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변한다. 나도 변하고.
언제 겨울에서 봄이 왔는지 알 수 없다. 어디까지가 겨울이고, 어디부터가 봄이었던 걸까. 계절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떨어지고, 그렇게 다시 겨울이 들어선다.
사실 정확하진 않다. 그저 나는 계절의 순서를 공식처럼 외우고 있었기에, 이쯤이면 봄이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벚꽃이 폈다.
나는 스스로 현실적인 사람이라 말하지만 정작 내가 담고 있는 이 현실은 너무나 좁다.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그 남은 시간을 또 쪼개서 집, 동네, 아주 가끔은 멀리 벗어난다. 결국 내 현실은 수렴된다.
이 좁은 세상에선, 계절보다 날씨가 더 중요해진다.
멀리 보기보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해진다.
물론 순간을 사는 건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순간을 ‘살 수 있는 것’과 순간만 ‘살아지는 건’ 다르다. 순간에 집중하는 것과, 순간 외의 것을 배제하는 것은 같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바라보는 곳 이외의 풍경을 모두 지워버리곤 했다. 결과적으로 그곳만 바라보게 되겠지만, 어쩐지 그 마음은 가련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날씨보다 계절을 감각하려 한다. 사회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나’가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 나는 현실에 매몰되어 감을 느낀다.
오늘의 날씨가 더 중요해진다.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온다니 우산을 챙겨야겠구나, 눈이 온다 하니 차가 막히겠거니 한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사실 판단적 문제도 아니다. 그저 카메라 줌 렌즈처럼, 뷰파인더 속 세상이 조금 달라지는 것뿐이다. 세상의 본질은 그대로지만, 가까이 본 세상과 멀리 본 세상,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 다만, 줌이 가능한 카메라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을 모르거나 쓰지 못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요 근래, 내가 느끼기엔 힘든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사실 매일이 쉽진 않았지만, 잔잔하게 치던 파도가 한 운율의 마디를 넘길 때 갑자기 세게 부딪히는 것처럼 내 현실의 바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이 걸었다. 벚꽃놀이는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석촌호수에 벚꽃을 보기 위해 모였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그쪽도 벚나무가 무수히 만개했구나. 정말 나는 봄에 있구나.
그러나 나는 반대편을 향해 걸었다. 봄의 표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나는 그곳을 등졌어야 했다. 그래서 날씨는 중요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벚꽃이 떨어지지만, 비가 와야 봄의 밖을 바라볼 수 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참 가냘프고 연약해 보였다. 이게 봄비이구나.
차가운 땅속에서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는 모든 생명들을 축복하고 감싸주는 마치 모성의 위로 같았다.
흙내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나를 건드리는 땅의 기척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흰기가 섞인 분홍색의 벚꽃잎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아, 정말 다 떨어졌구나.
그간 꽃을 품고 있었을 벚나무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 가지엔 초록잎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러다가 곧 여름이 오겠구나’ 생각했다. 나무는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봄을 보기 위해 벚나무를 기다리지만 벚나무는 봄을 위해 피는 게 아니다.
벚꽃은 나무에게 영광의 과거이자 그 징표겠지만, 그것들을 떨어뜨려야만 새로운 잎이 나고 , 또 다음 해 꽃을 피울 수 있다.
나는 계절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그 안에서 내 삶을 위로받는다.
그렇게 한참을 또 걸어갔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곳은 비가 내린다며 운을 띄웠다.
“요즘 내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하는 거 같아. 마음을 잇고 함께 살 것 같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멀어지고, 뜸해져. 물론 그 자리에 다른 인연들이 또 채워지긴 했지만. 그게 인생인 거 알면서도, 괜히 마음이 울적한 것 같아. 비 내리는 날씨야.”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잖아. 굳어지겠지.”
“맞아, 비가 와야 굳어지는 거니깐. 비가 내리면 이제 내가 단단해지겠구나,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나는, 내리는 비를 맞아야지.”
“그럼. 좋은 날이 온다.”
“그래야지. 내 계절도 이제 변하려나보다. 계절이 넘어가는 중인가 봐. 근데 비는 봄에도 오고, 여름에도 오고, 겨울에도 오잖아. 그럼 나는 그때마다 더 단단해지는 건가?”
땅이 말라갈 때 즈음 내리는 비는, 축복이다. 그날의 봄비를 통해 배웠다. 내 삶도 팍팍해질 때 느껴지는 시련과 그로 인해 흐르는 눈물은 결국 환희를 위한 과정이다.
세상을 넓게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하여 나는 꽃보다 나무를 보는 연습을 한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새싹을 바라본다.
하나의 계절 속에 수백 번, 수천 번 오고 가는 날씨를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또 걸어가야 한다. 이 세상도, 이 인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