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봄비 21화

-제21화-

무의식 속 무의식'

by 백운

똑! 똑!

"교수 님. 백광현 환자 보호자 분 오셨습니다."

"네! 들어오시라 해요!"

현미래는 백광현이 수술 후 일반 병실로 옮겨도 될 만큼 괜찮다 해서 금방 깨어 날 거라 생각했는데 일반 병실로 옮기고 며칠이 지났는데 깨어나지 않자 백광현이 왜 아직도 깨어나지 않는지 걱정이 되어서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 면담을 요청했었다.

"네. 어서 오세요! 어떤 점이 궁금하시다고요?"

의사선생님께서 친절하게 물어주셨다.

"네. 선생님. 수술도 잘 끝났는데 왜 아직 안 깨어나는 건가요? 혹시 다른 이상이 있나 해서요?"

현미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 분명 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환자 분께서 깨어나시길 거부하고 계신 거 같습니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선생님.”

“네. 가능합니다. 무의식에서 깨어날 때는 환자 분의 깨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젤 중요합니다. 그런데 간혼 깨어나길 거부하시는 환자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어떤 경우에 그런가요? 선생님 조금만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현미래는 머리가 복잡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현실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으셔서 깨어나길 겁내하시거나, 아님 간혹.........."

현미래의 답답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사선생님은 말을 아끼셨다.

"간혹? 뭔가요? 선생님!"

현미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드물긴 하지만 무의식 속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환자분이 의식이 무의식 세계에서 또 다른 무의식 세계로 가버리게 되죠. 그럼....희박하긴 하지만, 이 경우는 더 깨어나시기 힘드실 수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현미래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그럼,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다는 건가요?"

"네, 말씀드렸지만 백광현 환자분의 경우 깨어나고자 하는 환자분의 의지가 젤 중요합니다.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저희가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코마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될 경우, 다른 방안을 생각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역시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다른 방안이라고 하신다면 뭔가요? 선생님?"



현미래 지금 썩은 동아줄이라도, 아니 작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코마 상태가 길어질수록 더 깨어날 확률은 낮아집니다. 한 달 안에 깨어나시는 게 젤 좋은데.... 백광현 환자 분은 일반 병실로 옮기실 때까지 동공 반응이라 든 지, 뇌파 반응들은 괜찮으셨습니다. 즉, 무의식 상태이시긴 했지만, 아마 본인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 우리가 하는 말이라 든 지, 본인이 일반 병실로 옮겨진다 든 지 하는 사실들을 다 인지하고 계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제 밤 이후 코마 상태가 깊어지셨습니다.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만, 아까 말씀 드렸듯이 무의식 세계에서 어떤 충격을 받으셔서 또 코마에 빠지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흑ㅜㅜ 흑ㅜ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결국 현미래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국내에선 아직 성공 사례가 없긴 하지만 독일에서는 성공 사례가 있습니다. 조금 더 지켜보셔야 명확해지겠지만 지금 서둘러 예약을 잡으시면 확실해지셨을 때, 바로 병원으로 이송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다만......"

의사 선생님은 또, 말을 아끼셨다.

"또 뭔가요? 다른 문제가 있나요? 선생님! 흑......."

이제, 현미래의 머릿속에는 오직 백광현을 깨워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드실겁니다ㅠㅠ 죄송합니다."

의사선생님은 마치 본인 잘 못인 양 미안해했다.

"아니에요! 선생님! 얼른 예약 잡고 서둘러주세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현미래가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드리고 나왔다.

병실로 돌아오니 손영찬이랑 지희영이 와있었다.

"야! 이기 무슨 일이고? 미래 니는 괜찮나?"

"미래야! 흑흑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많이 놀랐지?"

손영찬이랑 지희영이 한마디씩 했다.

"그래! 흑.. 흑... 와줘서 고마워~!근데 나 미안한데 할아버지 좀 급히 만나야 해서.... 광현이 좀 지켜줘!"

현미래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준 친구들에게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지만 의사선생님 말을 들으니 마음이 급해져서 더 이상 지체 할 수가 없었다.

