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나에 삶에 대한 책임은 오직 나에게 있다

by 작은거인



밤새 잠이 들고 깨고 반복하면서

잠을 제대로 잔 건지만 건지..

또는 아내를 위로를 한 건지도 모르게

어느새 긴 밤이 지나고 다음날이 밝았다.

거실로 나와 물을 한 잔 들이켜고 나서

소파에 앉아 가장 먼저 한 일은

강안채 사장으로서의 역할이다.


어제의 화재 사고에 대한 공지를 작성하고

여행을 오지 못하시는 손님들에게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과 함께

예약 시 미리 받았던 많은 금액의

숙소 예약금을 모두 환불해 드렸다.


그렇게 강안채 숙소 사장님 역할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집이 다 무너진 상황에서도,

마치 SNS 중독의 관종 마냥, 이쪽저쪽

찍은 눈물의 사진으로 SNS에 공지를 남겼다.



이렇게 몇 번을 썼다 지우다 반복하며,

분위기 무거운 화재 공지를 남기면서

또 한 번 화재를 깊게 실감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이지만 예약 손님들에게

안타까운 화재 소식을 문자로 남겼다.

빠르게 다른 숙소를 예약하실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며 만약 다음의 강안채가

다시 지어진다면 꼭 연락을 드리겠다고,,

조금이라도 할인된 금액으로 꼭 오시도록

재차 안내를 드렸고, 다행스럽게도

여행 계획에 차질로 인해 언짢은 내색을

하시는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감사히

나의 첫 번째 역할에 대해 책임을 다했다.


다음은 직장에서의 나의 역할이다.

화재가 발생하고부터 함께 일하는

회사 동료로부터 화재가 사실인지,

누가 다치지는 않았는지,

화재보험을 들었는지 등 여러

부재중 전화와 문자, 카톡이 왔었고

대답 없는 하루를 지내고 나서야

화재에 대한 복사 문자를 하나씩 남겼다.


"어제 오후 저의 강안채는 화재로

집이 전부 전소되었고

저는 오늘부터 가족여행 휴가로 인해

며칠 쉬었다가 출근합니다."

"걱정 끼쳐드려 죄송하고 괜찮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가족여행으로 인해

긴 휴가를 써놓은 상황이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었다.

휴가가 아니었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지각없이 정상 출근을 해야 한다.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해야 되는 직장인의 역할에

책임을 다하는 상황이 왔을 것이다.


어제 화재가 난 시간에 동네 이장님의

연락을 받은 아내는 당시 업무 중이었다.

연락받은 그 순간에도

오시는 손님들을 웃으며 인사하고

회사 업무를 2시간 동안 마감하고서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잡고

집으로 겨우 돌아왔다고 했다.

우리의 두 번째 역할의 책임이었다.


세 번째 우리의 책임은

이 상황에서도 첫 해외여행으로

설레는 마음이 가득한

자식들을 향한 부모의 역할이었다.

어젯밤에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

여행 짐 싸기는 몸과 마음이 지쳐서

뒤늦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시작되었는데 무슨 정신인지..

옷을 얼마나 어떻게 챙겨야 할지 몰랐다.

넣은 옷을 꺼내고 다시 넣고를 여러 번

계획처럼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 채

부족하면 현지에서 챙겨보겠다는

파워 J형과는 전혀 다른 행동으로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마치 부부 싸움한 것을 아이들 앞에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화재, 강안채, 불이라는 단어는

절대 언급 못하는 금지어로 정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을

망치거나 초를 쳐서는 안 된다.

아직 어린아이들이지만

이럴 거면 그냥 여행 취소를 하지,, 하는

실망 가득한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우리 부부의 역할은

우리도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우리 부모의 걱정에 대해

안심시켜드려야 한다.


우리는 정말 괜찮다고

뭐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잃은 건 그저 돈 밖에 없으니

다시 열심히 벌면 되는 거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아이들과 함께

여행 무사히 잘 다녀오겠다며

애써 태연하게 말을 전했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들고

아이들까지 낳고 키운다 해도

부모 앞에서는 항상 어린 아이다.

쿨한 척하는 자식들의

속마음을 훤히 다 알면서도

물가에 내놓은 아기 바라보듯이

걱정하는 부모님의 눈빛이 훤히 보인다.



우리는 이 많은 역할에서

모든 책임을 다하고 나서

다음은 우리 스스로를 돌보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잠시 서점에 들러

우리 마음을 위로해 줄 책 한 권씩 사며

비행기에서 조용히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그땐 몰랐지만, 나중에 들은 얘기로

화재가 난 뒤 바로 해외 가족여행을

떠나는 우리를 바라보며

많은 이들은 멘탈이 강하다고 하고

한 직장 후배는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가 뻥이 심하다며 믿지 않았다.

그러나 멘탈이 강한 것도 아니고

뻥이 심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우리의 다양한 역할에서

우리가 묵묵히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 당신의 삶에 대한 책임은

오직 당신에게 있다. "


-오프라 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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