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신호등과 함께 하는 카불의 풍경

랜드마크 안테나산

by 다문화인

카불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정녕 먼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해발 1,800미터의 고지대에 있는 이 도시는 그 자체로 수천 년 역사를 간직한 동서양의 교차로이다.


1747년 아프가니스탄의 지배자였던 아흐마드 샤가 칸다하르를 수도로 삼아 나라를 건국했지만, 선왕 사후 아들 티무르 샤가 카불로 수도를 옮겼다고 한다. 그 결정은 꼭 오늘날에도 카불이 국제 교류의 중심에 서 있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카불의 스카이라인을 보면 산등성이를 따라 작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마치 서울의 달동네가 생각나는 풍경이다. 그 산에는 커다란 안테나가 몇 개씩 서 있어서 ‘안테나 산’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 산 아래는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다룰 아만 왕궁의 폐허가 남아 있었다. 시간과 전쟁이 만들어낸 상처는 말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왕국의 수도였던 카불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은 그저 먼지와 혼란만이 가득한 도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거리에는 신호등 대신 교통경찰이 수신호로 교통 정리를 하는데, 나는 그들을 ‘인간 신호등’이라고 불렀다. 그 모습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에서도 신호등이 드물던 때, 경찰관이 능숙하게 손짓으로 신호하던 시기 말이다. 그들의 절도 있으면서도 우아한 지휘는 호루라기 반주에 맞춰 도로 위의 예술이었다.

카불의 교통경찰은 슬그머니 다르다. 교차로 신호등 노릇을 붉은 동그라미 판을 들고 먼지 가득한 거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뿌연 먼지가 바람에 휘날릴 때면, 그들의 모습이 조금은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가끔 그런 날에는 바깥 활동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눈에 띄는 건 모스크의 둥근 지붕과 첨탑이다. 먼지 속에서도 그 건축물들은 고고하게 서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가 입은 옷에 '국민철도 사수 생존권 사수'라는 한글이 쓰여 있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한국에서 날아온 그 옷에 있는 한글은 낯설고도 익숙한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오지나 파견지서든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하는 차에 동냥 구하는 사람이 보이는데, 볼때마다 안타깝다. 솔직히 여기서는 안전때문에 돈을 줄 수가 없다. 차량 이동 중에 멈춰있을 때가 테러로부터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슈미르에서도 교차로 상황은 비슷했는데 돈을 주면서도 안타까웠다. 돈도 돈이지만 씨앗을 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개발협력분야에 관심이 있어 이런 저런 책을 읽고 강연을 들었다. 아프리카에 그냥 쓰고 없어지는 일회성 원조 대신 곡식 씨를 줘서 자급자족할수 있게 하는 사례를 봤다. 그곳사람들도 그편이 낫고 떳떳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안다.


근래에 들어서는 원조라는 말 대신 개발협력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공여국供與國이 일방향으로 수원국受援國에 직접 원조하기 보다 수원국 스스로 필요한 것을 할 수 있게 공여국이 마중물을 주면서 함께 협력해 나가는 추세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직접 원조를 해도 저개발국가들이 별로 나아지지 않아서다. 우물가로 데려갈순 있지만 물은 스스로 먹어야 하지 않겠나.


말하다 보니 교차로에서 세계 이슈로 너무 나갔나 싶지만, 개인은 그런 역량이 없으니 국가와 국제사회가 책임감을 갖고 나아지게 해야 한다.




이슬람 국가인 이곳은 금요일이 휴일이다. 금요일에 예배하고, 토요일까지 쉬기도 하며 일요일 출근한다. 일요일이 우리의 월요일인 셈이다.


주재국이 그러하니 우리도 이를 따랐는데, 사령부는 토요일 다시 출근했다. 일이 빡셌다. 더구나 일일 12시간 2교대가 아닌가.


카불의 겨울은 생각보다 덜 춥다. 고지대이지만 뜨거운 햇살이 그 추위를 덜어주는 듯하다. 금요일마다 사령부 담을 따라 바자르가 선다.


전쟁터 한가운데서도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팔며 삶을 이어갔다. 카펫, 캐시미어, 화승총, 도검류 등 다양한 물건들이 팔렸고, 흥정은 필수였다.


아프가니스탄 카펫과 캐시미어가 눈에 띈다. 페르시아 카펫이 전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지만, 이곳 카펫도 그 못지않은 품질을 자랑한다고 상인이 목청을 돋웠다.


캐시미어 역시 이곳의 명품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염소의 얇고 연한 털로 만든 캐시미어는 부드러움과 따뜻함에서 제일이라 할 만하다.


88 라이트, 우리 담배를 봤다. 여행금지국에 어떻게 우리 담배가 있지? 중국 다이궁처럼 이 나라 보따리상이 왕래하는 건가.


예전엔 정녕 실크로드를 타고 오갈수 있었겠지만 지금이 더 어려운거 아닌가. 값은 한국의 1/5밖에 안 한다.


4,500원으로 인상 후 가격으로도 이라크에서 한 갑에 1불도 안 했다. 물론 다른 담배지만, 어쨌든 수입국 물가에 맞게 값이 매겨지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화승총에 매료되었다. '머스케'라 불리는 이 총은 정말 멋져 보였고 화약을 먹이면 당장이라도 '탕'하고 묵직하게 진한 연기와 함께 발사될 것만 같았다.

흥정만 잘하면 60에서 70달러 사이에 살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한국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골동품으로는 최고인데…. 정말 원하던 물건이었지만, 마음속에만 남겨두기로 했다.


그곳에서 사고 파는 모든 것이 단순한 물건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삶의 한 조각을 나누는 몸짓이었다.




카불을 다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과거의 실크로드를 꿈꾸게 된다. 설악산 대청봉보다 높은 카불을 포함한 이런 고고도 지역을 지나갔다니, 인류의 교류 본능이나 역사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길을 따라 수많은 상인이 동서양을 넘나들며 교류하던 그 시절이, 어쩌면 미래에도 다시금 부활할 수 있을까? 그 소망은 카불의 어린 상인의 눈에도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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