무의식 속에서 현미래의 죽음을 경험한 백광현은 세상 밖으로 더 이상 나올 이유도 힘도 없다는 듯이 정말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





"나 금방 다녀올게~ 광현아!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푹 쉬고 있어~"

측은한 눈빛으로 백광현에게 인사를 한 현미래는 미래재단을 향해 택시를 불러 출발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깨고 나면 사라져 버릴 꿈. 그리고 깨어났을 때 구수한 된장찌개에, 맛있는 음식을 해놓고 백광현이 자신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기사님이 미래재단에 도착했음을 알려줬다.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눈을 떠봐도 현실은 그대로 였다. 백광현에 대한 미안함이 큰 만큼 현미래의 할아버지 현우재에 대한 분노도 커져만 갔다.

“아가씨! 잠시만요!”

현우재에게 막무가내로 들어가려는 현미래를 김비서가 막아 섰다.

“김비서 언니! 비켜 서세요! 저 할아버지랑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요!”

김비서는 생전 처음 보는 현미래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현미래를 막아 서고 있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진정은 무슨 진정이에요! 얼른 비켜서세요! 아니면 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괜찮아! 들어오게해. 김비서!”

현우재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으로 흘러 나왔다. 바깥이 소라스럽자 현미래가 온 걸 알고는 현우재가 말한 것이다.

"할아버지!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현미래는 눈을 세차가 밀고 들어갔다. 문이 부서지지 않은게 다행이라 생각 될 정도 였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는 현미래는 현우재를 쏘아보며 퍼부었다.

"미래야! 지금은.............. "

현우재가 무슨 말을 하려 하자 현미래가 가로막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만! 제발 그만!!”

"저를 위해서란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제가 그토록 존경했던 할아버지가 지금 이 순간은 증오스러워요! 평생 할아버지를 증오하며 살 거예요! 흑....."

현미래는 아직도 지금 자기 앞에서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할아버지가 이런 분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더 원망스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지금은 이 할아비를 증오하렴! 하지만, 나중엔 너도 이해할 때가 올 거야~"

현우재는 현미래가 자신을 증오 한다고 하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들, 이루어 가야 할 것들,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현우재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할아버지! 도와주세요~ 제발! 마지막 한 번만! 광현이 치료받고 깨어나는 것까지만 확인하고 할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유학도 가고 의대도 다시 갈게요! 제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주세요...... 흑... 흑..... 흑...... 아님 저도 광현이랑 같이 죽어버릴 거예요....... 흑........"

현미래는 울부짖으면서 현우재에게 매달렸다.


"정말이냐? 그럼 그 아이가 깨어나는 것까지만 확인하면 내 뜻을 따라주겠니?....."

현우재도 백광현이 그렇게 되고 파일은 현장에서 회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현미래가 나타날 줄을 몰랐고 현미래가 교통사고까지 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현미래가 혹시나 잘 못된 마음을 먹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던 찰나 현미래가 제안을 해오니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네! 그리고 또 하나! 광현이 부모님 빚 문제 깨끗하게 해결해 주세요! 그러면 돼요~~저는..... 흑..... 흑....."


"그것까지 다 들었구나! 그래 알았다."

현우재는 이런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평생 들키지 않고 싶은 사람이 두 사람 있었다. 한 명은 자기 딸이었고 그 나머지 한 명이 바로 현미래였다.

자기 딸은 자기의 정체를 알고는 평생 아버지를 보지 않겠노라고 미국으로 이민 가버렸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왕래는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딸이 자신을 아직도 벌레 보듯이 보는 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더 더욱 현미래에게만큼은 그렇게 안 들키려 조심했건만 이렇게 들켜버리자 현미래마저 자신을 떠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현미래가 백광현을 살리고자 이런 제안을 해오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꼭 약속 지키세요!"

현미래는 그 말을 남기고는 차갑게 일어나버렸다.

"미래야! 오랜만에 왔는데......."


쾅!!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닫고 현미래는 나가 버렸다.


"녀석~ 참!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야~"

하며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어~ 김 원장! 비용은 내가 알아서 다 지원해줄테니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줘요~"

“네! 회장님!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현미래와 백광현, 경윤대 의료진은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소설 : 봄비 -제22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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