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지식] 오랜 전쟁으로 최빈국 국민 지칠대로 지쳐

실크로드의 길목, 격랑 속 교차로

by 다문화인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간족의 땅'이라는 뜻으로, 고대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중동, 중앙아시아, 인도 대륙의 중앙에 있는 나라다. 지형 대부분은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오래전부터 여러 외세의 침입을 받아왔다.

BC 400년경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후 알렉산드로스의 침공을 포함해 스키타이, 훈족, 터키족 등 다양한 세력이 이 지역을 차지했다.

AD 1세기에는 쿠샨왕조가 수립되었고, 이 시기에 아프가니스탄 북부를 가로지르는 실크로드가 건설되었다. 당시 수도는 서부에 있는 헤랏이었다.

AD 628년, 이슬람 세력이 아프가니스탄에 진출하며 이슬람교가 전파되었고,

1219년에는 칭기즈칸이 침공하여 약 100년간 이 지역을 통치했다.

그 후 14세기에는 티무르 제국이,

16세기에는 무굴제국이 카불을 수도로 하여 이 지역을 지배했다.

1800년대에는 영국의 침략으로 왕조가 교체되었으나, 국민의 저항으로 왕이 복위하고 영국군은 전멸했다.

하지만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국이 재점령을 시도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1979년에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10년간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소련군은 철수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렇게 오랫동안 지정학적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국가다.

1990년대 내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카불의 다룰 아만 왕궁. 2006년 당시에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물자 교역의 교차로 역할을 했다. 서쪽으로 콘스탄티노플로부터 동쪽으로 중국 당나라 장안에 이르는 아라비아 대상의 실크로드에 포함되었고, 북쪽 중앙아시아와도 연결되어 있다.


실크로드 건설 당시는 수도가 헤랏이었지만, 남부의 칸다하르와 함께 실크로드 주요 경유지였다. 무역과 더불어 문화도 자연스레 실어 나르면서 교류했다.

한반도가 미국, 일본이라는 해양 세력과 중국, 러시아 등 대륙 세력이 충돌하는 교차로 같은 상황인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은 구소련이나 러시아가 남진을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곳 중의 하나다. 러시아의 변치 않는 염원, 부동항을 갖는 것!


거기에 중국의 서진 또한 견제할 수 있어 보인다. 미국은 이를 저지하고 자기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진출하려 했고. 지정학적으로도 교차로인 셈이다. 그래서 여러 강대국의 침략에 몸살을 앓았다.






아프가니스탄의 안보 상황은, 국제사회가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나, 큰 진전이 없었다.

독일, 일본, 코소보와 같은 국가 재건 사례를 보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까지 최소 5년 이상과 막대한 자원 투자가 필요했으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그러한 통합적인 노력과 지휘의 일관성이 부족했다.


아프가니스탄 경제는 주로 곡물 생산에 의존했지만, 가뭄으로 인해 생산량이 감소했고 양귀비 등 마약 생산이 오히려 경제 성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외국 자본 유치에 대한 노력도 있었으나 치안 불안과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외국 기업들의 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는 중앙 정부가 군벌 세력의 무장해제와 종족 간 융화를 추진하고 있었지만, 국민의 지지보다는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었다. 종족, 종파 간 갈등은 계속되고 중앙 정부와 군벌 간의 충돌도 빈번했다. 국민은 점차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을 갖게 되었고, 군벌의 영향력도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치안 불안과 범죄 문제가 큰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군과 경찰을 양성하여 치안 확보를 시도했지만, 부패와 결탁으로 인해 치안은 더욱 악화하였다. 국민은 정부의 부정부패와 관리들의 학대로 인해 반정부 시위와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군사적으로는 연합군이 안정화와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며, 적대 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특히 미국은 국제안보지원군과 함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 지역에서 적대 세력에 대한 압박 작전을 주도했다.


하지만 연합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지 군경의 질적, 양적 향상이 아프가니스탄 안정화의 관건이었다. 적대 세력은 기존의 전술을 바꾸어 주요 마을과 전략적 거점을 점거하고, 주민을 인질로 삼아 연합군의 항공력 사용을 제한했다. 이들은 정부 협력자들을 살해하거나 감금하여 주민들의 정부 협력을 막으려는 전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참고로 우리나라가 참여하는 해외 파병은 3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카슈미르, 코트디부아르와 같이 유엔의 이름으로 임무 수행하는 평화유지활동

둘째, 최근 아프가니스탄과 과거의 월남 파병처럼 한미 동맹 차원에서 미국의 요청에 의한 참여

셋째, 아랍에미리트에 아크부대(특수전 부대 양성과 연합훈련), 필리핀에 아라우부대(재해복구)를 보내 지원하는 국방 협력이나 국가 차원의 파병이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둘째 상황에 해당한다.




다룰 아만 왕궁은 다행히도 2019년 복원되었고, 현재는 일반에 공개되어 박물관, 국빈행사 장소 등으로 활용 중이다. (AI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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