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 고통 속의 창조적 행위
우리는 모두 '미시 속의 거시적 존재'가 아닐까.
광활한 우주에 비해 우리 인간이 사는 이 지구는 어쩌면 한낱 티끌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우주의 미시 속에 살고 있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결코 작은 존재라고만 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작은 존재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고달프고 고통의 연속일지라도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의 충격적 출생에 비하면 그것은 지나치게 작은 폭발과 충돌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작은 고통을 통해 또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창조해 냈다.
‘그 우주’가 바로 철학이다. 이것이야 말로 엄청난 일이 아닌가?
우리가 밤하늘을 바리보고 팽창하는 우주를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린 ‘그 우주’ 속에서 인간 삶의 영원성에 대해 논할 것이고, 별의 소멸을 통해 인간도 그 끝엔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이 부족해서 잘못해서 삶이 이토록 풀리지 않고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며, 본래 소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삶이란 무엇인가?’ ’ 내 삶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답을 도출하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에너지 낭비일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알지 않는가. 삶이란, 단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뜻하는 단어일 뿐이다. 그러므로 삶의 목적은 없다. 애초에 목적이 있어서 내가 태어난 게 아니었으므로, ‘목적’이라는 말은 삶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삶의 방향도 그러하다. 우린 그저 ‘생’에서 ‘사’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삶에 명확한 의미가 있었다면, 아마 이 세상에 철학이라는 학문은 자라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너는 무엇이 되어 무얼 위해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변해 주길 강요하지 않는다. 만약 신이 인간에게 다가와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알려주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말을 들을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 진실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세상에 한몫할 일꾼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단지 돈을 벌어 경제적 자유를 얻고, 가난에서 벗어나며 삶을 연명하기 위함일 뿐이다.
어쩌면 인간은 삶의 허상을 구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인간이 각자의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결국 우주의 단 하나뿐인 예술작품을 완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목적은 우주의 예술가로 한평생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는 유한한 인생을 한 편의 예술로 완성해 나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예술 속에서 고통은 그 자체로 의미가 되며, 때론 ‘쾌’로 승화될 수도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