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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3 마라케시 | 모로칸 스타일과 예술

Morocco | Marrakesh

by Wonderer Wanderer

“모로칸 스타일 예술”


모로코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탕헤르와 아실라에서 보이는 길거리 음식 죄다 시도해 본 탓이었을까 아실라를 떠나기 직전 나는 원인을 모를 설사병으로 한 시간에도 수십 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설사약과 설사에 좋다는 각종 수단을 동원해 봤으나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탕헤르에서 마라케시로 가는 밤 기차를 예매해 놓은 상태였고 변경도 취소도 안 되는 표였다.


설사와 기차여행… 이건 절대로 좋은 단어의 조합이 아니다.


게다가 아실라의 더운 날씨뿐만 아니라 승차 인원을 훨씬 초과한 듯한 봉고 승합차를 타고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 탕헤르로 이동해야 했다. 마라케시로 가는 밤 기차 슬리핑 칸은 한 칸에 아래위로, 양옆으로 총 4명이 잠을 잘 수 있는 칸이었는데 나는 밤새 침대와 기차 화장실 칸을 드나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마라케시 기차역은 현대적이고, 깨끗한 거리에 아틀라스 산 덕분인지 사막 한가운데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정도로 푸르고, 핑크 황톳빛 건물의 모던함을 동시에 갖춘 도시였다. 메디나에 있는 리야드 호텔을 예약한 나와 친구는 일단 메디나로 이동했다. 메디나의 큰 골목마다 각종 호텔 이름과 사인이 붙어 있었지만,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이루어진 메디나에서 호텔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구시가지라 어쩔 수 없다 생각하는 차에 내가 예약한 리야드가 보였다.


리야드는 아랍어로 정원이란 뜻인데 북아프리카, 남부 스페인 등지에 건축 양식으로 한국의 중정과 유사한 사각형 모양의 정원 안뜰을 뜻한다. 모로코에서는 2-3층의 전통 가옥을 숙박시설로 개조한 건물을 지칭하며, 최근에는 많은 리야드 숙소가 중간에 정원과 분수 대신 수영장을 짓기도 한다. 내가 숙박한 리야드는 숙소는 중앙은 공용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옥상에는 모로칸 스타일 타일과 카펫으로 꾸며진 식당과 수영장이 있었다.


1024px-Bahia_Palace_large_court.jpg 바히야 펠리스, 마라케시 (Credit: Val Traveler)


문제는 건물 중앙만 오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숙소가 방에 딸린 화장실에도 문이 없는 형태였다. 하필, 이번 설사병은 현지 약으로도 쉽게 낫지 않았고, 나는 마라케시 숙소에서 요양하듯이 지내면서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숙소에서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 메디나의 중심인 '자마 엘 프나 광장(Jemaa el-Fna Square)'이었다. 나는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사러 밖을 나갔다 하면 메디나 골목 안에서 길을 잃거나 한 번 더 광장을 둘러보게 되었다.


“마르하반(환영합니다)!”


아랍어로 시장을 뜻하는 쑥(Souk)은 없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향신료 가게를 지날 때면, 갖가지 양념과 차, 쌀과 콩, 말린 허브, 향신료와 꽃차 냄새 냄새가 코부터 뇌까지 자극한다. 쑥은 후각뿐만 아니라 여러 소리가 뒤섞여 청각을 자극한다. 상인들이 자기 가게를 구경해 보라고,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소리, 손님들과 흥정하는 소리, 전통 음악 소리, 뱀장수가 코브라로 묘기를 부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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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지오 매트릭 패턴


모로코의 전통 건물과 타일, 가구와 장식품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뽐내는데, 우상 숭배와 살아있는 것을 형상화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슬람의 전통으로 이슬람 예술은 보통 기하학적 문양과 캘리그래피가 발달했다. 선과 원을 무한히 반복하여 기하학적 문양을 만들어 내거나 덩굴 식물이나 꽃문양과 같은 디자인을 반복하는 것이다. 아라베스크(Arabesque)라는 단어 또한 아랍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건물 중에는 아랍 특유의 돔 지붕과 마쉬라비야(Mashrabiya) 건축 양식의 목조 격자창이 달린 집들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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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쉬라비야(Mashrabiya) 건축 양식 (이집트 칸엘칼릴리 내 건물)


