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도하심
인생은 결코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때에,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인생은 언제나 쉽지 않다. 수없이 노력하고 애쓴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일이 뜻밖의 결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되면서 나는 점차 인생이 내 뜻과 상관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배워 갔다. 결국 결과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건 단 하나 —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려운 형편에 신학을 할지 말지,
집안의 반대 속에서 지금의 아내와의 관계를 이어갈지 말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화장품업계의 일을 해볼지 말지.
예전에는 그런 선택의 순간에 현명한 판단을 위해 지혜를 구한다거나, 이 길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길이길 바란다는 절실한 기도를 했다. 의도는 선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명확한 신호나 계시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만큼 잘못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이다. 그런 태도는 신중함이라는 장점이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책임을 미루는 수동적 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해주시겠지’라는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기도만 하며 구했던 적이 많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내 대신 선택해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신앙에 대한 약간의 거절감으로 인해 절망의 시간이 있었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 위로로 바뀌었다. ‘할지 말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은 결국 삶을 개척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어쩌면 그것이,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돌던 신앙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닐었을지 싶다.
돌이켜보면 결과보다 더 많은 걸 가르쳐준 건 언제나 과정이었다. 선택 이후의 불안과 기다림, 후회는 결코 좋은 감정들이 아니었지만, 그 감정들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어른에 가까워지고, 또 성숙한 신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하나님께 방향을 구했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내가 구해야 할 건 방향도 방향이지만 그 선택들을 감당할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퇴근 후 조금 더 돈을 모아보고자, 저녁에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최근에 가게 사장님으로부터 이 매장을 인수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또다시 ‘할지 말지’의 순간이다. 나는 지금 그 치킨집의 원가와 손익, 그리고 적정 마진율을 꼼꼼히 계산하고 있다. 아직은 선택 전이니, 준비할 건 준비해야 하니 말이다.
혹시 인수를 하게 된다면, 잘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가능성들이 두렵지 않다. 다만 그 선택에 내재된 여러 의미들을 현실로 실현해 보고자 하는 동기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런 태도로, 내 선택의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내가 믿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면, 아직 미숙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