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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따라가면 닿는 그곳이 나의 가장 깊은 곳

나는 왜 누군가의 뒤만 서성이고 있었는가

by 필연

내 사진은 높은 비율로 누군가의 뒷모습을 향해 있다. 혼자서 잘 다니고 잘 놀고 잘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내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불운의 인간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고독 속에서 나는 자유롭다고 느꼈다. 나를 둘러싼 시간은 고요하고, 대기는 따스하기에 나는 오직 그 '고독' 속에서야 편히 숨을 들이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믿고 있다’라고 다소 맥없이 표현한 이유는, 언젠가 인간의 외호흡이 산소에 지나치게 적응해 중독된 것이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혹여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것조차 내가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지 정말로 맞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 인간은 결코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고독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고립이 편해져 버린 것인지 어느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고, 사실 알 길도 없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 냉혈인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생에서의 제명이 정해져 있어 인간으로서의 이 역할을 다 마무리하고 후생에 들어 이 자리에 또 어떤 존재가 새로운 빛을 맞이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집사에게 사랑받는 한 마리의 낭창한 고양이로 태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은 있다. 그러나 불운스럽게,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그 누구도 먼저 나의 행방을 찾아주지 않을 그런 길고양이로 살아가게 된다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걱정도 있다. 왠지 다행인 것일까. 나의 마음 한편에는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 아주 희미하게나마는 피어있나 보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 그 감정은 묘하게 욱신거리며, 가슴속에서 죄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애틋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유사한 감정이 다시금 불안하게 엄습해 온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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