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유경험자는 4달 반 동안 얼마나 많은 목표를 이루었는가?
"시간은 화살과도 같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위의 속담. 폴란드에서 '카르페 디엠(Carpe diem)' 정신을 마음껏 실천하다가, 대한민국이란 국가에 불시착한 것만 같은 투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투리'의 배경은 조선의 설화에 있지만, 지금 본인은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한국어는 유창하나 사고방식이 한국인이 아닌, 그렇다고 폴란드인이라 하기에는 폴란드어를 못하고, 심지어 영어가 되는데 영어권 국가에는 발을 디딘 적도 없는 이 의미심장한 존재. 투리는, 대체 누구?
본인의 흥미로운 정체성 탐구는 뒤로하고, 일단은 한국에 온 지 며칠이 되었는지 세어 본다. 하나, 둘, 셋.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정확히 보름. 시간은 힘들 때는 거북이처럼 가더만, 꼭 이런 때만 야속하게도 화살같이 지나간다. 하지만 별수 있나. 시간을 막을 자, 그 누가 있으리.
불평은 여기까지. 시간의 법칙은 벌써 브런치에도 적용되어, 어느새 다시 새 책의 첫 번째 글로 돌아왔다. 마침 쓸 내용이 아직 많고도 많은 상태. 이번 글에서는 투리가 걸어온 그 기나긴 폴란드 여정을 반추하면서, 앞으로 쓸 글들에 생길 약간의 변화도 함께 알리고자 한다. 본인의 교환학생 전후 심경도 같이 비교될 텐데, 우리의 교환학생 꿈나무들이 이런 본인을 통해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교환학생을 갔을 때 별생각 없이 출국한 학생들도 있겠지만, 많은 학생들은 교환학생 국가로 가기 전에 일종의 버킷리스트를 세우고 간다. 예를 들면 투리와 같은 기숙사 동기 중에 '크리스티안'이라는 인도네시아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의 필수 목표는 스위스의 여러 도시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친구는 부활절 연휴기간 동안 그 목표를 달성했고, 그 경험을 계기로 '독일어 공부'라는 새로운 목표를 갖는다. MBTI J를 자랑하는 투리도 예외는 아니라서, 교환학생 기간 동안 하고 싶은 여러 계획들을 세웠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투리의 바르샤바 교환학생 목표들!
1. 투리가 본 관광책자에 나온 모든 도시들을 방문하기!
2. 프레데리크 쇼팽의 음악회는 꼭 관람하기!
3.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바르샤바 필하모닉 음악회에 꼭 갔다 오기!
4. 폴란드 다음으로 독일에서 가장 오랫동안 거주해 보기!
5. K-Pop 클럽에 꼭 참여해 보기!
6. ESN('Erasmus Student Network'의 줄임말)에서 좋은 동기들 사귀어보기!
7. 무사히, 건강히, 그리고 중요한 물건들 잃어버리지 않고 귀국하기 :)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군가는 생각보다 많이 세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이왕 교환학생 가는 거 왜 다양한 국가들을 안 방문하지'라는 의문을 품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기호와 취향은 다르기에, 모든 폴란드 교환학생이 본인과 같은 목표를 가질 수는 없다. 그렇지만 유경험자의 TMI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법. 본인의 모교 대학교에서마저 풀 생각 없는 이 귀중한 썰을, 투리는 우리 독자들을 위해서 들려주고 있다. 타인의 선례를 들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을까? 그러면 지금부터 투리의 목표 달성 여부를 살펴보자.
