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을 지혜를 가린다.
나는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이가 어릴 때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육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고 형편이 어려워도 남편의 월급에 만족하고 아끼며 살았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겨줄 사람이 없어서 서글펐다.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셨고, 언니 오빠는 학교에서 아직 오지 않았고, 개구쟁이 동생은 가방만 던져두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느라 썰렁한 빈집이 외롭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키울 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이가 학교 마치고 집에 오기 전에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 것 같다.
그렇게 육아에 전념하다가 둘째가 네 살 되던 해 드디어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 낳고 몸이 힘들어 요가를 시작하면서 건강을 회복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현모양처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배우고 활동하고 싶은 욕구가 계속 생겨났다. 컴퓨터 활용, 실내 건축, 종이접기 등 관심 있는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그때 취득한 자격증이 10개 가까이 된다. 남편은 자격증 따는 것이 취미냐고 놀리기까지 했다. 취업을 위해 준비한 자격증이지만 모두 취미생활에 그쳤고 사용할 기회가 없으니 내 머릿속은 온통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조바심만 커졌다.
그 와중에도 요가를 꾸준히 해왔는데 그것이 직업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요가를 배우면서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몸을 보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아픈 몸을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힘겨운 시간을 견뎠다. 견디는 시간만큼 신기하게도 몸은 나날이 유연하고 편안해졌다. 2001년 그 당시 내가 배웠던 요가는 명상 요가였다. 동작도 많지 않았고 한 동작을 오랫동안 유지해서 굳어있는 근육을 충분히 풀어주었기 때문에 몸이 점점 치유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집에서 요가를 하던 도중 내 경험을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다. 그 느낌이 마치 사명처럼 다가왔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그 길로 나이 40세에 요가지도자의 문을 두드렸다. 나이가 문제도 되지 않았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지금도 알 수 없는 미지수다. 교육과정을 밟고 40세부터 10년 이상을 요가강사로 일하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누렸다. 처음 배웠던 대로 명상 요가로 첫발을 내디뎠고, 요가가 스포츠처럼 유행하던 시기에도 나는 꿋꿋하게 내 스타일대로 요가를 지도했다. 내 스승이 그러했고 요가의 본래 뜻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명상 요가를 하다 보니 처음에는 배우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다이어트나 몸의 균형이 깨져서 요가를 배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치유와 힐링을 위해 요가를 선택한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면서 회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요가를 하고 나서 몸도 마음도 힐링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할 때면 흐뭇하고 기뻤다. 내가 경험한 것들이 고스란히 회원들에게 전해진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평생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에 요가 명상학과에 편입했고 공부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격증도 취득하면서 수업의 질이 점점 높아져 갔다.
그와 함께 자만심도 점점 커졌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산 정상에 오를 생각만 할 뿐 내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교만한 마음에 누구에게도 내 수업을 맡길 수 없었고 아파도 수업했고, 아이들 졸업식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가족 행사를 빠지면서까지 수업했다. 모든 생활이 요가에 맞추어져 있었고 타인의 몸을 치유하는 일을 했으나 건강에 자만했던 나는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내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요가 철학에 관심이 생기면서 대학원 과정을 밟던 중 위암 판정을 받았고, 평생의 직업으로 삼았던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그렇게 끝났다.
자만심은 지혜를 가린다. 오르기만 하면 교만하게 되고 세상이 모두 내 것인 줄 착각하게 된다. 어찌 보면 위기는 내가 자만심을 돌아보게 하는 선물이었다. 멈추지 않았다면 위암 말기로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남편이 벌어주는 월급으로 만족하며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고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고자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퇴직 후 요가원 문지기로 일하겠다며 농담처럼 했던 남편의 말이 가끔 생각이 나지만 그것도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겨 놓는다. 나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내가 마음 놓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요가강사 생활이 이제는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50세 이후 위암으로 새 삶을 살고 있으니 어쩌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인지 모른다. 내 인생은 10년 단위로 큰 변화를 겪은 것 같다. 이제 60세가 다가오는데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흘러가는 물처럼 주어지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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