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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4) 나는 합격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나

눈물겨운 멀티태스킹

by 흑투리

'시작이 반이다.'



이 속담은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말이면서, 또 참으로 싫어하는 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결과적으로는 어떻게든 흘러가게 되어 있지만, 또 그 과정이 험난하기 때문에.




만약 나한테 불쑥 머리를 들이밀며 교환학생 준비과정이 어렵냐고 물으면, 나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건 사람마다 케바케이기 때문에. 다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교환학생 준비 과정은 높은 확률로 '귀찮고 거추장스럽다.' 상. 당. 히. 물론 파견 학교마다 요구사항이나 주변 환경이 달라서 특별히 이게 어렵다 하고 콕 찍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 분명히 답답하거나 복잡한 부분은 있을 것이다. 이전에 언급했던 교환학생 후배 얘기를 살짝 해볼까? 그 친구는 학교에서 기숙사 제공을 해 주지 않아 숙소를 직접 찾아야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파견 기간이 해당 국가의 특별한 행사기간과 겹쳐서 숙소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는 그 문제가 출국 직전까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다음 글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비자 결과가 출국일 당일에 나와서 준비기간 동안 엄청 X 줄을 탔어야 했다. 결국 나나 그 후배나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이미 구매한 항공편을 변경해야 하는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저 문제들은 교환학생에 선발된 뒤의 문제이다. 누군가에게는 저 고민이 행복한 고민이라고 기만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내 친구들 중에도 부러운 자식이라면서 개꿀 빤다고 장난식으로 얘기하는 친구가 있다. 당사자의 입장이 되면 다르지만, 한편으로 이해는 간다. 일단 최종선발이 되어야 출국 준비라도 할 거 아닌가? 내가 선발된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원했던 자리를 대신해서 앉는 거다. 그게 미국 같은 나라라면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내가 교환학생으로 공식 선발되기 위해 어떤 준비들을 했었는지 공유해보고자 한다. 본인이 재학 중인 학교와 파견 국가의 언어권에 따라 요구사항과 경쟁률에는 세부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권 파견 학교에 한해서라면 내가 준비했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분명히 참고가 될 것이다.




1. GPA, 학교 성적
내가 입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기본기'이다. 여러 강사들이 손흥민 선수에 관해 공통적으로 하셨던 말씀이 있었는데, 아버지 되시는 손웅정 감독이 손흥민 선수에게 '기본기'를 강조하셨다는 거다. 물론 감독의 훈육 방식에는 최근 논란과 사건이 많지만, 분명 손흥민 선수가 오랫동안 최고의 선수로 남을 수 있는 것에는 '기본기'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파견 학교에 있어 기본기가 GPA인 것 같다. 교환학생은 말 그대로 교환한 학교에서 공부하는 거지, 언어를 배우는 어학연수와 엄연히 다르다. 본인이 속한 학과의 기본적인 지식이나 자질이 없다면, 영어를 잘한 들 어떻게 파견학교의 수업을 따라잡을 수 있겠나? 심지어 서울권의 학교들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공수업에 영어의 비중이 필연적으로 높아진다. 영어로 된 전공용어들을 아예 모른다면, 수업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 자명하다.



감사하게도, 나는 2학년 때까지 학점이 4.1을 넘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또 기만질한다고 생각하려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받아들이겠다. 다만 저 성적 뒤에는 슬픈 이면이 있는데, 일단 내가 저학년이었을 때는 코로나 특수로 성적을 후하게 줬다. 게다가 나는 그때 약대 입시를 준비했고, 약대 입시 역시 학교 성적을 점수에 반영했다. 내 전공은 생명과학과이기 때문에, 입시 때 공부하는 내용들이 전공 공부의 배경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입시에는 떨어졌지만. 나는 지금도 내 성적을 대학생의 젊음을 바친 희생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교환학생을 원했던 걸지도 모른다. 청춘 대학생답게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투리 본인의 3학년 2학기까지의 성적표. 하단 오른쪽을 보면 평균 학점 4.15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아, 다만 독자들 중에서 GPA가 낮은 교환학생 꿈나무들이 있다면 아직 희망을 잃지 마시길. 저거는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한 파견 학교의 명분(?)이고, 공인 영어 성적과 자소서/면접 점수가 높으면 얼마든지 역전 가능하다. 특히 유럽 학교를 노리는 학생이라면 경쟁률이 그리 힘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읽기를 멈추지 마시오.




