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occo | Tangier&Asila
헤어진 전 남자친구와 이집트에서 재회할 기회가 생겼다. 장거리 연애 중에 얼굴을 직접 보고 결별을 하지 않아서일까 몇 년 만에 보니 편안한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집트에서 일을 시작한 전 남자친구 마이클과의 재회와 나에게 숙소를 제공해 준 친구 에스더가 물었다.
"튀니지에서 한국으로 간 후 헤어졌잖아? 다시 얼굴을 보니깐 어때?"
"한동안 못 만났지만, 그때 그대로인 것 같아."
나는 요르단과 예루살렘 여행 대신 이집트 다합에 더 머물기로 결정했고, 마이클도 휴가를 내고 다합으로 와서 며칠간 여행을 함께했다. 우리는 각자 선택한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으나 여전히 불안했고, 이집트 다합에서 눈부신 시간을 보내며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에게 위로와 따스함을 느꼈다. 다합에서 우린 한번 더 대륙과 대륙 사이에서 ‘장거리 연애'라는 운명의 배에 타보기로 했다. 우리는 장거리와 시차와 불안한 약속에도 함께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함을 공유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우리는 그해 여름 포르투갈, 스페인, 모로코 여행을 계획했다.
장거리 연애를 하다 보면 한 사람은 함께한 장소에 머물게 되고, 한 사람은 그 장소를 떠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면서 언젠가 함께하리라는 기대와 함께 남은 사람은 함께했던 공간에서 추억을 머금은 일상을 살아가고 떠난 사람은 떠나온 추억의 장소와 시간을 그리워한다. 우린 장거리 연애를 다시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친구 결혼식 참석을 위해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만났다. 하지만 결혼식 전날 와인 축제를 가다가 일행의 차가 전복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우린 분명 축제를 가는 길이었고 아무도 와인에 취한 사람이 없었다. 사고 난 차량은 이집트 친구가 운전한 차량이긴 했다.)
나는 다행히도 전복한 차량 뒤에 있었지만, 사고 난 차량에 탔던 마이클은 팔이 부러져 한 달간 깁스를 해야 했다. 포르투를 시작으로 남부 스페인을 거쳐 모로코를 가기로 했던 우리는 한 여름에 깁스를 한 상태에서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을 했고, 스페인 남부 도시인 말라가(Malaga)에서 깁스를 풀고 말라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45분 만에 '탕헤르 이븐 바투타(Ibn Battuta) 공항'에 도착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지브롤터에서 모로코까지 최단 거리는 14.5m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수영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건 허풍이 아니라 사실이다. 물론 그만큼 가깝다는 것이지 실제로 가능하지는 않다. 스페인에 살았던 한 미국 친구는 내가 배를 타지 않고 그 짧은 거리를 비행기로 건너가는 건 비겁한 짓이라고 했지만 단 45분 만에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이동한다는 경험은 나름 짜릿했다.
탕헤르는 흡사 유럽과 북아프리카 국가 사이의 그 어딘가에 있는 남부 스페인과 중동, 아프리카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 모로코는 20세기 초 프랑스를 비롯한 외세의 침략을 받았고 모로코 사건 이후, 1912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보호령 통치를 받았는데 그 결과로 탕헤르는 국제관리지대가 되었다. 그리고 1956년 프랑스령 모로코가 먼저 독립한 후, 스페인령 지대였던 탕헤르가 모로코 왕국에 반환되어 독립을 이루었다.
관공서 건물 이름이나 과자 포장지에도 프랑스어, 아랍어, 스페인어, 베르베르족(Amazigh, 아그지그어)의 언어까지 무려 4종류의 언어가 적혀있다. 모로코의 공식언어는 베르베르족 언어와 아랍어이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중동 국가나 이집트의 경우에도 부유층, 권력층 가족들은 이름도 프랑스 이름으로 짓고, 가족 내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근데 탕헤르는 심지어 스페인어도 간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멜팅팟이었다. 카스바 성채에서는 국제항구도시인 탕헤르에서 태어난 유명한 여행가이자 탐험가인 '이븐 바투타(Ibn Battuta)'의 묘지와 박물관을 방문할 수도 있다.
