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답답한 재활의 터널 속으로

by 다이아

2024년 10월 23일(수) [2]


점심 먹고 잠깐 쉬고 나니 금방 2시다.

오후에도 재활은 ing.


어제오늘 해봤다고 재활치료실이 제법 친근하게 느껴진다.

광쌤과 반갑게 인사하며 베드에 앉는다.




14:00~14:30 운동치료 (광쌤)


광쌤과는 어제 수행했던 동작들을 비슷하게 수행한다.


그새 조금 익숙해졌다고 농담을 주고받는다.

슬쩍 마음속에 숨겨놨던 질문을 꺼내본다.


쌤, 저는 언제쯤 걸을 수 있을까요?


"신경손상 환자의 재활 속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그는 말을 아낀다.

나도 입을 다문다.

묵묵히 시키는 운동을 수행한다.




14:30~15:00 작업치료 (빈쌤)


작업치료 시간에 트랜스퍼 요령을 배우고

하루 만에 생활이 훨씬 편해졌기에

오늘은 어떤 수업을 진행할지 더 흥미진진하다.


"트랜스퍼는 별쌤과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저랑은 오늘부터 팔운동을 해볼게요."


팔운동?

팔운동이라고?!

나는 상반신은 멀쩡한데 왜 팔 운동을?!


반발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 기류를 느꼈는지 설명을 덧붙인다.


"당분간은 휠체어 생활을 하셔야 하니...

팔의 근력도 아주 중요해요.


얼마 전에 송지은님이랑 결혼한 박위님 아시죠?

그분 보시면 상반신이 굉장히 좋으시잖아요.

휠체어 생활에 팔운동은 기본이에요.


교수님 지시가 있기도 했고..."


빈쌤은 마지막 말끝을 흐리며 운동용 고무밴드를 가져온다.

휠체어에 앉아 간단한 팔운동을 수행한다.


팔운동...

팔운동이라니...

교수님이 지시하셨다고?

나 못 일어날 수도 있는 거야?




"오늘의 재활은 어땠는가, 우리 딸?"


저녁이 되자 아빠에게서 카톡이 온다.

답변을 위해 수업들을 열심히 복기해 대답해 본다.


"간단한 다리운동과 팔운동, 부축받아 앉았다 일어서기, 휠체어에서 변기에 옮겨 안기를 했습니다!"


대답이 하찮아서 웃기다고 킬킬대다 보니 갑자기 우울해진다.


재활 치료를 시작하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이때의 나도 우울의 늪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물론 재활로 생활은 조금 편해졌다.

하지만 내 몸 상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영구적으로 손상이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던 게 다시금 가슴에 박힌다.


인터넷에 나와 유사한 환자들을 보면 스테로이드 치료 끝나면 금방 걷기도 하던데...

그들과 나는 다른 게 뭐지?




재활과 전과 이후

학생시절로 돌아간 듯 루틴한 생활이 시작했다.

식사, 재활, 휴식의 반복.


내게 재활치료는 명절연휴 오후 느지막이, 고속도로의 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터널에 진입은 했다.

차가 많아 속도는 느리고 가슴은 답답하다.

GPS는 엉망!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이 길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터널 밖에 나가면 어두울지 밝을지도 아리송하다.


"오늘의 재활은 어땠는가, 우리 딸?"


매일 저녁 아빠에게서 카톡이 온다.

내가 고3 수험생일 때도 아빠에게 이 정도로 관심을 받진 못했던 것 같다.


나를 생각하는 그의 사랑과 응원이 약간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재활의 속도가 내 생각보다 매우 더뎠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이 급격히 나빠진 만큼 빠르게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주 큰 오산이었다.


어느덧 밤이 되자 남편이 먼저 잠에 든다.

불편한 보호자 침대에 쪼그려 누워 자고 있는 그이의 모습에 괜스레 눈물이 난다.

눈물을 훔치고 어렵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keyword
이전 14화하지마비인은 하늘을 날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