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존재와 감각 사이
사랑의 근원이 궁금하다. 사랑은 인간의 탄생과 함께 존재했을 것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 박동하는 사랑의 수맥을 발견하였고, 이를 다시 찾기 위해 ‘사랑’이란 명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네가 사랑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부터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 파블로 네루다
인간은 언제부터 사랑을 ‘사랑’이라 불렀을까?
사랑이란 단어가 생기기 전, 사랑을 이름 붙이기 전, 사랑은 어디에 머물고 있었을까?
어쩌면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꺼풀 아래에, 송골송골 맺혀 있었을까.
혹은 맞잡은 손가락 사이에 수줍게 숨어 있었을까.
아마 오래전, 인간은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하고 낯선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문자를 창조해 냈을 것이다. 정확히 누가, 어떤 순간에, 어떤 마음으로 사랑이란 걸 탄생시켰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뜻대로 통제되지 않거나, 특정한 존재에게만 이상한 중력이 가해지는 듯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에 불안과 공포심을 느꼈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타인에게 공유하며 진단받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른 이들에게도 퍼져나갔고, 마침내 문자가 만들어졌을 그 시대에 이르러 ‘사랑’이라는 단어도 태어났을 것이다. 덕분에 후세의 나는 사랑이라는 문자를 빌려, 비슷한 느낌과 증상, 몸짓과 눈빛을 한데 묶어 이 글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자는 정적이며, 어쩌면 죽은 상태와 다름없다. 그러나 그것이 조합되어 하나의 글이 되고, 누군가에게 읽혀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마치 구원을 받은 자손처럼 살아남는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언어로 이야기하려 한다. 사랑은 명랑하고 생명력 넘치는 동적인 존재일 테지만, 이것을 죽은 글자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왠지 공허하고 애달프다. 나는 사랑이라는 무형의 존재가 대대손손 이어지기를 바란다.
내 머릿속에서 사랑을 그릴 때, 그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즐겁다. 그렇다고 해서 연애나 결혼에 얽매인, 타자와의 감정만을 한정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랑의 행위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것들만이 통상 사랑이라면, 나는 이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저 사랑을 느꼈을 때의 체험기다. 사랑의 결을 조심스레 쓰다듬었을 때, 가슴 깊이 끌어안아 보았을 때, 사랑 위에 온몸을 뻗어 누워 보았을 때의 이야기 말이다. 사랑은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존재했다. 사랑은 나와 함께 늙어간다. 내가 그것을 깨우지 않는다면, 사랑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사랑은 지극히 감성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성이 접근한다면 그것은 마치 아지랑이처럼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영역에서 이성이 개입하는 것은 단순한 학문적 접근을 위한 분류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사랑을 온전히 느끼겠다는 의지이자 당돌한 포부이다. 나는 더 이상 사랑의 태동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것을 유산시키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사랑을 감각한다. 내가 누군가를 향해 있거나, 무언가를 향해 있을 때.
사랑은 나로부터 기원한다. 그것은 내가 나를 더욱 사랑하고 가꾸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사랑받은 사랑이 진정 사랑을 한다.
사랑은 방향을 가진다. 나는 그것을 바라본다. 나는 그것에게 다가간다. 나는 그것을 향해 뻗는다.
사랑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투명한 햇살과 포근한 바람을 감싸 안고, 서촌 골목을 깨우는 순간, 향긋한 커피 향을 온몸으로 음미하는 순간, 봄바람이 나무를 간지럽혀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을 보는 그 순간, 나는 벅차도록 풍요롭다. 이런 감정은 필연적으로 고독 속에서만 느낄 수 있다.
사랑과 고독.
어쩌면 가장 고독한 순간에 가장 선명해지는지도 모른다. 나는 우선 내가 느낀 고독과 고립을 이야기하려 한다. 고독은 홀로 두 발로 서서 존재하는 것이고, 고립은 땅을 바라보며 움츠린 상태다. 내가 무언가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고립이 아닌 고독 필요했다. 고독은 내가 온전히 두 다리로 서서, 무언가를 마주 보겠다는 의욕적이고 용감한 선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사랑은 그 순간, 존재하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 나는 무한히 편안하다. 때로는 ‘외롭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지만, 그렇지 않다. 햇살의 체온을 느끼기 위해, 바람의 살결에 비비기 위해, 빗방울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 나는 나 자신만이 필요하다. 나는 가슴을 펴고 그들을 온전히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이 나에게 달려와 안긴다. 나는 감각할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고요해진다. 심히 평화롭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랑이 더욱 뚜렷해진다.
물론, 나도 누군가의 세상을 마주하며 사랑이 차오른 순간이 있었다. 어느덧 그 사랑은 내 안에 담아둘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렸다. 사랑은 내 눈동자에, 내 손 끝에, 내 발끝에, 내 최전선까지 닿았다. 나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사랑이 내 입술을 넘어 흘러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나는 아직 전해야 할 사랑이 있기에, 보여주고 싶은 사랑이 있기에, 조금 더 버티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사랑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키웠는지 알 수 없다. 나의 마음이 그의 궤도 위를 공전할 때, 그 시작점을 찾는 것은 마치 사랑이란 단어의 근원을 찾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나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그 곁에 존재하는 것이 나의 사랑이었다.
사랑은 언제나 내 안에 존재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사랑으로 채워졌다. 사랑은 어디로 향해 갈까? 나는 과연 어디로 다다를까? 사랑은 나에게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힘이었기에,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 나의 생명은 사랑이 다하는 순간에 끝날 것처럼 느껴진다. 사랑은 나의 시작이었다. 나는 살아 숨 쉬는 그 모든 시간 동안 사랑 속에 존재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의 끝은 사랑이었으면 한다. 사랑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사랑을 다시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