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가 난 이후에 주변 사람들은
뭐가 되었든 이제 다시 하지 말고..
거기서 그만 멈추라고 했다.
장사를 경험했고, 돈을 벌어봤으며
큰돈은 아니지만 화재보험금과
집이 사라진 남은 땅을 팔아버리면
그래도 손해는 아니라고 다들 말했다.
여윳돈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집을 짓고 민박집을
또다시 운영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는 건 우리 부부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회계학적으로나
눈에 보이는 돈의 계산적으로만
인생을 살아가지 않는다.
내가 끝이라고, 이제는 아니라고
판단했을 때 우리는 스스로 멈추고 싶었다.
아직은 이곳을 너무나 좋아하며
의도치 않게 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무리해서라도 더 멋진 강안채를
다시 새롭게 지어보고 싶었다.
철거를 하는 동안까지
화재에 대한 상황과 현실에
무거운 짐을 안고 괜찮은 척 버텼다.
사실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고 지쳤다.
다른 누구에게 마음 털어놓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 걸 알고 있기에
그렇게 계속 가슴속에 묻으려고만 했다.
그런 어느 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한순간에 그 짐을 털어버렸다.
아내는 지쳐 보이는 나에게..
"우리 전원주택 짓는 거 꿈이었잖아."
" 하늘이 우리한테 집 지을 기회를 준거야"
"건축 탐구 집 프로그램에 나올 만큼!!
아니, 올해의 건축상 어때? ㅎ
우리 돈 많이 들더라도 제대로 지어보자! "
"돈은 또 벌면 되고, 윗집 할머니 말씀 기억하지?"
"우리 젊다고, 그냥 용기만 내라고 했잖아.."
뭐든 마음먹기 나름인가 보다.
몸과 마음이 꽤나 지쳐 피로감이 가득했는데
아내의 말 한마디에 한순간 즐거워지고
오랫동안 어깨를 누르던 곰 세 마리가 금세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나.. 전부터
좋아했던 그 유명한 건축가 알지??
그 건축가에게 집을 짓고 싶었어!"
나는 건축 탐구 집 프로그램에서
한두 번 소개된 적이 있었던 건축가와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올해의 건축상! 그 생각만으로도
너무 설레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 부부는 맥주 몇 잔을 배 속으로 들이켜며
멋진 집을 짓는 꿈도 함께 뇌 속으로 들이켰다.
"여기에 다이닝룸을 만들고.."
"이곳에 안방하고 화장실은 여기!"
"동선으로 봤을 때 이런 위치는 어때?"
"전에 강안채는 이게 좀 불편했잖아.. 그렇지?"
우리 부부는 술도 한잔 마신 김에
아이들 스케치북을 꺼내놓고
다시 지을 집의 구조까지
그려가며, 멋진 집을 짓는 상상에
흠뻑 취하느라 술에 취하는지도 몰랐다.
신나게 맥주를 마시고 난 다음날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전세를 얻어 이사 갈 계획을 했다.
그렇게 집을 팔고 전세를 얻어 이사를 가는
계획으로 남은 차액과 화재보험금
그리고 대출까지 추가하여
건축상 후보에 오를 집을 짓겠다는
계획을 금액적으로 한번 세워보았다.
그리고 부동산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저희 소식 들으셨죠? 집 화재요.."
"저희가 그곳에 다시 집을 지으려고,
현재 살고 있는 집을 팔려고 합니다."
부동산 사장님은 화재 소식을
주변 지인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아서
집을 짓는다는 우리의 판단에
조금 의아해하시면서도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보길 권하셨고
일단 매매 접수를 도와주셨다.
지난 아파트도 30분 만에 팔아주셨지만
일반 주택은 시간이 더 필요할 거니까
1주일이면 충분하실 거라며,
사장님의 능력을 치켜세우며 농담으로
부동산 사장님을 압박하며 전화를 끊었다.
집은 판매 매물 등록했으니
이제 집 짓는 준비를 계획해야 한다.
유명하고 또 유명한..
TV에 소개되는 건축가의 메일 주소를
확인하고, 지금 상황을 설명하며
멋진 집을 함께 짓고 싶다며 사연을 적어
비용과 절차에 대해 문의를 남겼다.
모두 계획한 데로 빠르게 실행하며
계획형과 실행형의 소유자답게
일사천리로 쭉쭉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며칠 뒤, 유명한 건축가의
이메일 답장이 드디어 도착했다.
"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곳이네요."
"저희 건축의 비용에 대해 안내드립니다."
그 비용은 나의 계획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30평 기준 건축 설계 비용은 약 7천만 원
건축 설계 기간 약 6개월 소요
건축 평당 비용은 약 1200~1500만 원
30평 기준 4억 5천만 원
거기에 실내가구, 가전, 조경, 세금, 정화조 등
기타 금액은 모두 별도였으니..
최소한의 비용으로만 6억이 기본이었다.
집을 짓거나 인테리어를 할 때에는
항상 초기 금액에서 10% 정도 추가를
생각하고 시작하여야 된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하기도 하고,
또 돈을 조금 더 들여 시공하면
조금 더 고급스럽고, 만족스럽기 때문에
집을 짓거나, 인테리어 공사 중에도
수시로 변경되는 부분이 발생하여
금액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럼 6억에서 10% 금액 6천만 원 더하고
여유를 더하면 7억이 최소 금액이 된다.
시골에 다시 짓는 30평 집 하나에
7억이라니.. 이 금액은 내 계획에 전혀 없었다.
그 돈도 안 들이고 무슨 올해의 건축상이니..
생각하며 어떻게 멋진 집을 꿈꾸었을까?
헛된 욕심을 품은 나를 잠시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게 메일 한 통을 받고 나서
즐겁게 꿈꾸고 계획했던 전원주택 꿈이
무너지며 계획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무겁게 눌렀던
내 등에 곰 세 마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꿈꾸던 건축가와의 인연은 안되었지만
아내와 함께 즐겁게 맥주 한잔 하며
그려놓았던 우리의 집 구조 스케치가 남아 있고
그날의 즐거움이 남아 있었다.
올해의 건축상과 건축가는 잊어버리고
금액이 맞는 건축가를 다시 찾으면 된다.
설계도 빠르게 진행하고, 하루빨리
집을 지어서 다시 강안채 민박을
오픈할 수 있는 시공사를 만나면 된다.
우리에게는 집은 사라졌어도
변하지 않는 풍경은 아직 남아있다.
"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을 너무 오래 바라보느라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의 명언 중 하나이다.
화재로 인해 무너진 강안채를
바라보면서 과거에 순간들만
기억하고 과거에 머무르며
안타까운 현실에 후회하다가
다시 시작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화재의 원인미상조차 우리에게 무의미했으며
새로운 시작에 너무 즐겁고 설레기 시작했다.
유명해서 만나기 어렵고,
비싸서 진행하기 어려운 곳 보다
우리 지역에서 우리 동네 전문가와 함께
우리의 집을 짓겠다고 결정했다.
나는 그렇게 결정하니
또 한결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졌다.
닫힌 문을 뒤로하고 다른 문을 발견해도
그것을 열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그 문은 그냥 열리는 자동문이 아니라
용기라는 힘과 실천이라는 힘으로
열 수 있는 수동문이다.
우리는 그 문을 두 손 모아
힘껏 밀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