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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둥지에서도 새는 큰 날개를 키워내기에

집 ; 머묾 그 너머를 위해

by 필연

어느덧 해가 저물어간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도, 어느새 많은 정이 들었다.

아주 추운 겨울, 파주에서 서울로 남향하여 언젠가 곧 맞이할 조금 더 따스한 나날을 기대했던 때가 있었다.


서울에서 내 몸 하나 뉘일 집을 찾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거창하진 않더라도 단아한 둥지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마저도 지나친 욕심이었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하필 집을 보러 다니던 그날은 1월,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파주에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공덕에서 환승한 뒤 또 40여 분을 더 가야만 닿는 지금의 이 동네에 왔다.


아침부터 해가 화염을 다 토해내기 전까지 , 세 곳의 공인중개사와 함께 다섯 집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네 번째 집을 보고 난 직후, 그 집 옆 분리수거장을 등지고 서서 한참을 울었다. 하늘은 그런 나의 속도 모른 채 큼지막하고 탐스러운 눈송이를 끝없이 뿌려댔다. 대기는 매서울 만큼 차가웠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집들의 상태도 그 날씨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하늘은 흐렸고, 사람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을 웅크린 채 바쁘게 스쳐 지나갔다. 길 한편에서 울고 있던 나는 그 속에서 주연이 아니었다. 코와 뺨, 얼굴의 드러난 모든 곳이 시뻘겋게 물들었겠지만, 칼바람 덕분에 그것은 나만의 화장이 아니었으니, 나는 그저 평범한 거리 위의 단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본 집이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다.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나에게 감사한 첫 시작이 되어 주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물론 이 집보다 더 넓고, 더 탐났던 집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 집을 보기 전, 바로 두 층 위에는 큼직한 창문과 시야가 확 트인, 마음에 쏙 드는 집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허무맹랑한 욕심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고, 오직 내 힘으로 집을 마련해야 했기에 그간 모은 돈을 아무리 긁어모아도 역부족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더라면,

퇴근 후 했던 아르바이트를 조금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 모든 상념은 결국 후회로 귀결될 자투리 감정들일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후회나 자책이 아니라, 언젠가 더 나은 공간으로 나아가겠다는 희망을 품는 일이었다. 올라갈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은 단단해졌고, 언젠가 반드시 오르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그렇게 지금의 집에서 약 19개월을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발걸음을 옮겨볼 생각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햇볕이 조금 더 잘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람이 조금 더 유하게 스며드는 창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온전히 고요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것뿐이니까.

빛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고, 비에 묻은 흙내음에 취하는 일탈. 그리고 하늘색을 수집하는 나만의 취미.


다음 보금자리는,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길 바란다.


빛과 어둠, 그것들을 생경하게 감각할 수 있는 공간에서,

나의 청춘도 조금 더 탐스럽게 익어갈 수 있는 따스한 집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곧, 동이 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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