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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3 시나이 | 생명을 품은 척박한 광야에 평화

Egypt | Sinai Peninsular

by Wonderer Wanderer

"생명을 품은 척박한 광야,

시나이반도에 평화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나이반도 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땅,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 정도로 떠올릴 것이다. 시나이반도의 서쪽은 수에즈 만을 통해 수에즈 운하가 이어지고 동쪽은 아카바만, 북쪽은 이집트 - 이스라엘 국경이다.


수에즈 지협을 파서 운하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고대 이집트 파라오 왕조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후에 페르시아, 그리스, 프랑스, 독일도 여러 차례 운하를 건설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했다. 1859년 준공을 시작하여 10년 만에 완공된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의 항구 도시인 포트사이드(Port Said)와 홍해의 수에즈(Suez) 항구를 연결했다. 아프리카(Horn of Africa)를 우회하지 않고도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면서 전 세계 해양 항로를 변경시킨 역사적인 일이다.


전 세계 무역량의 80%가 해상을 통해 움직이는데 그중 10~12%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다. 2021년 3월 24일 중국에서 네덜란드로 이동하던 선박 에버 기븐(Ever given)이 박히면서 전 세계의 관심이 이집트에 있는 수에즈 운하에 모였다. 수에즈 운하가 마비되자 전 세계의 무역과 생활 물가가 요동쳤다.


시나이반도는 자연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내뿜어 내는 곳이다. 지난 15년간 한국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지를 돌아다녔으나, 시나이반도처럼 강렬하게 나를 또다시 이끈 곳은 없었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시나이반도는 그저 황량하게만 보이지만 역동적인 역사와 생명을 품고 있다. 산과 사막, 바다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이 땅은 이천 년 전 예수의 피난길이기도 했고, 반세기 전에는 이스라엘과 이집트뿐만 아니라 중동의 파워 전쟁을 대표하는 땅이었다.


오랜 기간 이집트 땅이었던 시나이반도는 지금 이집트 아랍 공화국의 땅이지만 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아 수도원이 지어지기도 했고, 1967년 6월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요르단 서안과 시리아 골란고원을 점령(제3차 중동전쟁)해 아랍인들에게 치욕을 안겼다. 1973년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10월 전쟁(제4차 중동전쟁)으로 1979년 미국의 중개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서명하고 국교 관계를 맺으며 시나이반도를 회복하였지만, 평화의 대가인 걸까. 1년 뒤에 사다트 대통령은 피살당한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30년간 이집트를 집권한 ‘무바라크’ 대통령 사퇴 이후 IS가 출몰하는 테러의 땅이 되었다. 2014년 성지순례를 떠난 한국 기독교인은 시나이 타바 근처에서 버스 폭탄 테러로 사망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외교부는 안전 여행을 위해 샴엘셰이크(Sharm El-Sheik)를 제외한 시나이 반도 전역과 이집트-리비아 국경지역 전역을 여행경보 3단계, 적색경보로 지정하여 철수권고를 한 적도 있지만 시나이 반도는 일 년 내 내 방문자가 끊이지 않았다.


이미 많은 한국인이 사랑에 빠진 ‘다합’, 러시아, 유럽인들의 겨울 휴양지 ‘샴엘셰이크’, 개발되지 않은 벌거벗은 자연의 ‘뉴웨이바’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한낮에 시나이산을 바라보면 황토색, 흙색, 검은색을 띤 바위산에서 아지랑이가 핀다. 강한 햇빛을 다 품을 수 없다는 듯, 그 빛을 아지랑이로 피워내는데 마치 파라다이스를 매직아이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끝없이 이어진 벌거벗은 사막 산, 그 산을 뜨겁게 달구는 해, 그리고 그 몇천 년째 그대로일 것 같은 단단한 큰 갈색 돌산이 뿜어내는 아지랑이, 평화롭게 흘러가는 홍해의 표면과 엄청난 생명을 뿜어내는 바닷속. 시나이반도는 그야말로 내가 가진 “천국”의 이미지를 실제 내 두 눈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현지에서는 모세의 이름을 따 ‘가발 무사’라고 불림) 역시 해발 2,285m의 사막 산이다.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세 종교 모두가 성지로 간주하는 시나이 산은 1년 내내 여름일 것만 같은 이집트에서 유일하게 겨울에 눈이 내리는 지역이다.