투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19주! 아무리 다양한 나라들을 간다고 하더라도, 정작 본진 되는 폴란드를 이곳저곳 다니지 못한다면 이건 한 나라를 진득이 여행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겠는가? 투리는 단타로 아일랜드 하루, 몬테네그로 하루, 이런 식으로 여러 나라를 겉핥기식으로만 다니는 건 싫었다. 본인은 특정 국가들을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하게 알아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여행책자에서 본 기억이 있는 큰 도시들만 한 주에 한 군데씩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곳들이 많았고, 방문한 도시마다 제각기 매력도 넘쳤다. 그 결과 투리는 한 학기 동안 총합 17군데(바르샤바 제외 총합 45일 여행)의 지역들을 방문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 도시와 지역이 어디인지는 차차 기행글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책자에 나와 있는 곳들은 말할 것도 없고, 슈제친이나 3도비체(카토비체, 글리비체, 바도비체) 같은 곳들을 제외하면 도시권 추천 명소는 다 가보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반추해 본다.
사실상 투리가 바르샤바를 좋아하는 최고의 이유이자, 가장 하이라이트로 달성하고 싶었던 목표였다! 본인이 클래식 덕후가 아니라서 쇼팽을 덕후 수준으로 아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릴 적부터 쇼팽 왈츠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환경에 있기는 했다. 특히나 실제 연주회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그 친근한 음악을 생생히 듣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항상 기대했었다.
그래서 투리는 쇼팽 박물관에도 직접 가보았고, 'Time for Chopin' 사이트 예약을 통해 두 번씩이나 실내연주회도 감상했다! 듣는 동안 어릴 적 추억이 얼마나 되살아났는지....계속 들으면 솔직히 질렸겠지만, 실제 음악회를 들었던 그 경험은 투리에게는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주말에 와지엔키 공원에서 무료 쇼팽 피아노 연주회를 못 들은 것과 쇼팽의 고향인 Żelazowa Wola를 방문하지 못한 거랄까? 그렇지만 투리는 제한된 주말 시간 동안 다른 곳들을 돌아다니느라 이미 정신이 없었어서...어쩔 수 없던 일이다.
프롤로그에서도 말했다시피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너무나도 유명한 곳이라 투리가 지나칠 수 없던 곳이다. 그래서 당연~히 방문했고, 이 내용은 추후 아우슈비츠가 있는 '오시비엥침 기행' 편을 쓸 때 다루도록 하겠다. 바르샤바 필하모닉 음악회는 투리가 기말고사가 끝나고 한숨 돌릴 수 있는 6월 중순쯤 방문하려 했는데, 알고 보니 6월 중순부터 9월까지가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쉬는 기간이었다. 이를 너무 늦게 알아버린지라, 투리는 눈물을 머금고 음악회 감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 투리는 비엔나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작은 실내연주회와 중간 규모의 연주회를 따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본인은 여러 곳들을 걸쳐 유럽에서만 즐길 수 있는 공연들을 충분히 즐기고 나왔다. 다만 대규모 수준의 오케스트라 음악회를 즐기지 못한 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아쉽다. 대형 음악회는 나중에 원하는 음악가의 연주회를 여행 국가에서 공연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예약해야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투리는 유럽 국가만 따졌을 때 폴란드 포함 5개, 모두 포함하면 총 6개 국가를 다녀왔다. 그중 독일에는 7박 8일 동안 있었으며, 이로써 독일이 교환학생 시절 방문 국가로는 두 번째, 지금까지 방문한 모든 국가 중에서는 세 번째로 가장 길게 거주한 국가가 되었다!
다만 폴란드 도시들에 생각보다 오래 있었던 관계로, 본래 계획보다는 거주했던 기간이 많이 짧았다. 원래는 놀러 가는 주말의 40%는 폴란드, 40%는 독일 지역을 놀러 가려고 했었는데. 아, 물론 독일도 매력 포인트가 많은 나라이다! 마음 같아서는 독일도 한 달이나 두 달 잡고 최대한 많은 장소들을 돌아다녔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 폴란드에서 Kpop 클럽 파티가 유행이라는 유튜브 영상이 있었다. 당시 클럽을 한 번도 안 가본 투리는 클럽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그곳을 가면 어쩌면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폴란드에 도착한 지 정확히 한 달째 되는 날에 깨졌는데, 우연히 다른 클럽을 먼저 방문하는 일정을 소화하면서 클럽이 투리의 체질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또한 그런 단순한 유흥 시설에서 진정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들면서, Kpop 클럽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 여행 가느라 정신없는데, 굳이 마음이 식은 목표를 달성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투리의 머릿속은 과감히 5번 리스트를 지우고 있었다.
