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나라, 레반도프스키의 나라
이전 글에서는 필자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및 교환학생 모집에 지원한 계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글에서는 본인이 폴란드 바르샤바로 교환학생을 가기로 한 이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보통의 한국인들은 교환학생 하면 영미권 국가나 일본, 중국 등 특정 대표적인 국가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일부 독자들은 왜 다소 생소한 국가인 폴란드를 선택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이해한다. 실제로 내가 속한 한 모임에는 나랑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한 후배가 있는데, 다른 동기들은 그 친구의 도시만 듣고도 거기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반면 나는 나라만 얘기했는데도 거기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동기들이 수두룩했다. 아마 세계여행 모임이 아닌 이상 대부분 그 모임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리라.
실제로 독자 여러분은 '폴란드'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작년에 우리나라와 역대급 방산 계약을 수출한 나라, 쇼팽의 고국 정도로 생각하는 게 전부일 것이고, 여기서 해외축구 팬이라면 레반도프스키까지는 생각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폴란드 가면 레반도프스키 가족 만나서 그분 사인 좀 받고 오라는 시답잖은 농담까지 건넸다(마치 외국인 친구가 한국인한테 손흥민 사인 좀 받아달라는 말과 같은 격). 이 정도 얘기만 해도 한국인치고는 꽤 아는 편이다. 내가 봤던 많은 사람들은 폴란드에 간다고 말을 하면 대부분 생소한 반응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나중 되니까 내가 전혀 다른 국가인 '핀란드'로 간다고 알고 있었다. 폴란드인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폴란드에 대한 한국인의 현재 인식이다. 하지만 너무 상심하지 마시길. 일단 첫째, 원래 인간은 자기 나라 주변국이 아니면 보통은 타 국가에 관심이 덜한 법이고, 둘째, 이 흑투리가 앞으로 폴란드에 대해 많은 소개를 해 줄 예정이니까.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는 왜 폴란드를 택했는가? 사실 나도 처음부터 폴란드를 가기로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내가 갈 수 있는 수많은 나라들 중 하나로만 생각했을 뿐, 특별히 이 나라가 유독 미칠 정도로 좋아서 점찍어둔 건 아니다. 내가 최종적으로 폴란드를 선택한 이유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는데, 그것들을 설명하려면 먼저 내가 재학 중인 학교의 교환학생 모집 요강을 알 필요가 있다. 일단 외국에서 한 학기를 보낸다는 큰 틀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총 네 가지였는데, 하나하나 설명해 주겠다.
사실 이 선택지는 교환학생 과정은 아니고 어학연수 프로그램인데, 어쨌든 본교 캠퍼스가 아닌 외국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어느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었다. 본인이 다니는 대학교는 이사장님께서 재력이 높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덕분(?)인지 몰라도 미국 하와이에 우리 학교의 캠퍼스가 따로 있다. 바로 그 캠퍼스에서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수료할 수 있는데, 장기로 신청하면 한 학기 전체를 이 캠퍼스 안에서 공부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영어가 부족한 친구들이 캠퍼스에서 진행되는 수업들과 현지 문화 체험 등을 통해 영어 실력을 향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의 공식 주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결정적인 단점 때문에 해당 선택지를 후순위로 두었는데, 첫 번째는 같이 교류하는 학생들이 자교생들이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이 프로그램의 수업들이 전공선택 수업으로 이수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다양한 곳에서 온 외국 친구들과 함께 경험을 쌓고 싶은데, 아무래도 한국인들과 같이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그 나라에 완전히 적응한 느낌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엄연히 외국어로 전공수업을 듣고 싶은 거지, 순수히 영어실력 함양만을 위해 외국에서 공부하려는 게 아니다. 만일 한 학기를 전부 교양수업으로 들으면 본래의 의도와 맞지 않을뿐더러 졸업요건 달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가장 보편적이고 다양한 학교들이 포함된 선택지이다. 일반적으로 영어도 힘든데 다른 언어까지 공부할 여력이 없을 한국인의 특성(?)상 제일 많이 지원할 선택지로 보이는데, 그만큼 소속된 국가와 학교의 수도 다양하다. 영어권 국가는 다시 영미권 국가들과 비영미권 국가들로 나뉘는데(편의상 대부분의 지역에서 모국어가 영어인 국가를 영미권 국가로 통칭하겠다), 영미권 국가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가 있으며, 비영미권 국가들은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 국가들부터 시작해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의 아시아 국가들까지 다양하다(참고로 앞에서 언급한 교환학생 후배가 간 학교도 이 선택지 안에 존재한다!). 얼핏 보면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몇 가지 기준을 두고 고르면 생각보다 남는 국가들이 몇 개 안 된다. 내가 학교를 고르는 기준은 딱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해당 국가의 물가이고, 두 번째는 전공선택 이수 가능한 과목들의 존재 유무였다. 일단 물가가 너무 높은 국가들을 지양하다 보니 미국이나 영국 등은 자연스레 걸러지게 되었고, 그중 본인의 전공수업이 포함된 학교들을 추려본 결과 폴란드와 말레이시아밖에 안 남았다.