2. 국제교류모임(선택의 영역)
이건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영역은 아니지만, 가산점을 준다고 해서 참여한 활동이다. (이걸 두 번째에 넣은 이유는 후술 할 공인 영어와 자소서/면접보다는 중요도가 덜할 것 같아서)


프로그램 과정에서 각각 찍은 팔찌 만들기 인증 장면과 '두 끼' 음식점 소개 장면


나 같은 경우는 여름방학 때 국제여름계절학기를 수강했는데, 4주간 방문학생으로 파견 온 미국 학교 학생들과 여러 가지 활동들을 했었다. 예를 들면 오전에는 한국어 수업이나 문화, 역사를 공부했고, 오후에는 한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주요 서울 관광지들을 갔다. 이 수업에는 '버디'란 개념이 있었는데, 한두 명의 외국 학생들과 짝을 지어 직접적인 소통 및 도움의 대상이 되어주는 역할이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한국인 학생 반 외국인 학생 반으로 짠 조 중심으로 활동을 한지라 이 때는 버디가 크게 의미가 없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다른 누군가가 내 버디가 되어주는데, 과연 버디와 얼마나 소통하게 될까 기대된다.



내 조원들 중 한 명이었던 외국인 친구. 이 친구는 추후 내 교환학생 비자 소식까지 전해달라고 할 만큼 가카운 사이가 된다.


참고로 좀 짜증 나는 점을 말하자면, 이 계절학기 활동은 4주 동안 대부분 오전과 오후 활동이 다 진행된다. 보통의 계절학기 수업은 2주간 오전이나 오후 수업만 하고 끝인데, 왜 이렇게 활동시간을 길게 잡았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추억은 많았는데, 역설적으로 이 활동 덕에 TOEFL과 JLPT N1을 공부할 상당한 시간이 뺏기고 말았다. 본질을 조금 놓쳤다고 해야 하나. 물론 각자의 학교마다 가산점을 주는 프로그램은 다르고 다양하다. 개인의 상황마다 여력이 된다면 취사선택하시길.




3. 공인영어 성적
대학생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공인영어시험은 TOEIC, TOEFL, TOEIC SPEAKING 등 다양하다. 다만 교환학생을 준비한다면 개인적으로는 TOEFL을 추천하는데, TOEIC은 제한이 있는 학교가 꽤 있는 반면 TOEFL은 거의 모든 학교가 받아들이기 때문에. 물론 학교마다 TOEIC 혹은 다른 공인영어성적도 받아주는 곳도 있으니 이것도 본인이 희망하는 학교 알아보고 선택하시길.



본인 학교에서 지원 가능한 교환학생과 방문학생 학교의 일부. 표에서 알 수 있듯 TOEIC 성적을 받지 않는 학교들이 존재한다.



내가 가는 학교는 TOEFL 성적만 보는 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 일이 모르는 거고, 대부분 학교들의 성적 기준이 TOEFL 기준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에 귀찮게 따지지 않으려고 TOEFL을 선택했다. 사실상 가장 골치 아팠던 게 이 시험이었는데, 이유는 돈과 노력이 가장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조금 웃픈 해프닝을 말하자면, 처음에는 과외 선생님을 한 분 찾아서 그분 밑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앞에서 나온 계절학기수업과 일본 장기일정 등 생각보다 과한 스케줄 탓에 수업을 받기가 어려웠다. 결국 이런저런 일이 안 맞자 시험이 2주가량 남았을 때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수업 포기를 선언하셨다.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헐레벌떡 인강을 수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황당했지만, 다행히도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게 나왔다. 사실 내가 노렸던 건 교환학생 합격이지, TOEFL 고득점이 아니었기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4. 자소서/면접
학교마다 보는 포인트는 다를 테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준비하라는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내 경우는 대기업 입사 면접처럼 깐깐하게 보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최대한 진솔하게만 준비했다. 물론 이건 내 다른 요소들이 받쳐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인영어나 학교 성적이 조금 약하다면 자소서와 면접에서 무언가 강한 걸 보여줘야겠지?


본인 학교의 자소서 양식. 본인의 학교에서는 자소서 대신 수학계획서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 그래도 편의상 자소서라고 부르겠다



내 얘기만 짧게 하자면, 우리는 자소서에 쓴 걸 바탕으로 면접을 보는 식이었다. 그런데 막상 면접을 시작하니 옆에서 다른 참가자들이 말하는 경력이 화려해서 쫄렸다. 어떤 분은 앱 개발 경험자, 다른 분은 과학경진대회 우승자... 반면 난 딱히 한 활동은 없어서 참가자들 중 유일하게 영어로 대답하는 초강수까지 두었다(그마저도 잘한 느낌은 아니었음). 지금 생각해 보면 면접자가 했던 마지막 질문이 '왜 영미권 국가가 아닌 폴란드를 선택했나?'였는데, 아마 내가 그만큼의 경쟁률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보신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상이 내가 교환학생 합격을 위해 준비했던 요소들이다. 아마 본 연재글에서 이 글이 제일 재미없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준비과정은 딱딱하니까. 하지만 핵심이 되는 내용이기에 얘기를 안 할 수 없었다. 만일 이 과정을 잘 거쳐가면, 적어도 우리 교환학생 꿈나무들은 노력으로 준비하기 가장 어려운 구간을 잘 넘어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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