메카를 중심으로 해가 지는 서쪽을 '마그레브'라고 부르며, 대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알제리를 마그레브 지역이라 일컫는다. 우리는 탕헤르에 도착해 이탈리아 친구를 만나 탕헤르 최고의 로컬 레스토랑으로 갔다. 마그레브 지역의 대표 음식인 꾸스꾸스와 타진(중간이 뾰족하게 솟은 그릇을 일컫는 말로, 타진 그릇을 사용한 요리 또한 타진이라 부름), 해산물을 시켜서 먹었는데, 이 동네 꾸스꾸스는 양고기와 당근, 애호박 위에 튀긴 견과류, 건포도가 섞어서 내놓았다. 튀니지에서는 꾸스꾸스에 토마토와 고추를 베이스로 한 붉은 소스를 부은 반면 탕헤르에서는 꾸스꾸스 자체를 건포도와 견과류로 맛을 내고 양고기에 양념을 더한 맛이었다. 친구는 우리가 탕헤르에 왔으니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바부시(Babouch)라는 달팽이 음식을 시켜주었다. 한 솥 끓여 나오는 바부시는 프랑스의 달팽이 요리보다는 한국의 홍합탕의 홍합을 먹는 느낌이다.
'샴' 지방 혹은 '레반트'라고 일컫는 지역은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샴 지방의 특유 음식이 있다. 샴 지방과 이집트에서는 케밥이나 샤와르마, 호무스(Hommus, 병아리콩을 간 요리) 이외에도 무타발 또는 바바가누쉬(Moutabal, Baba Ganoush)라 불리는 구운 가지 요리와 팔라펠(Falafel, 으깬 콩을 튀긴 음식), 마흐쉬 또는 돌마(Mahsh, Dolma, 허브와 양념된 밥을 포도잎에 말거나 야채에 넣어서 찐 요리), 타불라(Taboula, 파슬리, 토마토, 불가를 섞은 샐러드), 파투쉬(Fattoush, 튀긴 빵과 석류소스로 맛을 낸 샐러드)가 공통적으로 유명한 음식이다.
무슬림 국가는 돼지고기가 금지된 것이지만 기독교인이 거주하는 국가나 지역에서는 돼지고기를 구할 수도 있다. 돼지고기가 아니어도 양고기, 쉬쉬타욱(닭고기구이)나 코프타(다진 소고기에 허브, 향신료 등을 섞은 현지식 떡갈비)와 같은 훌륭한 음식들이 있다. 하지만, 술을 구하거나 마시기 힘들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할랄은 허용되는 것, 즉, 할랄식품은 무슬림에게 허용된 식품이라 할 수 있다. 무슬림은 할랄의 방식으로 도축된 고기를 섭취해야 한다. 반대로 하람은 금지된 것으로 술이나 돼지고기가 대표적인 종교적으로 금지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돼지고기나 술이 들어간 줄 모르고 먹는 것은 죄악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술을 구할 수 없는 무슬림 국가도 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대추야자 술인 아락이나 맥주, 포도주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국가도 있다.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튀니지의 경우에는 일부 지정된 마트의 특정 구역에서만 맥주와 와인 등을 판매했고, 이집트나 레바논의 경우 허가를 받은 일부 가게에서만 술을 판매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라마단이 되면 마트의 주류 판매 구역을 아예 막아버리기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라마단 전에 충분한 술을 쟁여두어야 했다.
아니, 그렇다면 이들은 술 없이 어떻게 사교모임을 할 수 있을까?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디저트와 커피, 차는 아랍인의 생활과 분리할 수가 없다. 커피라는 단어도 아랍어에서 유래했는데 아랍어로 커피는 ‘카후와(Qahwa)’이다. 커피와 차는 아랍인의 생활 그 자체이다. 하루를 커피와 차로 시작해서 동일하게 끝내는 것 같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차에 생 민트 잎이나 말린 허브 등을 넣기도 하고, 튀니지에서는 차에 잣이나 아몬드를 띄워서 마시기도 하는데, 강한 차맛과 더불어 설탕을 많이 넣기 때문에 달콤하다.
나는 디저트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명상을 하게 된다. 중동 디저트는 기름, 설탕시럽, 장미물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를 꼽으라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쿠나파(Kunafa)’라고 대답할 것이다. 난 라마단이나 이드 명절이 되면 (기회만 되면) 쿠나파 가게에서 철판 그릇에서 설탕물에 지글지글 끓던 튀긴 면을 주문하고, 집에서 구워내기도 한다.
