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그리고 맞닿는 진실
책을 읽다 보면 자꾸만 곱씹게 되는 문장이 있다.
음, 곱씹는다는 표현이 과연 맞을까.
아니 어쩌면 ‘곱씹어야만 할 것 같은’ 문장과 나 사이에, 어떤 중력이 느껴진다.
그럴 때 나는 산책자의 행세로 변모한다.
문장을 나즈막히 바라보다 그 위에 앉는다.
바삐 서두를 일이 전혀 없는 이 순간을 감사히 여기며, 엉덩이를 쉬이 떼지 못한다.
행간 사이로 다리를 축 늘어뜨려 걸터앉아 있는다.
한참 동안 그렇게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 그만 떠날 채비를 한다.
언제까지나 한 문장 위에 눌러앉아 있을 순 없다.
충분히 감탄하였으니, 이제 다음 구절을 향해 나아갈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끌림’을 받으면 밑줄을 긋거나 포스트잇으로 표시한다.
하지만 나는 휴대폰을 먼저 든다.
그리고 메모장을 켜서 글자인식 기능을 활용해 문장을 수집한다.
여행자가 풍경을 사진에 담듯, 나는 그 문장들을 손안으로 끌어모은다.
그렇게 쌓인 문장들이 내 안에서 산맥처럼 길게 뻗어 있다.
잘 써 내려간 책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사로잡는 건 ‘우아한’ 문장이다.
허레허식의 장신 하나 없이 속광이 도는 문장.
읽다 보면 묘한 온기가 번져 잠시 기대어 보고 쓰다듬어 보고 싶은 천진한 충동이 일어난다.
- 넉넉함과 온화함이 만날 때, 우리는 그것을 우아하다고 부르기로 했다.
이런 문장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지녀야만 만들 수 있었을까.
그 놀라움에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듯했다.
나는 그 문장들을 씨앗처럼 고이 모아, 소중한 사람들의 편지지 위에 다정히 심는다.
부디 그들 안에서 곱고 어여쁘게 피어나기를 바라며.
나는 믿는다.
이야기는 허구일 수 있어도, 문장은 결국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을.
문장은 살아 있고, 살아 있다는 건 곧 실재한다는 뜻이며, 실재는 결국 진실이다.
진심을 담은 문장은 몇 달, 혹은 몇 해 동안 품어져 있다가도 때가 되면 세상에 태어난다.
빛을 맞이하고 대기 속을 들이마신 문장은 결국 사람에게 닿아, 다시 누군가의 품에서 자라날 것이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진실된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진실은 존재를 증명하고, 존재는 살아 있었음을 증명한다.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나의 문장이 품어지기를.
그 문장이 또 다른 문장을 잉태하여, 세상에서 아주 오래 숨 쉬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