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꽃을 피우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사막에 바람이 불어 모래를 움직이면 새로운 언덕이 펼쳐지듯, 나의 인생에도 한바탕 거센 바람이 지나가니 새로운 지평이 만들어졌다.
파주에서 서울로 내려온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파주에서 태어난 건 아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대학 졸업과 첫 직장까지 모두 대구에서 보냈다. 나는 본래 큰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적더라도 꾸준한 안정 속에서 살기를 목표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곳보단 자주 다녀간 곳, 활기찬 것보단 평온한 상태를 늘 유지하고픈 성향이 있었다. 내 사주엔 평생 태어난 그곳을 떠나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이었으며, 하물며 중학생 때 꾸었던 나의 장래희망이 그 이후로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걸 보면, 나는 과연 안정 추구형인지, 확고부동한 인간인 건지 , 단지 강한 오기였던 건지, 어쩌면 동시에 고집이 매우 센 사람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목표 지향적 인간이었다고 마무리하겠다.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여 졸업과 동시에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입사를 하였다. 드디어 나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간호사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내가 왜 그렇게 간호사가 되고 싶어 했는지는 모르겠다. 입사 후 한 달, 간호사 명찰을 단 내가 꽤나 자랑스러워 보였다. 혈액종양내과 병동으로 발령받았다. 세상에 새롭고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신규간호사가 적응하기 편한 부서는 단연코 아니었다. 병동의 밤에 불이 켜지면 그 불이 마지막 점등식이 되지 않도록, 그저 한 명의 간호사로 앙상한 나뭇가지 땔감이 되어서라도 그 불을 어떻게든 지켜내야 했다. 나는 부족하고 미숙한 신규 간호사였지만, 언젠가 환자들의 삶, 그 끝자락을 따스히 매만져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마스크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받아냈다. 환자의 아침을 보기 위해 나는 그 어두움 밤 속에서 발버둥 쳤다. 그렇게 불과 반년 만에, 나를 버티게 한 내 존재의 이유는, 아무도 보지 않는 밤의 고요한 소용돌이 속에서 나를 휘몰아 심해로 잠식시키게 만들었다. 지금은 그저 흐릿한 추억일 뿐이다.
그렇게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다시는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며칠간은 마치 세상이 온전히 내 것인 마냥 너무나 행복했다. 그간 못 잔 잠들을 넉넉히 자고, 좋아하던 커피도 실컷 마실 수 있었고, 더 이상 알람을 휴대폰 화면에 꽉 가득 채울 만큼 맞춰놓지 않아도 되었다. 막힌 숨이 마침내 제 길을 찾아낸 듯한 해방감이 들었다. 부모님도 내가 조금 더 쉬면서 몸도 마음도 조금 안정을 찾길 바라셨다.
하지만 평온한 줄 알았던 내 마음이 곧이어 불안감이 복수처럼 가득 부풀어 차기 시작했다. 마치 악몽에서 깨어나면 그 꿈이 현실이 아니었음에 안도하고 감사함의 마음이 들지만, 오히려 아주 행복한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는 깨어난 그 밤이 너무나 길고 원망스러울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아빠의 지붕 밑에서, 엄마의 이불 아래에서 그렇게 곤히 잠들겠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는 없을 테니깐.
‘난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나는 무얼 해야 할까.’
그 당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나는 내가 뭐라도 해내야만 한다는 결의로 무작정 알아보기 시작했었다. ‘결의’라 하니 괜히 나에 대한 굳건한 자신감과 희망찬 결투심 따위의 뉘앙스가 풍기겠지만, 사실은 우울의 진흙에 온몸이 절여져 저벅거리던 한 명의 패배자이자 포로였다. 퇴사하기 한 달 전만 해도 재학생과의 만남이라는 취업프로그램에 취업병원 졸업생 대표로 초청되어 발표를 했었던 지라, 그 당시 느꼈던 자랑스러움과 환희감에 대비되어 더욱이 절망스러움에 빠져 있었다. 살기 위해서, 정말 살고 싶어서 박차고 나온 길이었는데 어쩐지 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듯했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눈물에 나는 그 속에서 익사하고 있었다.
...
‘그래도 이제 그만 울고 일어나야지.’
언제까지나 내가 울면 눈물 닦아줄 누군가는 있을 것이다. 또 언제까지나 내가 주저앉으면 나를 일으켜 줄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은 내가 딛고 일어나야만 걸을 수 있다. 내 두 다리에 힘을 똑바로 주고, 정복의 깃발을 내리꽂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내가 주저앉은 그곳이 나의 땅이 될 테니까.
‘간호사라는 면허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창에 ‘간호사’ 세 글자를 쳤다.