말 그대로 일본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의 학교에서 공부하는 선택지이다. 당연히 고를 수 있는 학교들은 전부 일본에 있다. 본인에게 이 선택지에는 몇 가지 매력적인 부분들이 있었는데, 일단 외국들 중에서 일본이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게 영향이 상당히 큰데, 항공비 절감이나 가까운 국가라는 심리적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좋다. 게다가 치안이 좋고 볼거리도 많은 일본 자체의 장점도 있고, 당시 내 JPT(일본어 능력 평가시험) 최고점이 785점이었던 만큼 언어적으로도 적응하기에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오랜 기간을 한 국가에서 지내는 건 앞으로 평생 없을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그 국가를 일본으로 정하기에는 뭔가 아쉬울 것 같았다. 본인은 평소 일본에 관심이 많은지라 앞으로도 살면서 일본을 방문할 기회는 많을 텐데, 이왕이면 살면서 좀처럼 가기 어려운 국가를 고르는 게 더 알차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영어권에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별개로 JLPT N1급을 준비하기는 했다. 원래는 다른 언어권끼리 교차지원은 안 되지만, 추가모집 때 다시 지원을 받기 때문에 그 점을 노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중국 본토를 의미한다)에 있는 학교에서 중국어로 공부하는 선택지이다. 나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중 중국어 실력이 제일 떨어져서 언어적으로는 제일 불리하다. 하지만 의외로 아주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이 선택지에 있는 몇몇 학교들이 일본의 학교들에 비해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었다(우리 학교의 유학생들 중 중국인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서 그런 걸까?). 그 외에도 경제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중국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기에, 개인적으로 중국에서 공부하는 것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일본처럼 방문할 기회도 많을 것 같고, 심리적으로도 진지하게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선택지들 중 가장 후순위로 두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중국 공산당에 대한 반감 정서가 강해진 현 시국을 생각하면, 어떤 의미로는 중국을 선택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정리하면, 나는 위 네 가지 선택지들 중 영어권 국가로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선정되지 못할 경우 추가모집에서 일본어권으로 지원하는 전략을 택했다. 주요 언어권 국가를 골랐다면, 다음으로 할 일은 1 지망, 2 지망, 3 지망 학교를 정하는 것이다. 아까 말했듯, 내가 정한 영어권 국가는 폴란드와 말레이시아였다. 그중 마음에 들었던 학교가 폴란드에 두 군데, 말레이시아에 한 군데였는데, 이제 남은 건 그들 중 어느 학교를 1 지망으로 하느냐였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최종 1 지망은 바르샤바에 있는 '바르샤바생명과학대학교'였다. 우선 나는 동남아시아보다는 유럽에서 장기체류를 하면서 공부와 여행을 하고 싶었다. 동남아시아 역시 여행지로든 물가로든 굉장히 좋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유럽보다는 여행을 가기에도 수월할 테니 말레이시아의 대학교는 아쉽게도 3 지망이 되었다. 남은 두 학교는 각각 포즈난과 바르샤바에 위치한 학교였는데, 내가 '바르샤바생명과학대학교'를 택한 결정적인 요인은 내 전공이었다. 투리의 현생 전공은 생명과학과인데, 전공선택 학점이수를 인정받을 확률이 높은 과목들이 바르샤바 쪽에 더욱 많았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난 내가 선택한 1 지망 학교에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별로 큰 의미는 없다. 오히려 조장이 되어 귀찮기만 하다), 글을 쓰고 있는 2월 18일 현재는 출국일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나는 뜻하지 않게 폴란드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대학교들마다 지망할 수 있는 교환학생 국가와 전형에는 차이가 있다 보니, 아마 모든 교환학생 희망자들이 나와 같은 선택지를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학교를 정한 기준과 방식이 교환학생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학교를 고르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내가 수동적으로 폴란드를 선택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 나라 자체가 좋아서라기보다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고른 느낌 말이다. 당연히 그럴 리 없지 않겠는가. 비록 소거법으로 정한 감이 없잖아 있다만, 폴란드 역시 교환학생으로 가기에 나름 매력 있는 나라이다. 그렇다면 폴란드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가? 원래는 그걸 이 글에서 다루려 했는데, 말이 너무 길어졌다. 작가의 피로도와 독자의 집중력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이번 글은 여기에서 마치겠다. 폴란드 자체에 관한 얘기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오늘은 폴란드에 대해 딱 두 가지만 알면 된다. 쇼팽의 나라. 그리고 레반도프스키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