5.png 시나이 산에서 바라본 시나이 반도


시나이에 사람이 살았던 근거가 되는 문서는 기원전 3,000년 전부터 기록되었을 정도로 오래되었는데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은 시나이 유목민으로 전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 척박한 사막인 땅에 각종 곡물과 채소 재배를 한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토착민인 베두인의 삶은 교육과 문화와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테러와 차별로 고통받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유일하게 국경선을 넘을 수 있는 곳도 이곳 시나이 반도이다. 이집트-가자 국경이라 불리는 곳에 라파 국경소가 있다. 평화와 생명을 상징하는 시나이 반도는 현 우리 세대가 맞이해야 할 현실과 미래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테러와 차별을 평화와 생명을 살리는 전환점으로.



이집트 젊은이의 꿈,

바닷속 환상 블루홀


나는 다합하면 내 친구 ‘압두(Abdu)’이 떠오른다. 처음 압두를 만난 곳은 2017년 2월, 카이로에서 새벽 2시에 출발해 다음날 다합에 도착하는 버스 안이었다.


카이로 람세스 호텔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듬직한 버스 기사님 바로 뒷자리 창가 자리 표를 받은 나는 그 버스에서 다합에 도착하기까지 한번 수에즈 운하를 건넌 후 잠시 쉬어간 휴게소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졸았다. 당시 내 옆자리 표를 받은 이 친구는 가끔은 본인의 어깨 방향으로 수없이 떨어지는 내 목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여튼, 나는 버스의 대부분 시간을 옆자리에 앉은 젊은 이집트 남성 어깨 쪽으로 수없이 얼굴을 떨구었고, 이 친구와는 ““Sorry”, “No problem” 정도가 주고받은 대화의 전부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압둘을 만난 곳은, 다합에 처음 도착한 그날, 다합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로컬식당 “King Chicken”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를 잡고 식사하러 간 식당에서 그 친구를 만났고, 이미 안면이 있겠다 서로 인사를 나누다 같이 식사를 끝내고 카페에 갔다.


당시 23살이던 이 친구는 약혼하고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카이로에서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 이 청년에게는 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의 꿈은 이집트를 떠나 다른 국가를 여행하는 것, 부모님을 설득해서, 결혼식 당일의 화려한 옷과 음식보다 둘이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허락을 받아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 뒤에 만난 그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진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으로 여행을 할 수 없었고, 단 한 번도 이집트를 떠나본 적이 없었다.


오랜 군사독재와 경제 위기로 많은 젊은 이집트인은 “헬 이집트”에서 “탈 이집트”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집트를 떠나는 건 상류층이거나 외국인과 결혼을 하지 아니고서는 꿈꾸기 힘들다. 2017년 처음 방문 때 1파운드(당시 한화가치 60-70원 )였던 카이로 지하철 표가 1년 뒤인 2018년 구간에 따라 최대 8 파운드로 올랐다. 그리고 2020년 최대 10 파운트로 올랐는데, 3년 만에 10 배가 오른 어마어마한 물가인상이다. 특히 청년층이 느끼는 위기와 절망감은 크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어느새 사람들은 혹독한 상황을 견디며 살고 있다.


이집트의 젊은이 중 소수는 자유연애를 즐기지만, 대부분은 연애가 자유롭지 않아서 약혼 이후에 정식으로 교제할 수 있다. 약혼 후 결혼을 준비하면서 남자는 집, 가구, 차 등을 준비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약혼을 하고도 집, 가구 장만 등으로 결혼을 미루게 되거나 약혼을 파혼하는 경우도 많다. 압두는 집, 가구, 결혼식 준비로 행복하면서도 피곤해 보였다.