‘연구간호사(CRC).. 간호공무원.. 제약회사.. 보험간호사.. ’
‘세상은 참 넓었구나. 단지 내 시야가 좁았을 뿐.’
문득 참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심해 어딘가의 바닥을 찍어봐야만 내가 잠식된 그곳의 깊이를 알고, 그래야 얼마나 더 떠올라야 할지 가늠할 수 있다. 올라오는 방법은 하나다. 힘을 빼면 되는 것이다. 그간 머금었던 삶의 기대와 그로 기인한 긴장과 마음의 굳음 정도만큼 힘을 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잘할 수 있을까?’ 같은 의미 없는 의문부터 버리기로 했다.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 다 해보지 뭐. 나는 아직 젊으니깐.’
약 한 달 동안, 적게나마 모아둔 월급으로 CRC 임상직무교육도 들어보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도 취득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사이트의 알고리즘 덕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보건관리자’
무언가에 홀리듯 무작정 입사원서를 넣었다. 벼랑 끝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나를, 누군가 발견해 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그 자체만으로 살아낼 자신이 있었다.
며칠 후, 한의원 물리치료 진료를 보고 있던 중 휴대폰에 모르던 번호가 찍혔다.
‘여보세요.’
‘OOO씨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어디실까요?’
‘입사지원서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다른 곳에서 채용되셨나요?’
‘아! 안녕하세요. 아니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한 가지만 질문하고 싶은데요. 이 직무에 왜 지원하셨나요. 자기소개서에 적은 이유 말고 솔직한 이유가 듣고 싶어요. 간호사를 그만두고 이걸 선택한 OO 씨의 진짜 이유요. 꾸며낸 이유는 아니었으면 합니다.’
‘네. 사실 솔직한 답변을 전해드리는 게 과연 제 결과에 득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간호사의 길은 아무래도 제가 가기엔 벅찬 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 길이 저에게 적합하지 않다면, 저는 저 다른 갈래의 길도 찾아서 걸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하여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사실 이보다 더 솔직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좋네요. 혹시 다음 주에 한 번 여기로 와보시겠어요?’
그렇게 나는 멀고 먼 파주로 올라가게 되었다.
낯선 지역, 낯선 사람들, 낯선 공기.
나를 포함한 그 모든 게 낯설었다. 그러나 이건 그다지 문제 될 게 아니었다. 난 부모님의 민들레 홀씨로 태어나 한 줄기 바람을 타고 이곳까지 날아왔다. 씨앗은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마침내 싹을 틔울 것이니, 나도 어떻게든 이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굳게 마음을 다잡지 않은 채 뿌리내린 식물은 미풍에도 뽑혀 나갈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필요한 마음은 단 하나, 그저 ‘나는 내려갈 고향이 없다’라는 독한 결심뿐이었다.
돌이켜보니 그 17개월, 참으로 악착같이 살아낸 시간이었다. 직무 능력을 키우기 위해 1년 동안 산업위생관리기사와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저축 금액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퇴근 후에는 입시 학원에서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고 ‘독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회식 후에도 집을 도착해 쪽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기출문제를 풀고 출근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그 시간에 대해 아쉽거나 후회는 전혀 없다.
나는 외로웠기에 스스로를 더 사랑하며 충만해지려 애썼고, 몹시 추웠기에 나의 체온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으며, 한 줄기 따스함에도 그저 감사할 수 있었다. 세상이 혹독할수록 나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났다. ‘그래. 이 겨울이 지나면 머지않아 봄이 올 거야.’ 나는 그렇게 몇 번이고 얼어붙고 녹기를 반복하며 더욱 단단해졌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어느덧 지금의 이곳, 서울에 오게 되었다. 지난 기억을 한 장씩 넘기듯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문득 아련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이야기를 마치 실타래를 풀 듯 담담하게, 그리고 웃으며 말할 수 있다.
“상경하고 싶었거든요. 남쪽 사람은 한 번은 꼭 올라가 보고 싶잖아요. 그런데 제가 꿈이 너무 커서 무려 파주까지 올라갔어요. 그래서 조금 낮춰서 이제야 서울로 내려왔어요.”
인생에는 다 제때가 있다. 물론 사시사철 푸르게 피어있는 나무도 있지만, 제 나름의 찰나, 그 순간에 꽃을 피우기 위해 견디는 나무도 있다. 우리도 그러한 존재이다. 우린 모두 우리의 꽃을 피워내기 위해 견디고 있는 중이다. 물론 견딘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힘든 건 아마도 보이지 않는 결실에 조급해하지 않고 참아내야 하는 인고의 시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슬퍼할 건 없다. 부디 우리가 그 극심한 추위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개화 시기에 맞춰 피어나는 황홀함을 우승 트로피처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게 된다.
‘ 아, 내 꽃은 바로 지금 피어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