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집안에서 제사 문제는 언제나 신앙의 시험대였다. 외가와 친가 모두 제사를 중요하게 여겼기에,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은 무거웠다.
스물셋의 신앙생활 1년 차, 오랜 기도와 고민 끝에 할아버지 앞에 섰다. “저는 이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두렵고 떨렸던지 모른다. 혹시 큰 대가를 치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그 길이 마치 ‘십자가의 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네 신앙을 존중하마. 절하지 않고 기도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는 답변을 받았다. 큰 싸움을 각오했던 나는 그 반응 앞에서 오히려 당황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싸우고 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안의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그 해, 대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모두가 절을 할 때, 나는 홀로 서서 기도했다. 사실 기도라기보다 긴장한 채 눈을 감고 있었던 게 정확하다. 그때 여섯 살 조카가 내 옆으로 와 조심스레 물었다. “삼촌은 왜 절 안 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어찌할 바 몰랐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조상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싶어, 제사 때면 미리 가서 음식을 만들고, 절은 하지 않지만 서서 기도하고, 음식은 먹지 않고,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까지 했다. 그게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아마도 이전과 달리 함께 술 한잔 나누지 않고, 선비처럼 점잖게 앉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거리감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모습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믿음을 지키겠다던 그 행동들이 정말로 믿음을 지키는 일이었는지, 그리고 그 신앙의 원칙이 왜 가족들과의 사이를 멀어지게 했는지를 말이다.
그런 고민 끝에 제사는 죽은 자 에게 절한다는 것이나,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재수가 없다거나, 시험 날 미역국을 먹으면 떨어진다는 속설 등, 그런 것들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건 그저 ‘하나의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다만, 나에겐 아무 의미 없지만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 주고,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지 않고, 시험 날 미역국을 끓여 주지 않는 것이 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자 믿음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제사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많다. 내가 신앙의 원칙을 고수하느라 가족들과의 관계가 멀어졌듯, 놓쳐버린 ‘사랑’ 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신앙의 원칙이 과연 ‘사랑’ 보다 중요한지를 말이다. 타협의 맥락이 아니다.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 것들을 위해 내 원칙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 주고, 빨간색으로 이름 쓰기를 피하고, 시험 날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으려 노력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