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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아픈 엄마 속도 모르고...

by 다이아

2024년 10월 22일(화) [3]


오후 5시 30분

산부인과에서 갑작스럽게 협진요청이 왔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휠체어에 올라탄다.

남편이 말없이 휠체어를 끈다.

재활하며 나아졌던 기분이 급속도로 가라앉는다.


고강도 스테로이드 치료와 함께 어느덧 임신 8주 차에 들어섰다.

투병으로 정신없었던 나는...

아기가 유산됐을 거라고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사실 올해 5월에도 7주 차에 계류유산을 겪었었다.

당시에 정말 많이 울었다.

허망한 설렘이 가슴에 흉터처럼 남았다.


그래서 아기가 무사하리라는 기대는 더욱 할 수 없었다.

기대했다가 괜히 마음만 더 아플까 무서웠다.

아기에 대해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주변에서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아기를 생각해라!

엄마니까 더 힘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응원을 참 많이 해줬다.


임신 사실을 주변에 밝힌 것을 후회했다.

후회해야 어쩌나.

내가 저지른 일인 것을.




산부인과에 도착하니 간호사님이 치마로 환복을 요청한다.

하지만 나는 혼자 옷을 갈아입을 수 없는데?


다행히 진료시간 이후라 사람이 거의 없다.

간호사님의 허락 하에 남편과 함께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진료실에 들어간다.


"다이아님~ 치료는 잘 받고 계시죠?"


오늘도 스윗한 산부인과 L 교수님.

안부를 길게 나눌 새도 없이 난관에 부딪힌다.

도저히 진료대에 가서 앉을 수가 없다.


교수님이 침대형 진료대에는 누울 수 있냐 묻는다.

다행히 그건 있었다.


교수님이 초음파 기계를 이리저리 돌린다.

눈앞에 모니터에 아기의 모습이 아른아른하다.


"여기 아기 보이시죠?

정상 주수대로 잘 크고 있네요!


여기 반짝이는 게 심장이에요.

심장소리 한번 들어볼까요?"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아기의 심장소리가 참 빠르다.

내 심장도 덩달아 빠르게 뛴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아기가 아픈 엄마 속도 모르고 쑥쑥 잘 크고 있네요.

당분간 치료에만 전념하시면 될 것 같아요."


L 교수님의 상냥한 미소와 함께

억눌렀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린다.


나, 이번엔 기대해 봐도 되는 걸까?




초음파 사진을 몇 장 받아 진료실을 나왔다.

입체초음파라니!

기술이 참 좋아졌다.

사진 속 아기가 제법 사람 같다.


남편과 서로를 쳐다본다.

둘 다 유산을 각오하고 있었던 터라 어리둥절하다.

괜히 웃음이 난다.


아가야.

너도 힘내고 있었구나.

나도 더 힘내볼게.

우리 같이 이 순간을 이겨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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