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회피하는 순간이 당신의 '마지막 위치'가 된다.

by 고인물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로또 당첨만큼 희박한 확률은 아니겠지만, 그 못지않게 낮은 확률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 주변을 보면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시작은 좋아서 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하던 일도 싫어지는 게 흔한 일입니다. 참 신기하죠. 원래 좋아하지 않았던 일은 더 싫어지고, 심지어 좋아했던 일조차 싫어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요.


왜 그럴까요?

왜 좋아했던 일마저 싫어지게 될까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지쳐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일을 스스로 통제하기보다,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고 성장하고 싶기에 점점 더 중요한 일을 맡고 싶어 하죠.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후배들은 대부분 이런 건전한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욕심이 원동력이 되어 성과를 내는 구조이니, 욕심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욕심의 방향은 달라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량은 늘어나고, 그중 책임을 동반해야 하는 일의 비중도 커집니다. 초년생 시절의 업무가 책임이 최소화된 일들이었다면, 점차 책임질 일이 많은 업무로 변해가는 것이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부담감'을 느끼게 됩니다. 아주 천천히,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책임의 범위가 늘어난다면 좋겠지만 직장은 우리를 그렇게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늘 자신이 생각하는 한계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길 요구합니다.

그런 압박을 지속적으로 이겨낸다면 꽤 성장한 자신을 만나게 되지만,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힌다면 어떨까요? 그때부터는 자신을 숨기게 됩니다.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보다는, 업무량이 많거나 하찮더라도 책임이 덜한 일을 선호하게 되죠. 제 생각에는 이렇게 방어적으로 변하는 순간이, 내가 직장에서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위치'가 아닐까 합니다. 그게 사원일 수도, 임원일 수도, 혹은 CEO일 수도 있겠죠. 사람마다 한계를 느끼는 지점은 다를 테니까요.


혹시 팀장급이시거나, 팀장 회의에 참석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팀장 간의 회의는 건설적인 논의의 장이라기보다, '책임 회피의 장'이 될 때가 꽤 있습니다. 물론 건설적인 경우도 있지만, '책임이 곧 비용(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최대한 방어하게 됩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책임을 축소하거나 전가하기 위한 회의가 되기도 하죠.

재미있는 건, 이런 회의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기회를 잡는다는 점입니다. 그 방법이 정당했든 아니든, 회사는 결과적으로 책임을 완수한(혹은 방어해 낸) 직원에게 보상을 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회의를 지켜보다 보면 누가 올라가고, 누가 머물고, 누가 도태될지 보입니다. 그만큼 회사에서는 직원의 책임감을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그리고 회사 입장에서 책임감이란 결국 '돈'입니다. 회사에 이익이 되었느냐, 아니냐로 책임의 경중을 가늠하죠.


각박한 세상이라고 한탄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듯, 회사에서 성공하기 위해 성과를 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근속 연수가 길어질수록 그 성과는 매출과 직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 초년생에게 매출 책임을 전가하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직급이 올라갔다는 것은 회사가 당신을 그만큼 인정했다는 뜻이고, 인정한 만큼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곧 그 사람의 그릇이자 마지막 위치인 셈이죠.

문제는 스스로 마지막 위치라고 느끼는 순간이 와도, 회사를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회사의 책임보다 가족의 생계라는 '가장의 책임'이 더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회사의 책임보다는 가장의 책임을 선택하며 버티게 됩니다.


현재의 기형적인 인구 구조와 산업 현장의 연령 불균형이 바로 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은 지기 싫지만 자리는 지켜야 하니, 회사의 인력 구조가 역삼각형이 되어갑니다. 혹자는 아이를 낳지 않아 이런 구조가 되었다고 하지만, 저는 기대 수명 연장으로 인해 더 오래 근무하는 사람이 많아진 반면 기업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어, 청년들이 진입할 기회가 줄어든 것이 더 타당한 이유라고 봅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 임원이 되지 못했더라도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회사에도, 동료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분들도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산술적으로 1+1은 2가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에서는 1+1이 3이 될 수도, 반대로 1.5나 0.5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저 자리만 보전하는 사람은 조직의 시너지를 1 미만으로 떨어뜨릴 확률이 높습니다. 적어도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이 그런 '마이너스' 같은 존재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쩌다 보니 민감한 사회 문제를 건드린 것 같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저처럼 단순히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일 수 있고, 제 글로 인해 당장 무언가가 변하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기보다, 각자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에서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 책임을 회피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순간, 대한민국이라는 공든 탑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요.


가볍게 시작한 글이 무겁게 끝이 났습니다. 그저 일개 한 명의 생각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너는 잘하고 있냐?"라고 반문하신다면, 저 역시 나름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그저 한 번쯤은 우리 스스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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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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