마쉬라비야 창은 그늘을 만들어서 실내를 시원하게 하려는 의도인데, 창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하루 중 시간에 따라 위치와 방향이 바뀌는 모습은 전통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혹자는 마쉬바리야가 집안에서 생활하는 여성을 바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아부다비의 루브르 박물관이 마쉬라비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Alhambra)과 터키 이스탄불의 토프카피 궁전(Topkapi Palace)을 방문했을 때 이슬람 지오 매트릭 패턴과 디자인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슬람 지오 매트릭 패턴은 사람들이 더 높은 의식에 연결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신의 무한성이라고도 여겼고, 끝없이 연결된 원이 자연 속에 통합과 다양성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반복과 복잡성 속에서 무한대의 팽창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이슬람 지오 메트릭 패턴은 종이와 연필, 자, 컴퍼스만 있으면 그릴 수 있어서, 나는 관련 책과 강의를 찾아보면서 유명한 패턴을 따라 그리기 시작하게 되었다. 불교의 만다라를 그리는 것과 유사한 일종의 명상이자 취미 생활이 되었는데, 나는 지오 매트릭 패턴의 원과 선의 무한한 연결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 같다고 여기게 되었다.


1024px-Marrakech_medersa-ben-youssef.jpg 벤 유세프 학교, 마라케시 (Credit: Tom Ney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024px-Patrón_geométrico_islámico_--_2014_--_Museo_de_Marrakech,_Marruecos.jpg 마라케시 박물관 장식 (Credit : J.Ligero & I.Barrios, CC BY-SA 3.0 , via Wikimedia)


사람의 인연은 하늘에서 미리 짜놓은 줄에 서로 연결되어 엮이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오매트릭 패턴처럼 미리 짜인 모양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1 밀리미터라도 선을 잘못 긋거나 원을 잘못 그리면 전체적인 패턴이 망가지는데, 나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사람 간에도 안정적이고 균형 있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깨우쳤다.


나는 흘러넘치는 사랑을 가졌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랑을 나누는 일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힘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 몰랐다. 단순히 밀고 당기기가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아마, 여전히 나에게 밀당은 힘들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불완전한 각기 다른 인격체 사이에는 균형이 필요한데, 나는 운이 좋게도 대부분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건강하지 않은 사람과도 간격과 거리, 균형을 맞추지 않았다.


선과 선이 만나고 겹친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무수한 점이 만나 선을 이루고, 선과 선이 만나 더 큰 형체를 만들어낸다. 누구나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책임을 떠안을 필요도 없다. 각 인격체는 각자의 성향, 상황, 환경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지니고 살아간다. 모두를 완전히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과의 관계에도 기술이 생길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완벽할 필요도 없다.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올릴 때 공항이나 기차역과 같은 공간과 연결 짓는다. 하지만, 나는 한 도시나 동네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출근하고 하루를 부지런히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을 때 일상과는 분리된 여행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여행의 끝이라고 느끼는 순간도 동일하다. 모두가 각자의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나에게는 멈춘듯한 그 시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는 대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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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길어지다 보니 스페인 세비야에서는 일주일 내내 낮의 더위를 피해 숙소에서 넷플릭스만 감상하고, 마르케시에 와서도 예상치 못한 설사병으로 숙소에서 방과 옥상에서만 생활하고, 광장에 마실 나가는 상황이 되었다. 더 이상 여행과 루틴의 경계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마라케시 자마 엘프나 광장 앞의 프랑스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함을 깨달았다.


우리는 각자 다른 국가에 거주하며 장거리 연애 중인 어느 커플과 같이, 서로의 나라 중 하나로 한 사람이 이주를 할 것인지, 혹은 제3 국에서 만날 것인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르투갈과 남부 스페인의 소도시를 여행하며 말라가까지 내려오면서 처음으로 우리 관계에서 무언가 삐끗한다고 느꼈다. 그게 증조였는지는 그 당시엔 몰랐지만, 6개월 뒤 이집트에서 만나기로 하고 다시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밀당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던 우린 한번 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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