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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 여행거주 에세이 #에필로그

Tunisia, Morocco, Egypt |

by Wonderer Wanderer

나는 어느새 나에게 가장 낯선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페르시아 시인, 루미는


"일단 길을 걷는 순간, 길이 나타날 것이다."

As you start to walk on the way, the way appears.

라고 했다.


수능을 치고 부모님의 뜻에 따라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했던 나는 내가 한순간도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호주 케언즈에서부터 태즈매니아까지 로드 트립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장학금으로 파리에서 공부하고, 러시아인과 무슬림 친구들을 내 인생 친구로 여기게 될지, 언젠가 내 인생에 "세상의 어머니(Oum El Donia, 움 엘 도니아)"라 불리는 이집트 땅에서 "천 개의 미나렛"이라는 별명을 가진 역사적인 도시, 카이로에 살게 될지 몰랐다.


나는 이 책의 초안을 2021년 코로나가 찾아온 이집트에서, 그리고 향수병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기간에 썼다. 그리고 3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던 이집트에 돌아와 두 번째 출애굽을 준비하면서 2021년 이집트를 떠날 당시 썼던 글을 읽었다. 나는 수십 번 보았던 그 글을 단숨에 글을 읽고 성급히 브런치 작가를 신청해서 연재를 시작했다. 그 당시 내 글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이방인입니다."

북아프리카, 마그레브의 튀니지, 모로코, 이집트의 여행거주기


하지만, 2만 자가 넘는 글 안에 내가 없었다.

그 와중에 제목은 탁월하다. 나는 "내가 지난 10여 년의 걸어온 길에서 있었던 일"을 쓴 글에, 나를 누구보다 이방인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우울증과 공황으로 처참하게 부서졌던 나는 그 와중에도 글을 쓰면서 아픈 나를 어느 때보다 보호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눈물이 흐르는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기 위해 포장하려고 발악하고 있었다.


우리는 때론 여행 중에 만난 낯선 이에게 오늘 간 곳은 어땠는지 다음 도시는 어디로 갈지 이야기한다.


얘기가 잘 맞고 유쾌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 어느새 5분 전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지까지 솔직하게 털어놓게 된다. 한국에서 이런저런 고민들로 잠 못 이루고 힘든 시간이 있었는데, 여행 중에 만난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 고민의 결정을 마치 "원래 나 자신인 양" 드러내고 있었다.


‘내 심장이 원하는 것이 이거였구나.‘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 성인의 시작점에 선 나는 어느새 나에게 가장 낯선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내 진정한 모습과 온전한 나를 알지 못한 채,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인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조차도 같이 못한 채 사회나 부모가 바라는 모습을 눈치 보며 살아왔었다. 한국의 많은 청소년의 꿈은 자신의 꿈이라기보다는 타자의 욕망의 가깝다. 이제 돌이켜 보면 "나는 한국에서 나 자신 자체보다는 남들이 바라보는 평가하는 나로 살도록 훈련받아 왔다"라고 느낀다.


나의 편견에 상대방을 가두는 순간 여행의 폭이 좁아진다

사회의 기대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나 자신을 가두는 순간

내 마음과 몸의 폭은 좁아진다.

그게 반복되어 체내화 된 사람들은 성장을 멈추게 된다.


나는 종종 타인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가거나 그러지 않았을 때 나 자신을 믿기보다는 흔들리고 불안해했다. 나 자신을 알고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제 나는 세상에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시작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 같다. 이곳의 삶은 분명히 나를 완전히 부수어 버려서 나 자신을 내려놓은 채로 내 삶의 이방인이 아닌 남의 권유에 내 선택을 맡기는 것이 아닌 내 욕구를 아는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들었다.



두 차례 출애굽


출애굽 선언만 수십 번, 출애굽 기념 졸업 여행만 3-4번, 사직서에 퇴사일을 수십 번 고치고 한국에 돌아가서, 한국땅 아니면 다시는 안 밟겠다더니 "나일강 물을 마시면 정말 이집트로 돌아오는 건가 "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집트에 남아 있던 직장 동료들을 겁탈하면서까지 나는 이집트에 다시 돌아왔다.


이집트 생활을 정리하는 출애굽을 준비하며 나 자신의 정체성,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을 했다.

누구보다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내가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겪은 것은 상처투성이인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나 자신인 내가 몰랐고, 내 마음을 어떻게 다루고 안정시킬 수 있을지 몰랐다.


때로는 길에서 미친 듯이 행복하고, 어린아이처럼 웃으면서, 똑같은 길을 여러 번 걷기도 했고, 완전한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기도 했고, 또 괜찮아졌다며 돌아오기도 했고, 그 길에서 끊임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우리는 자신만의 길을 가다, 또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다시 만나서 걷기도 했다.


드디어 그 길을 다 걷고 나서야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직면하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방인으로 국제적인 이방인이 되기를 자청하며 확실한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떠났다. 도피를 했고, 피했고, 쉬었고,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부서지고 무너지고 다시 시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항상 기꺼이 이방인이 되었고 그 길에서 기꺼이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비틀거렸고 다시 돌아가고 헤매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 길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완전히 나 자신을 버리자. 그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큰 범주에서 누구나 이방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방인의 삶이라도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삶을 살고 싶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알고 온전히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또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기회는 동시에 책임과 불안감을 동반한다.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기로 앞에서 내가 중심이 되어 선택하기보다 많은 선택지 중에서 누군가가 권유하는 선택을 많이 해왔음을 느낀다.


작년과 올해 나는 ‘내가 둥지를 틀고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한국이 혹은 외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맞는 사람인가? ’ 향수병인가, 이방인, 떠돌이 생활에 단순히 지친 것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결론은 그때마다 나를 이끄는 곳에서, 어디에서든 세계 시민으로 살면 된다.


"신을 웃게 하고 싶다면 너의 계획을 신에게 말하라"

If you want to make God laugh, tell him your plans

라는 이디씨(Yiddish) 유대인 속담이 있다.


길을 가다 보면 다른 길이 만들어진다고 했던가, 나는 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안다. 언제든 그랬듯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슬픔도 아픔도, 찰나 같던 행복과 기쁨도, 그 모든 것을 안고, 걸어 나갈 것이라는 것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늘도 감사한 마음을 선택할 것이다.

그 길에서 만났었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나는 오늘도 길을 나서며 말한다.


함둘릴레(신을 찬양합니다, 신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인샤알라(신의 뜻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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