쿠나파에 피스타치오 크림을 범벅한 두바이 초콜릿도 인기이지만, 쿠나파에 크림이나 나불시 치즈(Nabulsi Cheese, 팔레스타인 나불루스(Nabulus)에서 만든 치즈로 짠맛이 남)를 넣으면 단짠을 섞은 최상의 맛을 낸다. 쿠나파 위에 피스타치오나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먹어도 환상적이다. 물론 가끔 부담스러운 소개팅남과 식사를 얼른 끝내고 싶은 것처럼, 속이 거부할 정도의 달달하고 느끼한 가게도 있다.
나는 탕헤르를 중심으로, 아실라와 셰프샤우엔을 여행할 계획을 짰다. 탕헤르에서 다양한 북아프리카 음식으로 재충전을 하고, 탕헤르에서 기차를 타고 아실라로 이동했다. 그런데 기차역에서 시내까지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다. 역에서 택시기사에게 연락을 했지만 10분 안에 도착한다던 택시기사는 30분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인샤알라”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실제로 대화의 대부분이 인샤알라로 끝난다.
대개 인샤알라는 두 가지 뜻으로 통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내일 만나자고 했지만 내일 실제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시간약속으로 분노를 자아내는 일도 잦다. 무슬림의 예배 시간은 달의 차고 기우는 것을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매일의 예배 시간과 매년 금식을 하는 라마단이 달라진다. 1년이 354일로 매년 11일씩 짧아진다.
유목 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달의 모양 변화가 시간의 흐름을 읽는 방법이었다. 무슬림이 시간 약속을 지키기 힘든 건 매일매일 변하는 기도 시간 때문은 아닐까? 하루 5번의 기도 시간을 딱 맞춰서 기도를 할 수 있는 현대인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일부는 기도를 몰아서 한 번에 오래 하기도 하고, 5번을 기도 시간에 맞춘 것이 아닌 다른 시간을 내어서 하기도 한다. 북아프리카에서 약속은 말이 아닌 상황을 통해 이해하는 문화이다.
결국, 기다리던 택시는 오지 않았고 7월, 한낮에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푸른 대서양을 풍경으로 걸을 수 있음을 감사하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 옆으로 차 한 대가 멈췄다. 독일에 살고 있는 모로코인 부부는 우리에게 아실라로 간다면 시내까지 흔쾌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날씨와 배낭의 무게는 신의 뜻을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있었던 터라, 마이클과 나는 모로코 부부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여성 혼자 여행한다면 절대 히치하이킹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아실라에 예약해 둔 에어비엔비는 대서양을 접한 메디나 안에 위치해 있었다.
아실라는 작은 어촌 마을인데 해변에는 몸과 머리카락을 덮는 부르키니(무슬림용 수영복으로 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와 비키니도 공존하고 있다. 시장은 대서양을 접하고 있어서인지 생선과 각종 해산물을 굽는 냄새가 강했다. 시장 곳곳에 향신료 냄새, 향긋한 과일 냄새가 가득했다. 여행자로 오늘 처음 길에서 만났는데 나를 친구라며 식사와 차를 대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차를 따르는 동안 뜨거운 차가 조금이라도 식도록 주전자를 높이 들고 잔에 차를 따르는 모로코식 차 대접도 빠지지 않았다.
모로코 산지의 체리와 살구는 제철로 최고의 맛이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여행으로 지친 몸이었던 나는 아실라에서 신나게 길거리 음식들을 사 먹었다. 유럽에서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을 건너왔을 뿐인데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과 문화를 마주하게 된다. 해질 무렵 낚시를 하는 사람을 보며 해변을 걸으며 마치, 간판에 아랍어, 불어, 스페인어, 베르베르어가 적혀 있듯이 '멜팅팟'에 빠져 있는 나와 사랑과 그리움의 따뜻함에 빠져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던 나를 보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계획한 바와 같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당시 나는 "인샤알라"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북아프리카 식 친절함과 환대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멜팅팟 안에서 절절하고 달콤한 쿠나파 같은 장거리 연애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온전히 복종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