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하우스 살이
캠프 에거스Camp Eggers는 마치 카불 도심 속의 작은 요새 같았다. 캠프 이름 에거스는 2004년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IED라 불리는 적대 세력의 급조폭발물 공격으로 전사한 에거스 대위를 기리며 명명된 것이다.
미군은 종종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의 이름을 캠프에 붙이는데,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캠프의 이름은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매일 그 터전 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프가니스탄 연합군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던 이곳은 처음부터 군사 기지가 아니었다. 카불 시내의 한 골목에 있는 민가 수십채를 철조망으로 두르고 방벽을 세워 만들어진 임시 주둔지였다.
그 안에 각각의 단독주택 내부는 사무실이었고 빈터에 주거 공간으로 조립식 건물을 만들었다.
캠프 내 공간 부족으로 인해 주변 민간 가옥을 임대해 숙소를 추가로 사용했다. 내가 머물렀던 곳도 그중 하나였다.
미군은 그곳을 ‘세이프 하우스’라고 불렀는데, 우리말로 하면 안전 가옥이고, 줄이면 안가安家. 한국에서 안가라는 단어가 여기서 유래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9년 10·26 사건 때 뉴스에 안가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렸다. 종로구 궁정동에 있던 중앙정보부의 안가, 즉 안전 가옥에서 그날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나도 안가에서 살아봤네. 다른 미군 전우와 함께 방을 사용했고 어느새 그곳 생활이 익숙해졌다.
식사는 디팩D-fac, Dining Facility이라는 식당에서 6개월 동안 미군과 같은 식사를 했다. 풍족하고 좋은 음식이었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지만 이게 양식에 대한 부담이 없는 편인 나에게도 도전 중의 하나였다. 한달이 지나니까 피자나 햄버거 패티 굽는 냄새조차 역하게 느껴졌었을정도다. 매일 3끼를 먹어야 했으니....
미군 동료들도 자신의 음식이지만 별로라고 했다. 아니지, 등 따신 소리같아 전쟁터에서 매끼 식사 제때 하는게 어디냐고 이내 마인드셋을 다시 했다.
낯선 곳에 가면 물갈이하고 설사를 할 때도 있는데, 여기선 구토까지. 나중에보니 인간정보원으로 보이는 아프간계 미국 룸메이트가 소포로 받았다면서 초콜릿 땅콩을 줬는데 유효기간이 지난건지 탈이 난 것이다.
조심하는 편인데 격무에 힘들다보니 조심성도 소홀해지는건지, 의무실에 가서 진찰을 받아도 별 뾰쪽한 수가 없다.
먹은걸 다 토해내고 나야 속이 비워져 그나마 나아지는 거다. 그는 괜찮아보이네, 간식도 신토불이야 뭐야 같이 먹었는데 나만...
속이 좋지 않으니 아내가 끓여주던 구수한 된장찌개 생각이 간절했다. 그 냄새, 그리고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는 그 맛.
아, 김치찌개도 그리웠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음식이 여기서는 귀하게만 느껴졌다.
특수전 부대가 주둔한 기지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제공하는 식당도 있다고 들었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스타벅스가 있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아주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니 살아 있을 때라도 잘 먹어라.'라는 컨셉트일까. 그만큼 대우를 해주는 거겠지.
그러다 어느 날, 뜻밖의 횡재를 했다. 사령부 정문에서 150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홍콩반점’이라는 중식당이 있었다.
왜 이제야 봤지? 짜장면이나 짬뽕은 없었지만, 볶음밥 하나만큼은 한국에 있는 중국집 맛과 똑같았다.
오랜만에 익숙한 맛을 보고 나니, 그 순간만큼은 모든 피로가 가시는 듯 엔도르핀이 흘렀다. 어쨌든 그래도 지나고 나면 그때 그 미국 음식들조차 그리워지는 게 참 변덕스럽다.
카불에서의 생활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낯선 도시에서 마주한 일상,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삶과 풍경은 지금도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