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강안채는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픈을 준비하던 시간들..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지내던 시간들
그리고 지금까지 방문하셨던
많은 손님들과 에피소드를 만들며
지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소방관 아저씨의
물음에 결정을 했고 대답했다.
" 지붕을 무너뜨리고,
모든 불을 진압해 주세요 "
농담 삼아 주변 사람들에게 강안채는
내 셋째 자식이라고 자주 이야기했었다.
그런 나의 자식 같은 집은
산소마스크를 부여잡고
마지막 숨을 겨우 쉬고 있었고,
이젠 더는 방법이 없다며 서류를 건네는
담당 의사의 마지막 말 한마디에
마치 안락사 동의서에 서명하듯이
나의 동의에 포클레인이
겨우 서 있는 집을 부수기 시작했다.
포클레인이 지붕을 건드리는 순간
큰 연기를 뿜으며 숨어있던 불길이
잠자던 붉은 용을 건드린 것처럼
거세게 저항하듯 불을 뿜다가..
이내 지붕과 함께 내리 앉으며
모든 것이 끝이 났다.
마지막 큰 연기가 하늘 위로 솟을 때는
마치 강안채의 영혼이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빠르게 올라가며 사라지는 연기를 보며
마음속으로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주식에는 종목과 사랑에 빠지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
주가가 높이 상승했을 때
가장 사랑스러울 그때 팔면서
냉정하게 헤어질 수 있어야
수익을 잘 낸다는 뜻이다.
강안채는 모두의 세컨하우스이자
독채 민박이라는 하나의 사업체이며
주식처럼 수익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 모두는 수익을 떠나
아름다운 이곳을.. 여기 강안채를
그저 자식처럼 너무 사랑했다.
갑작스러운 화재는 그렇게 끝이 났고,
강안채와 작별 인사를 하는 사이
구경하시던 동네분들도 사라지고
소방대원 분들도 언제 가셨는지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두들 너무 고생하셨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는데..
모든 임무를 마치고 돌아갔다.
나는 부재중 전화가 10통쯤 와 있다.
화재 소식을 전해 듣고 걸려온
주변 지인들의 확인 전화 같았다.
일일이 전화해서 지금의
상황 보고를 할 형편은 아니었다.
먼저 집에서 걱정하고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했다.
"미안해, 집이 전부 타고, 무너졌어.
내가 결정해야 했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어! "
아내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한 듯
체념한 목소리였고, 아이들은 밥을
먹였고, 엄마 아빠 함께 저녁 드실 수 있게
꼭.. 꼭.. 모시고 와야 한다고 했다.
식사도 못하실까 봐 걱정이 들었나 보다.
그리고 또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당장 내일 강안채 숙박을 하실 손님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주변 다른 숙소를
다행히 연결시켜 주며, 해결을 했다.
앞으로 오시는 모든 분들께
강안채 화재 소식과 함께
예약취소와 환불에 대한 안내는
지금은 마음이 지쳐서 내일로 미뤘다..
부모님을 모시고 집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돌아가는 중에도 전화는 계속 울렸고
아무 연락도 받을 용기가 없었다.
아빠 엄마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우리는 각자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며
묵묵히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은 평소와 다르지 않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 우리 강안채 불이 났다며! 괜찮아? "
"근데,, 내일 우리 여행은 가는 거지? "
화재의 걱정보다 내일 여행을 못 갈까 봐
아이들은 걱정이 더 큰 모양이다.
내일 우리는 베트남 다낭으로
가족 해외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부모님과 아내와 함께 넷이서
식탁에 앉아 식은 볶음밥을 놓고
한동안 제사 지내듯 쳐다만 봤다.
누구도 밥을 숟가락으로 뜨질 못했다.
조금 긴 침묵을 깨면서 아빠가
한마디 말을 시작했다.
" 밥은 그만 됐고, 시원한 맥주나 한잔 주게"
우리는 제사만 지내던 볶음밥을 치우고
맥주잔으로 바꿔 술을 따랐다.
이 상황에 뭘 축하하는지,
습관처럼 맥주잔을 부딪히며 짠~하며
다 같이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아빠는 다시 이야기하셨다.
"아들아! 내일 떠나는 가족 해외여행..
이 상황에서 가는 건 아닌 거 같다."
아이들은 예약한 몇 달 전부터
하루하루를 카운트다운 하면서
기다리던 내일이 가족 해외여행이다.
그런데, 그 하루 전날에 화재라니..
아이들은 드디어 첫 해외여행을 간다며
학교에서 자랑을 많이 하고 온 모양이다.
지금 아이들에게 여행을 못 간다고 말하면
조금 전 화재로 무너진 집처럼
아이들 마음이 무너질 거다.
무너진 집은 되돌릴 수 없고
내가 지키지 못했지만..
아이들 마음이라도 지켜주고 싶었다.
" 아이들이 해외여행 저렇게 원했는데.."
" 여행 취소한다고 집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잘 챙겨서 조심히 다녀올게요"
자식은 어떻게든 말려보겠지만
좋아하는 손주들 얼굴을 보며,
차마 말리지 못하는 부모님은
마지못해 우리의 여행을 허락하셨고,
우리는 베트남 다낭 여행 준비를 했다.
캐리어를 펼쳐놓고도 한 동안
무엇을 넣어야 될지, 갈피를 잡지 못해
오늘은 쉬고, 내일의 나에게 짐을 떠넘겼다.
설레는 마음에 잠을 잘 못 자는 아이들을
겨우 재우고 나서 우리도 잠을 청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기나긴 오늘 하루
이렇게 고단하고 정신없을 수가 있을까?
화재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한참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아내는 그제야 울음을 터트렸다.
걱정하는 부모님 앞에
씩씩한 척 괜찮은 듯..
여행의 설렘 가득한 아이들 앞에
무심한 척 괜찮은 듯..
세상 무너지는 신랑 앞에
강인한 척 괜찮은 듯..
그렇게 척, 척, 척하다가
침대에 눕고서야, 그 척이 무너져 내렸다.
아내는 한동안 울음이 멈추지 않았고
나는 말없이 어깨를 토닥이다, 잠이 들었고
다시 울음소리에 깨어 토닥이다
또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밤이 길고, 하루가 너무나도 길었다.
동이 트기 전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한다.
이렇게 길고 길었던 밤과 그 하루
그때는 밝은 아침이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 지나고 보니
아무리 어두운 캄캄한 밤이라도
버티다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밝은 아침이 오고
그 밝은 아침이 오기 전..
동트기 바로 전 새벽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인 걸
뒤늦게 이제서야 나는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아침이 온다.
우리는 화재가 난 바로 다음날!
캐리어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베트남 다낭에
가족 해외여행을 정말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