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기 전, 나는 세상에 내놓을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180cm가 넘는 큰 키뿐이었다. 그 시절 나는 재능 많고 부유한 사람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몸을 낮추거나 낮은 자리에 앉곤 했다.
그런데 신앙을 갖게 된 이후, ‘낮아져라’, ‘겸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이전에 내가 체념 속에 살아온 그 태도에 이상한 명분을 부여했다. 즉,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이고, 힘 있는 자에게 순응하는 내 행동이 마치 신앙적인 행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세상 속에서 배운 생존의 방식이었다.
보통의 사람들, 그리고 보통의 신앙인들은 이미 낮은 자리에 있다. 그 자리는 스스로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처해진 자리다. 즉 아무 노력 없이 처해진 낮은 자리인 것이다. 더러는 그 어쩔 수 없는 자리에서 겪게 되는 일들을 신앙의 훈련이라 여기며, 그 불편함을 ‘십자가의 길’이라 착각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겸손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순응한 결과, 혹은 체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 낮은 자에게 “더 낮아져라”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미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더 낮아지겠다고 몸부림치는 것은 신앙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을 포기하는 행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낮아짐과 겸손은 그런 현실적 체념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현실을 향해 나아가고, 삶을 성장시키며, 상황과 조건을 개선해 더 나은 존재로 서길 원하신다. 즉, 그 과정 속에서도 “자기 자신만은 낮아지고 겸손하라”라고 말씀하시지, 환경을 낮추며 스스로를 자발적 가난의 신앙 속으로 밀어 넣으라는 뜻은 아니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것은 단순하다. 예를 들어, 어떤 행사에 주인공이 있는데, 예상치 못하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나에게 쏠리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그때 진정한 겸손은 주인공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려 그가 빛날 수 있도록 하거나,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한 형태다.
진정한 낮아짐과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작게 만들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다. 상황과 타인을 깊이 이해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선택하는 지혜이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가치를 존중하고 세워주는 태도다.
물론 신앙 안에는 ‘청빈(淸貧)’의 삶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나 살아낼 수 있는 보편적인 길은 아니다. 그래서 현실에 대한 체념의 결과를 신앙 속 겸손의 열매로 착각하는 그 오래된 오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세워가길 바란다. 왜냐하면 세상에서의 낮아짐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지만,신앙에서의 낮아짐은 그 영성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