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아직 너무 젊어, 용기만 있으면 돼

by 작은거인




베트남 다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우리 가족을 안전하게 부산으로 안내했다.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며

꿈만 같았던 가족 여행이 모두 끝이 나고

우리는 조금 잊었던 그 현실로 복귀했다.


부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가 끝나고, 밀린 업무가 몰아치듯

휴대폰이 쉬지 않고 전화가 왔다.

화재보험 손해사정사

화재보험 담당자

화재 담당 소방조사관

화재 담당 형사님까지

급하게 떠난 해외여행이라,

출발하기 전 미리 귀국 시간을

알려드렸더니 도착과 함께

전화는 끊이지가 않았고

고도의 비행으로 인해

먹먹하던 내 귓속을 모두 뚫어주는 듯했다.

그런 몇 통의 전화 통화로 시차 적응과

현실 적응을 완벽하게 해내면서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으로 현실 복귀 마친 다음날

마냥 즐거운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해외여행에 대한 자랑을 하기 위해

서둘러 학교를 후다닥 가버렸다.

아내와 나는 아직 남은 휴가 기간이라,

우리는 화재 현장으로 출발했다.


화재 현장을 이제야 마주한

아내는 애써 눈물을 참으면서

그날 당시 현장에서 참담함을 지켜본

나를 애써 또 한 번 위로해 주었다.

우리는 무너져 내린 집을

공간별로 꼼꼼히 하나하나 둘러보던 중

작은방에 위치한 이불장이 불에 타다 말고

멀뚱히 서 있었고, 안쪽을 열어보니

불에 타지 않은 베개 두 세트가 남아 있었다.

베개 하나까지 비싼 제품을 준비했는데

이거라도 안 타고 남아서 어디냐며,,

그을림과 물에 젖은 베개 두 세트를

트렁크에 그대로 넣어 집으로 챙겨 왔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온 후

베개를 다시 사용하려는 마음에

여러 번 세탁해서 널어보았지만

베개피에 묻은 화재의 그을림과

화재 불 냄새는 문신처럼 새겨져서

지워질 생각조차 안 하고 결국

세탁만 5번 하고 버리게 되었고

화재로 남은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다시 현장으로 이야기를 돌리면

화재 현장을 확인한 후에 우리는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봉화 춘양면의 소방서다.

화재로 인해 긴급 출동을 하시고,

화재 진압에 모든 힘을 쏟아주신

많은 소방관분들께 그날의 감사함을

전하면서 박카스를 전달해 드렸다.

작은 박카스 한 박스에 감사함을

모두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그때 정신없는 경황에 인사도 못 드리고

어떻게 복귀하셨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서

죄송함과 감사함을 다시 한번 전했고

앞으로 현장조사 이후 진행되는

방향까지 설명을 듣고 나서

춘양 소방서의 문을 열고 나왔다.


두 번째 감사 인사를 전하는 곳은

화재 신고를 해 주신 윗집 할머니다.

집에 불이 났다며 화재 소식을

전화로 처음 전해 들은 때에는

윗집 할머니에 큰 아드님이자

고등학교의 대선배님이셨지만

춘양 소방서에 방문하고 나서야..

최초 화재 신고자는 윗집에 사시는

올해 90세가 넘으신 할머니셨다.

오랜만에 찾아뵙고 만난 윗집 할머니는

반가워하시면서도 걱정 가득한 얼굴로


"아이고.. 어서 와요 어서 와, 어서 들어와.."


우리를 너무나 반갑게 맞아 주셨고,

그날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 나는 거기 손님이 고기 굽는 줄 알았어,,"

" 연기가 조그마하게 솔솔 나니까.."

"난 손님이 오신 줄 알았지.."

" 그러고는 조금 뒤에 보이, 이게 아이더라"

"시커먼 연기가 나고, 불이 난기라.."

"우리 아들은 나가고 없고, 길가에 나가서.."


할머니는 눈물까지 보이면서

그날에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셨다.

집 구석진 한편으로 연기가 시작되었고

단순히 민박집 손님에 고기 굽는 연기구나

생각하시고 계시다가 점점 커져가는 연기에

다시 내려다보니, 연기는 더 심해지고

불길까지 눈에 들어와 화재라는 걸 아셨다.

집에 큰아들은 나가고 없고, 전화도 모르겠고

급한 마음에 큰 도로까지 뛰쳐나가며

지나가는 차량에 손을 흔들어 세우면서

119 신고를 요청하셨다고 한다.

화재 신고 이후에 큰 아드님께서 귀가했고

그 상황을 나에게 전화로 알려주신 거였다.


" 아들은 술 마시러 나가고 없고, "

" 내가 전화도 할 줄 모르고, 마음은 급하고"

"애기엄마 걱정돼서, 차를 세우러 나갔는디.."

"차들이 전부 세워주지를 않아.."

"겨우 한대 세워가꼬 119 전화를 했다고.."


90세가 넘은 윗집 할머니께서

그날의 안타까움을 한없이 설명하는데

우리 부부는 너무나 감사함에

또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 애기엄마, 괜찮아.."

" 아직은 너무 젊다, 용기만 있으면 돼"

"딴 거 다 필요 없고, 용기만!"

"그저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할머니는 다른 말없이 용기만 있으면

모든 게 다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 용기가 도대체 뭘까?

살아가는 용기? 다시 집을 짓는 용기?

집을 짓기 위한 대출에 대한 용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느꼈다.

정말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생겼다.

우리에게 누군가는 장사해 봤으니 됐고

땅 팔면 손해는 없을 거야라고 했다.

그러나 용기는 다 무너져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길게 공들여 세운 도미노가

의도치 않게 모두 넘어져도

그동안 해온 것들이 무너져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용기!


그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왔고

우리는 용기를 내어 보기로 했다.

다시 새롭게 집을 짓는다.

새롭고 더 좋은 강안채를

쓰러진 도미노를 다시 세우듯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보겠다!



이 글을 쓰며 아내와 함께 시간을 내어

오랜만에 할머니를 찾아 뵙고,

최근 유행했 지브리 스타일로

아내는 할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함께 사진 찍는 것도 너무 즐거워하시는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

너무 좋아하시고 활짝 웃어주신다.

다행히 아직 건강하신 윗집 할머니!

더 자주 인사드릴게요.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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