 나는 점점 쓸쓸해지고 있다.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편지를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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