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시댁, 그리고 며느리의 결심

시댁은 어렵고, 며느리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다

by 연작가


며느리는 외로운 존재다. 살다 보니 양쪽 어깨에 무거운 짐이 하나둘씩 얹히기 시작한다. 이렇게 몇십 년을 살다 보면 굳은살도 박이고 내 그릇도 더 커지겠지.



아직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햇병아리지만,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오늘 글은 큰 용기를 내어 쓰는 글이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상처와 바보 같은 내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글이기에.




가끔은 아주 작은 오해에서 시작된 말들이 생각보다 깊은 상처를 남기곤 한다.

특히 가까운 사이라면, 진심과 다르게 전달된 말 한마디

혹은 이성적인 판단 없이 쉽게 내뱉은 말 한마디로

대화 자체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라면 더욱이.






사건은 지난 주말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시댁과 통화를 하다가 시댁의 걱정에서 나온 단 하나의 질문에서 비롯됐다.


남편은 시댁 어른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했고, 남편의 진심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해석됐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단 1%도.


시댁 어른은 남편이 어렵게 한 대답에 분노했다. 남편의 잘못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잘못한 것에 대한 화살이 나에게로 날아왔다. 통화하다 보니 대화의 주제는 '내 자식이 잘못을 한 이유는 며느리에게 있고, 내 자식이 잘못한걸 깨달은 후 혼자서 마음 고생을 했겠구나'가 되어버려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사실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말들이 흘러나왔다. 우리를 부부로 보시기보다는 '내 아들, 그리고 내 아들이 좋아하는 남' 정도로 보지 않는 이상은 나올 수 없는 말들이 쏟아졌다.


남편은 이에 맞서며 정정하려 했지만 시댁 어른은 틈을 주지 않았다. 아무 잘못 없는 아내를 지키려는, 아니 사실을 바로잡으려는 남편의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으셨나 보다.


이 일을 겪은 후 '내가 더 노력하면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바보 같고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글에서 시댁에게 상처를 받을까봐 두렵다는 말을 했었는데, 이게 이렇게나 빨리 다가올 줄이야.


이날부터 약 나흘동안 나는 미친사람처럼 울었다가 분노했다가 억울해하기를 반복했다.


이번 사건을 브런치에 다루면서 나는 수십번의 첨삭을 했다. 초반에 썼던 글은 너무나도 상세했고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했다. 그 중 몇 마디를 여기에 옮겨보자면:

애초 며느리를 가족으로 품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시댁이 생각하시기로는 아마 아들을 위한 며느리의 내조는 당연한 것일 것이다. 잘 되면 우리 아들이 고생한 것이지만, 일이 잘못되면 며느리 탓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도 난 이날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며느리는 가족이라고 불리는 단어 안에서 완충제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남편의 잘못이나 가족 구성원 간 갈등의 책임을 애써 감당해야 하는, 부당하고 억울한데도 모두를 위해 참고 넘겨야 하는 그런 것.


마음 정리가 어느정도 된 어떤 날엔 또 이런 글을 썼다:

가족이란 이름의 울타리 안에서 혹은 밖에서 내가 이번에 겪은 일은 마음에서 쉽게 흘려보내지지가 않았다. 그러기엔 내가 시댁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가 어린내처럼 시댁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 땐 이러한 상처에도 내가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을 되새겼다. 바로 며느리로서 도리를 다 하는 것. 이건 결혼 전 우리 부모님과 내가 한 약속이었다.


어떤 일이 생기던 간 시댁에게 깍듯하게 대하고 공경하기로 약속해.




그땐 이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부모님과의 약속을 떠올릴 때마다 솔직히 괴로웠다.


혹여나 또 상처받을까봐 부모님 말대로 하기가 너무 두렵다.

나의 진심이 닿지 않을 것 같아서,

한번 정을 주면 퍼붓는 나 자신이 언젠가는 너무 한심해질 것 같아서,

그럼에도 시댁에 사랑받고 싶은 나 자신이 바보 같고, 외면하고 싶었다.


시댁과 함께 했던 해외여행. 이 날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때 행복해하던 내가 그립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나는 그 도리를 다할 것이다.

부모님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쨋든 시댁어른은 나보다 어른이니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듬직한 남편, 그리고 내가 아끼는 아가씨의 부모니까. 그리고 시댁은 결혼 이후 내가 혹여나 시댁을 불편해할까 봐 최대한 노력해주셨다. 나는 그걸 너무 잘 알고 있고, 그에 대한 감사함은 계속 가지고 있다.


나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가족 간 멀어지는 것은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 된다.

이로 인해 남편이 속상해하는 것은 더 싫고, 내가 그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이 되기는 더더욱이 싫다.


나는 남편 덕분에 인간적으로 많이 성숙해지고 있고, 남편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남편 덕분에 성장하는 내 모습이 좋다.



한편 이번 사건 이후로 더 끈끈해진 우리 부부는 '더 성숙해지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미워하는 마음은 켜켜이 쌓기가 너무 쉽지만,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생각하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은 어렵다. 간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난 그 스펙트럼을 천천히, 다시 넓혀보기로 했다. 시댁을 대하던 예전의 내 모습을 되찾고 싶다. 그로인해 나도 배우는게 생길 것이고,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산데. 이걸 어떤 마음으로 짊어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 당신이 질 십자가는 이것뿐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작은 스타트를 끊은 게 아닐까?"


남편의 말 한마디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래, 지혜롭고 후회 없이 해보자. 나는 내 역할이 있으니까.



그래서 난 마음 저 깊은 구석에 이번 사건을 조용히 묻어두기로 했다.

그간 어떤 가십을 들어도, 어떤 일을 겪어도 머리카락 한 올 흔들리지 않고 잘 해냈으니까. 이런 일이 또 생기겠지만, 다음엔 별 것 아닌 것 마냥 웃으며 넘기는 단단한, 성공한 내가 되길.



오늘 이후로 나에게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돈보다 가치를 좇는, 나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믿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보면서 '와, 얘네처럼도 살 수 있구나'를 느끼셨으면 하는 아주 작으면서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것이 나에게도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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