각자 여행지와 숙소를 정하고 버스를 타고 혼자 여행을 온 우리는 동네 친구처럼 매일 어울렸다. 며칠 다합에서 지내다가 압둘과 블루홀을 처음 가보고 나서 나는 다합을 떠나기 전까지 매일 블루홀(Blue Hole)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다합을 찾는 여행자들의 중심지역인 라이트 하우스(Light House)에서 블루홀까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차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해야 한다. 현재는 다합 블루홀, 아부 갈 룸, 블루라군 지역 등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신분증 확인을 비롯해 외국인은 국립공원 출입표를 구매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기사가 “꾸리(한국인), 꾸리”라고 말하면 마치 “프리패스’처럼 경찰 혹은 지역 지구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을 통과할 수 있었다.


3.png 시나이 반도의 블루 라군


블루홀은 환상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블루홀에서 전 세계 많은 다이버들이 본인의 몸을 평생 빠트렸다. 블루홀지역 한쪽 코너에 블루홀에 자신을 빠트린 많은 영혼을 위해 비석들이 서있다. 나 또한 블루홀, 다합에 빠져서 이집트에 계속 돌아오다, 결국 이집트에 정착까지 하게 되었다. 블루홀을 비롯한 엘가든, 캐년, 아부 갈 룸 모두 몇백 년, 몇천 년이 된 무수한 색상의 산호초와 서로의 각자 갈 길을 가고, 먹이를 찾고, 자신의 구역을 놀러 다니는 물고기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산호초를 누비는 물고기들과 산호 사이를 헤엄쳐 다녔다.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과 온몸으로 숨을 뿜어내는 산호들에 넋을 잃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헤엄쳐 다녔다.


아름다운 바다는 많지만, 시나이의 홍해처럼 아름다움을 지닌 곳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냥 투명하고 파란 바다는 많다. 하지만, 시나이의 홍해 바다는 황량한 시나이의 바위산과 대조되면서 바다 안에 다양한 종의 산호와 해양 생물들을 안고 있는 생명의 아름다움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에 하나에 찬란한 오후를 많은 다이버들과 여행자들과 보내고 있다. 파도가 철썩거리고, 달이 바다에서 떴다가 사우디 하늘을 지나 자정이 지나고 산이 시나이산 방향으로 기울어 높은 산 사이로 사라진다.


한번 압두와 블루홀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내 주변에 압둘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신기한 모양의 산호초를 발견했거나, 예쁜 물고기들이랑 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시야에서 그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 그래서 수면으로 나와서 보니, 블루 홀 바깥쪽으로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 압두를 보고 가서 끌고 나왔다. 순간 파도에 휩쓸리면서 균형을 잃었던 압두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서 내 얼굴을 보고 안심한 것 같았다. 그렇게 같이 블루홀에서 나오면서 지침과 안도의 표정을 짓고 이후 나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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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홀 입구에 세워진 비석과 블루홀 근처에서 바라본 전경


오랜만에 압두한테 카이로에서 다합으로 이주했다고 연락이 왔다.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압두에게 카이로 같은 대도시보다는 다합의 자연이 더 어울리고 건강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2020년에 만난 압두는 다합에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미국을 기반으로 한 회사에서 결혼 준비로 생긴 빚을 갚아가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빚을 갚고, 돈을 모아서 여행을 하는 것. 눈이 어떻게 하늘에서 내리는지, 바위와 모래가 아니라 나무로 가득할 수 있는 산을 직접 보고 싶은 게 그의 소망이었다.

우리는 해변을 걸으며 바다로 떠내려가는 비닐봉지와 쓰레기를 수거했다. 그리고 왜 우리 세대에게 비닐봉지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만난 압두는 다합 해변에서 정기적으로 쓰레기 수거하고 장바구니 사용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생명의 은인이라며 나에게 본인의 자전거를 빌려주고 내가 연락할 때마다 도움을 주었다.


압두는 몇 년 뒤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등지를 여행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누군가의 변화의 모습을 본다는 것보다 뿌듯한 일은 없다. 압둘의 아름다운 미소는 나에게 그 자체로 다합이고, ‘황금’이라는 뜻의 다합은 나에게 환상 그 자체이다


1.png 다합에서 바라본 사우디 아라비아
2.png 다합의 엘가든(스노클링 포인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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