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신라 과현, 호산성 습격
안녕하세요, 여러분. 글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 한 가지 얘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썼던 글들을 보니깐 저의 생각보다 호흡이 많이 길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보시는 분들을 위해서 오늘부터는 내용을 조금 줄여서 더 편하게 보셨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중요한 사건 하나만 당분간 다루는 식으로 해보겠습니다! 이전 연재가 더 나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피드백 주세요!
제가 저번 연재에서 시간을 494년까지 보냈습니다. 그 시간을 살짝 뒤로 5년만 돌려보겠습니다. 5년이나 뒤로 돌린 게 살짝인가? 싶으시겠죠. 놀랍게도 고대사, 그것도 삼국시대에서 5년은 순식간입니다. 기본 연구 기간이 20~30년 단위거든요. 박사논문으로 가면 100년 정도입니다! 그러니 살짝이라고 표현한 거죠. 489년으로 ㄱㄱ~
지난 연재를 통해서 삼국이 내정을 다져지는 시간을 가졌다는 걸 봤습니다. 고구려는 백제, 신라를 공격하면서 중국과의 외교에 집중합니다. 백제는 웅진 천도 이후에 혼란했던 정치 상황을 정리하고 내정을 열심히 다집니다. 신라는 성을 열심히 쌓으면서 군사 거점을 만들고 방어 체계를 다지죠. 그러다가 489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마지막으로 신라를 공격합니다.
秋九月, 髙句麗襲北邊, 至戈峴.
가을 9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급습하여 과현에 이르렀다.
冬十月, 䧟狐山城.
겨울 10월에 호산성을 함락하였다.
고구려는 489년 9~10월에 신라의 과현과 호산성을 점령합니다. 과현과 호산성의 위치가 어디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제가 5편에서 연재할 때에 적었던 호명성과 같은 곳이다라는 얘기도 있고요. 고구려에서 지금의 강원도 회양군을 가혜아라고 불러서 과현과 음이 비슷하므로 회양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러 의견이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강원도 홍천으로 봤습니다. 옛날 일제강점기 자료를 찾아보니 강원도 홍천 대미산이란 곳이 호현(狐峴)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보통 옛 지명에서 산, 현, 령은 같은 단어로 통용하거든요. 거기에 대미산에 있는 산성은 고고학적으로 삼국시대에 지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홍천에서 동쪽으로 쭉 가면 평창이 나오는데요.
옛날에는 여기 평창이 강릉, 즉 제가 1편에서 적었던 신라의 하슬라의 일부였습니다. 5편에서 정선~영월을 따라 신라가 산성을 지은 것처럼 평창~홍천에도 따라 지은게 아닐까 추측을 했습니다.
이 전쟁을 마지막으로 고구려의 장수왕은 사망하게 됩니다. 장수왕이 살아있는 동안에 고구려는 신라를 공격할 때, 주로 강원도 쪽으로 공격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 이후로는 더 이상 강원도 쪽으로 공격하지 않습니다. 문자명왕이 즉위하면서 공격 방향을 바꾸게 되거든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나제동맹이 발동하기 시작하죠.
표지사진 대미산 전경:https://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850947
산성벽 사진:https://blog.naver.com/hueruem/221275481968?viewType=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