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사촌누나가 있다. 호칭은 누나지만 나와는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난다. 그누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구석구석을 건너는 과정을 나보다 훨씬, 그리고 많이 먼저 경험한 누나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누나네 가족이 있는 뉴질랜드를 처음 가봤다. 짧은 한 달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서 나는 신앙이라는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내 삶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사촌누나의 가족들의 모습들은 내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려 버렸다. 이전까지 나는 신앙을, 특정한 사상이 나 관습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뉴질랜드에서 본 신앙은, 그보다는 훨씬 더 생활에 스며든 ‘삶의 방식’에 가까웠다.
저녁이면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찬양을 부르고, 가정예배를 드리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침에는 누나와 매형이 각자 아이 한 명씩을 데리고 큐티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특별히 넉넉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 모습들은 내게 무척이나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자라온 가정의 모습과는 반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퇴근하시면 술자리에 가시거나, 휴일이면 친구분들과 어울리곤 하셨다. 집안의 크고 작은 결정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고 가족과 함께 무엇인가를 시도해 본 기억도 없었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는 TV와 술, 담배가 늘 곁에 있었다. 그런 모습들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불만을 갖은 적은 없었다. 그래도 가끔은 화목했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우리 집은 화목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갔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것들을 보고 듣고 자란 환경이 내게 가족에 대한 세계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사촌누나를 통해 보고 배운 것들은 내 신앙의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마주한 수많은 신앙인들, 신앙 공동체에서 큰 실망을 느끼곤 했다. 의외로 내가 뉴질랜드에서 누나와 그곳 교회에서 배운 예수의 가르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세속적’ 태도, 무속신앙과 닮은 신앙 행태,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모습 등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엔 내 신앙에 대한 기준이 그렇게 높은 줄 몰랐기에
실망감은 깊어져만 갔다.
물론 그들과의 시간이 늘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로부터 얻은 몇 가지 긍정적인 수확도 있었다. 괴로운 시간의 연속으로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 자체를 놓아버릴 수도 있었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전히 이 문제를 붙들고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이 길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지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고, 또 비난이나 비판을 하기에 앞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생각의 논리를 갖게 된 것이다. 행간에선 내가 마주한 시간들이 훗날 좋은 경험으로 작용할 것이라 얘기하곤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