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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간다는 건

진실된 바라봄과 참된 돌봄

by 필연

살아있는 감정은 마치 유기체와 같다.

이것을 내 마음에서 꺼내어 자유를 주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안에서 평생을 살다가 이내 안에서 썩게 된다.

썩는다는 것은 곧 분해되어 대지로 돌아간다는 것.

그것들이 우리에게 와서야 득(醱酵)일지 해악(腐敗)일지를 비로소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인생에서 우리가 갈등이라 칭하는 모든 것들은, 단지 상황 그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상황의 존재는 늘 참이며, 그 태어남에는 죄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애써 두려워하고, 또 염려해왔던 것일까.

아마 그것의 관찰자로서, 판단가로서, 해석가로서 역할을 자처한 단일한 ‘우리’로부터 비롯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존재의 인정을 열렬히 부정한다 하여도, 사실은 사라지거나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상황을 누가 생각하는가.

그 생각이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아마 단편의 결론을 지으려는 우리가 있다.

그런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낡은 과거로부터 득한 것들이다.

그래서 갈등의 시초는, 낡은 무기를 든 내가, 형체를 알지도 못하는 공포와 기약 없는 싸움을 걸어대며 생겨나게 되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너무도 익숙하게, 우리의 생각을 진실이라 믿는다.

하지만 생각은 일종의 관념이다.

관념이란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마음,

언제나 과거에 기반하고, 익숙하여, 택하기 편한 쪽으로 방향을 고집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만을 온전히 보지 않는 한, 생각이 생각을 낳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만 보는 한, 기필코 과거의 두려움을 또 한 번 상기해낼 것이며,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이 공포 안에서 영원히 잠식될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두려움을 억누르는 힘이 센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처를 온전히 바라보는 용기를 낼 만큼 강인해지는 일이다.

상황을 직시하는 냉철한 이성과 내 안의 섬세한 감정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내 삶을 인문적 예술로 펼쳐내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과정,

그것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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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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