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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와 굽이 사이, 깊어짐

소박한 성취가 만드는 존재의 무게에 대하여

by 필연

아마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걸 보면 그 때 내 나이는 7-8살 사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어릴 적 나는 아빠와 주왕산을 오르게 되었는데, 아빠의 회사 사람들과 어린 자녀들이 함께하는 가족동반 산악회같은 것이었다.


아무렴 그 나이에 등산이 퍽이나 재미가 있었을까.

저 산 정상을 올라가면 놀이공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저 산 꼭대기를 찍고 내려와서 먹는 개운하고 달달한 동동주에 파전의 맛을 알 수 있던 나이도 아니었는데, 무엇을 위해 저 산을 올라가고 싶었을까.

심지어 그저 저체중이었던 그 시절, 왜소한 두 다리로 묵직한 고무 밑창의 운동화 무게를 중력으로부터 이겨내야 했던 게 그 시절 내 최대치의 삶의 무게였다. 그래도 아빠의 손을 뿌리치며 산 아래에 혼자 앉아있을 용기는 더 없었던 지라, 나는 올라갈 이유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산 허리까지 와서, 지금껏 올라도 올라도 나무는 나무고 산은 산이구나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를 지경이었다. 함께 오르던 아빠의 동료분들과 그분들의 손을 잡고 오르던 내 또래들은 언제 그렇게 하나둘씩 하산을 하였는지, 산은 깊어지고 외로움도 수심이 깊어졌다.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발걸음은 더 느려져 갔다. 귀중한 무언가를 뒤에 남겨두고 떠났던 사람인 듯, 저 산 아래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던 듯 나아가는 저 산 위를 향해 앞은 전혀 보지 않은 채 그렇게 고개를 뒤로 돌려댔다.


그러자 아빠는 내게 말했다. “벌써 이만큼 올라왔어. 힘들면 내려가도 되지만 저 산 위에 폭포를 보면 성취감이 들거야. 그거 보고 내려가자. 내려가는 건 훨씬 쉬워.”


비로소 그날 나는 목표가 생겼다. 나는 정상에 올라야 했다. 올라가야만 볼 수 있는 폭포가 있었고, 올라가야만 내려다 볼 수 있는 세상이 있었으니까.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첫번째 성취의 기억이다. 그날 내가 다른 이들처럼 똑같이 중도 하산하였다면 아마 더 시원하고 편안한 공간에서의 쉼을 누릴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폭포를 보지 못했겠지. 그곳의 폭포가 얼마나 웅장했는지, 정상에서의 바람은 얼마나 개운했는지는 나와 아빠는 알고 있다. 내 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참과 하늘을 지붕 삼은 숲의 감촉을 나와 아빠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폭포는 그 곳에 있겠지. 하지만 울상 지으며 힘껏 오르던 그 아이는 이제 없다. 아빠의 팔 하나에 기대어 오르던 아이는 훌쩍 자라 이제는 괜찮다고 , 잘 갈 수 있다고 , 걱정 말라며 팔을 가로지르며 인사한다.


그렇게 나는 삶의 굽이진 여럿 능선을 걸어가는 중이다. 힘이 들어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면 나는 어릴 적 그날을 회상한다.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산세로 무섭고 외로울지도, 때론 깊은 우거짐으로 인해 고요하고 숨 막히다가도, 폭포 하나를 보겠다는 나의 삶 속 아주 순간의 목표를 세워가며 단 하나 오직 나를 위해 오르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에 내가 향하는 이 길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남들이 말한 옳은 길은 이미 다른 누구들로부터 수만 번의 걸음으로 다짐질되어 만들어진 보편의 길을 오해하여 말한 것일 수 있을 테니, 옳고 그른 길이라기보다 보편과 비보편적인 길만 주어져있을 뿐이다.


어떤 길로 가는 게 정답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밟고 있는지, 본인 안에 무엇을 채우기 위해 이 힘든 길을 오르려고 하는지.

제 한 발에 당당한 내딛음으로 더는 각자의 제 길을 의심치 않는다면, 산새의 청순한 지저귐과 시냇물의 경쾌한 음색마저 어쩌면 그 순간에는 등반의 목표가 될 지도 모른다.


폭포를 보기 위해 산을 올랐다. 허무하리만큼 소박한 성취마저 나는 ‘마침내’ 이루었던 것이고, 남들 모를 나만이 응할 그 충만의 기억으로 세상의 불확실함 속에서도 나는 깊은 평정과 든든한 고독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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