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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란 말 없이 안녕

생일(生日) , 나고 살아간 기록 (2025)

by 필연

보통 생일이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고 한다. 내 몫이라며 사온 케이크 앞에 앉은 나는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지금껏 살아온 나이만큼 세워둔 초에 하나씩 불이 붙여진다. 그런 다음 소등식이 이루어진다. 다수가 한 사람을 위한 노래를 헌사하고, 그날의 주인공은 촛불에 소망을 담아두려는 듯 눈을 감고 소원을 빈다. 이제 거의 끝나간다. 이 소원을 이뤄줄 어떤 신을 향해서 힘껏 불어 보낸다. 여기까지가 생일이란 말에 대개가 떠올리는 서사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집을 떠나 타지에서 맞는 생일날은 주류들의 관습을 그저 넘볼 수만 있을 뿐이다. 홀로 맞는 다섯 번째 생일이다.


사실 어릴 적에도 생일이라고 친구들과 모여 성대한 파티를 하거나 근사한 선물을 주고받지는 않았다. 그저 가족과 함께 케이크를 먹는 그런 소소한 날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후 홀로 맞는 생일이라 하여 외롭거나 무한히 슬프지는 않았다. 그리 속상하기보다는 이제는 속 편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천절이 생일이고, 늘 연휴였기에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채울 수 있어 좋았다. 특히나 생일이라니 괜히 나만을 위한 날, 나만을 생각해도 되는 날이라는 생각에, 내가 나 자신에게 쌓아둔 그동안의 분노, 연민, 동정 등 수많은 어렵고 불편한 감정이란 형량을 용서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넉넉한 인심 덕에 모든 것이 감형되는 특별사면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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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에 나는 나에게 편지를 쓴다. 나만의 의식이다.


정말 편지글이다. 편지는 보내는 이와 받는 이가 있으면 편지라고 부르니까, 내가 보내고 내가 받는다면 이것도 지극히 편지다. 편지를 쓰는 이유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보통은 소리 내어 내뱉기 쑥스러운 내밀한 감정들을 전하기 위해서다. 발화의 날카로움이 조심스러운 이들은 전하고픈 말을 깎아내고 두드려 다듬은 다음 가장 따스한 보살핌과 함께 고백한다. 그러려면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를 고민해야 하고, 상대를 바라보며 나를 꺼내어 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나도 그렇다. 나를 향해 전하기 위해 나는 나를 기억해 내야 한다,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는 게 정례적으로 연초 또는 연말이라면, 나는 그저 생일인 것이다. 만 나이 셈법으로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나를 추억한다.

한 해 동안 나는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잃음을 감수했는지를 묻는다. 혹은 아팠던 적이 있는지, 지금은 그보다 평안해졌는지, 아물어 가고 있는지 상처 난 마음을 촉진하기도 한다. 그렇게 안부를 묻고 나의 안위를 기원하려 한다.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지를 고르기 위해 오직 상대만을 생각하며 고심하는 사람처럼, 나도 그렇게 나를 생각하며 편지지를 고른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엽서 정도가 좋다. 너무 많은 말을 담으려다 내가 아닌 이야기가 부풀어질까, 너무 적은 공간에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담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상에서 편히 쓰이는 종이는 연약하여 구김이 잘 가, 이를 말끔히 보존하기 위해 괜히 봉투에 넣어두는 행위는 오히려 수많은 편지봉투 사이에서 이리저리 섞여 헤매는 꼴로 될 것이다.


이번 생일도 그렇게 엽서를 골랐고 편지의 첫 운을 뗐다. 시작이 가장 어려운 듯하다. 안녕이라고 할까. 편지에서는 왠지 세상에서 제일 오글거리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인사부터 시작하는 게 관례니 안녕이라 쓸까 하다 틀어버렸다. 괜히 의미 없는 인사말로 손바닥만 한 공간을 다소 큰 한 줄로 날려버릴 것 같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초조해졌다. 종이를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그림이 있는 앞면에 적어낼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안녕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썼다.

안녕이라는 말은 진부해도, 안녕이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전혀 진부하지 않으니까. 안녕이라는 말은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넘기는 두 글자에 불과하지만, 안녕이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사실 나는 지극히도 안녕이라는 말에 의미를 두었었다는 방증처럼 느껴지니까. 편지의 한 줄로써 충분히 의미가 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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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면 늘 나를 위한, 나만이 존재하는, 나로 향하는 글이었다. 나는 내가 당차고 굳센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더욱 북돋아 주기 위해 등을 두드리는 글이라 여겼는데, 이제 와서 다시 읽어보니 어쩌면 나는 토닥임이 간절했던 사람이었을까. 사실은 누군가의 손길을 그리워했던 길고양이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외로움이 없는 사람이라 혼자 지냈던 게 아니라, 그저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여리고 나약한 내가 부서질까 봐, 그래서 무너짐에 한없이 두려워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당연스레 혼자 떠돌았어야 할 생일날에 우연히 만난 지인이 생겼고, 생각지도 못한 연락들이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내가 있는 이야기’를 써내고 싶어졌다. 왠지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닐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를 위한 편지에 타인들을 담아두기 위해 글을 쓴 건 처음이었다.


서랍에 그동안 쌓아둔 편지 한 무더기를 꺼내자 금세 책상은 어질러졌다. 너무나 많은 선물들에 파묻혀 하나씩 열어보는 사람의 마음은 이랬을까. 돌이켜보면 때로는 내가 동굴 속인지, 그늘 아래인지, 그림자 위에 있는지 분간도 안 될 만큼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운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결국 혼자 감내해 나가는 것이라고, 온전히 내 힘으로 헤쳐나가는 것이 삶의 정직함이라고 단언했다. 그렇기에 고독해야 함은 당연했고, 그래야만 내가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고 다짐해야만 살아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무색하게도 사실은 지나치게 사랑받고 있었구나, 나는 어쩌면 그들의 곁에서 머물러 있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의 삶의 절대 구원자는 결국에는 나이기에, 넘어져도 일으켜 줄 사람을 기다리는 건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나를 지킨답시고 움츠러들고 있었던 탓에 지나치게 나의 속만 깊숙이 파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수록 오히려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어야 한다.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임을 생각하면, 삶의 모든 관건은 결국 삶을 직시하는 자세의 문제인 듯하다. 시야가 넓어진다면 나를 둘러싼 곁도 넓어질 것이고, 넓어진 면적만큼이나 반경도 커지므로, 소중한 내 사람들이 서로의 삶과 삶이 겹쳐져 그곳에서 우린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둠은 빛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어둠을 겪어야만 빛을 알 수 있다. 빛을 아는 자가 그것을 염원하고, 빛으로 향해 나가는 시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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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내 마음이 조금 더 넉넉해지길, 여유가 생기길 바라는 기도로 한 해를 시작했던 게 생각난다.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옭아맨 나를 차츰 풀어줄수록 나는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지고, 넓어져서, 그 어떤 것들도 담아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연못이 아니라 바다가 되어 수면 위에 던져진 돌덩이 하나에 놀라지 않아야지. 출렁이는 물결에 뉘어진 대범함으로 기개 있게 살아야지.


이제야 내가 진심으로 불안과 두려움 없이 곁을 내어주고 손을 잡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적적하면 고개도 돌려보고, 추우면 손도 먼저 뻗어보고, 누군가 밀어주면 나도 언젠가 선두에서 당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어야지.

더 넓은 마음으로, 여유로운 걸음으로 그렇게 함께 걸어간다면 즐거운 일이 생길 것만 같다.


혼자 걷는 건 편하기야 하겠지만, 세상은 내가 보는 것보다도 더 다채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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