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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었고, 더듬었던

말을 더듬었고, 글을 더듬었던

by 필연

이곳에 글을 올린 지 어느덧, 3개월째다. 어느새 13편의 글들이 이곳에 살아 숨 쉰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게 된 건 우연한 일이었다. 나는 마음속에 묵혀둔 감정의 원형들을 있는 그대로 정리하고 싶을 때, 종종 글로 풀어내곤 했다. 어느 날, 오랫동안 나를 조용히 바라봐온 친구를 우연히 만났을 때, 나에게 말해주었다. "너의 꾸며내지 않은 솔직한 글들이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어. 혹시 브런치 같은 데에 글을 써서 함께 나눠보는 건 어때?"


사실은 그 말을 듣고서도 한동안 ‘언젠가’라는 막연한 마음속에 그 제안을 가둬두었다. 그러다 올해 설 연휴, 나는 사정상 본가에 내려가지 못하게 되었고, 이렇게나 넉넉히 흘러가는 시간들을 조금 더 굵직하게 남기고 싶어졌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뛰어들어 보기로 했다. 그 결과, 나는 ‘작가’라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었다. 운은 우연에서 비롯되는 작지만 강렬한 성취임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물론, 유명한 출판 작가는 아닐지라도, 글을 짓는 사람이라는 ‘작가’라는 낱말 그대로의 의미로 따지자면, 나 또한 작가라 불려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이렇듯 그저 귀여운 자만함으로 바라봐 주신다면, 무한한 감사와 함께 그저 황홀할 따름이다.


나는 말보단 글로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누군가 내게 “왜 글로 이야기하는 게 좋아?”라고 묻는다면, ‘첫째’, ‘둘째’ 하는 식으로 서수를 통해 구조화된 이유를 풀어내는 순발력이 부족한 사람임을 자백하겠다. 어쩌면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상대가 흐트러짐 없이 환하게 이해하길 바라는, 기계적 사고 성향이 드러난 선택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아이였다. 궁금한 것도 많아서 대개 내 문장의 끄트머리엔 물음표가 꽂혀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외동이었다. 혼자 소꿉놀이를 하면서도 늘 1인 2역을 했다. 비록,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는 늘 한 편의 모노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다. 언제 어떤 말을 해도 나 자신만큼은 지루해하지 않고 들어주었으니깐, 괜찮았다.


학창 시절에는 발표를 많이 하는 학생이었다. 사실 말을 하는 게 좋아서 발표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머릿속에 묻어두고만 있는 건 내가 실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걸 내뱉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칭찬도 받을 수 있었다. 칭찬 기근에 든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온종일 날아다녔다. 선생님께서 “이거 답해 볼 사람?”이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제발 저를 지목해 주세요!’ 두 눈에 부리부리 타오르는 염원을 담고 무성(無聲)한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나는 말을 더듬었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때 한 음 소를 여러 번 떨구고 그 떨군 음소들은 불안의 씨앗처럼 훌쩍 자라 나를 그늘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말을 더듬을 때마다 친구들의 키득거림도 많이 받아냈다. 내 머릿속 생각들은 입술과 혀근육의 운동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어쩐지 소멸되고 말았다. 내뱉지 못한 말들은 내 마음속에 결정으로 남아 자꾸만 나를 아프게 찔렀다.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들을 내보내는 속도가 더 빨라서 말을 더듬는 거라고 했지만 그 말은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유용한 위로가 되지 않았다. 부끄러움, 속상함, 수치심. 이 모든 감정이 얽히고설키어, 나는 한동안 이 교차선 위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그리고 그때, 내 편은 오직 교실 차창에 비친, 나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나였다.


그 순간, 내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괜찮다’라는 누군가의 위안이 아니었다. 이 민망한 감정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 두 갈래 길이 보였다. 분출구를 메우는 것과 분출의 발원지를 건드려보는 법. 이 민망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게 중요할까, 말을 더듬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는 좋을까. 전자를 위해서는 감정의 유발원인을 제거하면 된다. 그렇다면 발표를 안 하면 되는 것이다. 발표를 해서 나는 나의 더듬거림을 온 천하에 드러냈으며, 친구들은 당연히 웃음이 터졌을 테니깐. 때론 도망쳤고, 때론 직면했다. 도망치는 건 조금 더 쉽고, 빠른 탈출 방법이라 생각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그 불편한 감정은 나의 더듬거림 때문이었으므로, 이를 교정해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매일 밤, 교과서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한번 읽으며, 백번 더듬었다. 두 번 읽으며 오십 번 더듬었다. 내 몸이 알도록, 내 몸이 기억하도록. 혀는 입천장과 앞니 뒤편을 여러 번 두드렸다. 제발 이 어색함을 깨고 싶었다. 입술을 언제 붙이고 얼마나 있다가 떼어내야 할지, 입 동굴의 모양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가로로 긴 타원이어야 하는지, 직사각형이어야 하는지, 몇 번이고 수없이 반복했다. 샤워할 때면, 거울에 비치는 내일의 나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상상 속의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 ‘과연 이 공기 속에서도 나는 숨을 내쉴 수 있을까?’ 혼자서 되뇌던 그 한마디를 온전히 내뱉는 것. 그것이 나의 하루치 소원이었다. 결코 소박하지 않은 꿈. 아기가 “빠-“라는 한 음절을 터뜨리게 되었을 때 부모가 느낀 벅찬 기쁨처럼, 나도 나를 위해 매 순간 도전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아닌 소박보다 더 소박한 그런 꿈이라 할지라도 나에겐 늘 최선이자 최대치의 노력이 필요했다.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갑자기 목구멍이 턱 막히는 그 기분. 혀에 무거운 추라도 올려둔 듯 움직이지 않고, 아주 조그마한 숨조차도 폐에서 올라오지 않는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마치 폐포에 공기가 아닌 자잘한 모래알들로 꽉 차있는 건 아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답답해했다.


하지만 글 속에서 나는 물속의 물고기 마냥 자유로웠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말을 할 필요도 없었고, 부끄러움에 쫓겨 두더지 마냥 빠르게 자리로 들어가 앉을 필요도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늘 글을 애틋한 마음으로 써 내려갔다. 이제 내가 더듬는 것은 말이 아니라, 글의 촉감과 온기이다. 글은 나에게 숨결이자, 오랜 시절 곁을 내어준 친구였으며, 옷장 속 은신처 같은 존재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글을 쓴다. 내 안의 가장 진실된 목소리로. 내 안의 가장 단단한 마음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숨결이 누군가의 가쁜 숨결 속으로 스며들어, 그의 작은 안녕이 되어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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