참고로 클럽에 관한 투리의 개인적인 일화가 크라쿠프와 포즈난으로 딱 두 군데에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크라쿠프와 포즈난 기행글을 기대하시길.
브로츠와프 기행글을 보신 분들이라면 본인의 성향을 어느 정도 아시겠지만, 본인은 친구들과 다 같이 왁자지껄 즐기는 여행보다는 혼자서 집중하고 탐구하는 여행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물론 단체로 가는 여행과 혼자 가는 여행 모두 제각각의 매력이 있다. 다만 아무래도 기행글을 작성하는 관점에서 봤을 때 혼영('혼자 여행'의 줄임말)이 더욱 도움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틈날 때마다 바르샤바를 탈주했던 (탈주교환학생 우치하 흑스케) 흑투리는 상대적으로 다른 ESN(유럽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Erasmus라고 명칭) 친구들과의 교류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투리는 ESN 단체 여행이 있다면 무조건 참여해서 여행 목표 완수와 동기들과의 친목을 동시에 꾀했다. 학업량이 적었던 초반에는 박물관 투어와 Bar 모임에서 얼굴도 열심히 비추었다. 그 결과, 당시 한국인 교환학생 5명 중에서는 투리가 가장 외국 친구들과의 교류 횟수가 많았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몇몇 동기들과는 자국 국가로 가면 꼭 연락하라는 덕담까지 주고받았다. 한국에 있든 외국에 있든 본의 아니게 떠돌이 나그네 인생길을 살아온 흑투리. 이 정도면 그래도 선방한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감사하게도 투리는 한 학기 동안 병원이나 보건소 한 번 들른 적도 없고, 큰 이상 없이 한국으로 입국을 마쳤다! 이게 교환학생 내내 건강했다는 말은 아니고, 감기 때문에 두 번 고생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모두 병원을 가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고, 여행에도 큰 지장은 없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옷가지들이랑 미니밥솥, 상비약을 비롯해 투리가 들고 간 가장 비싼 물건인 통기타 '벤티볼리오'까지도 모두 출국 전과 같은 상태로 무사히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사실상 모든 물건들이 안전히 한국에 도착했다고 봐야겠지?
투리는 교환학생 3주 차부터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주말마다 다른 도시를 방문했었다(심지어 시험기간마저도!). 본인도 이런 X친 스케줄이 어떻게 가능했나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단 한 번도 질병이나 건강 이슈로 여행을 쉬었던 적이 없던 것이 감사하다. 만일 몸 상태가 안 좋아서 투리가 갔던 곳들 중 한 군데를 포기해야 했다면, 그곳이 어디였든 너무 아쉬웠을 것이다. 그렇게 틈날 때마다 어딘가라도 가려고 노력한 결과, 지금 투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을 흑투리의 글로 처음으로 접한 교환학생 꿈나무들이나 여행자 분들이 계시다면, 이 글이 많은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평소 투리의 글을 즐겨주시는 분들은 본인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교환학생을 보냈는지 파악하는 재미로 이번 글을 접하셨으면 한다. 자! 그러면 본인 글의 추가 변경점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교환학생 동기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기록!
투리 판단상 실명을 비공개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지는 게 아닌 이상, 앞으로 투리가 마주쳤던 동기들의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단톡에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면서 혹여나 실명이 거론되는 게 두려운 친구는 개인적으로 얘기해 달라고 했는데, 공감 표시만 많을 뿐 아직까지는 개인적으로 연락이 온 게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더 과감하게 동기들의 이름을 특정하면서 글을 진행하도록 하겠다(독자들의 편의나 글의 재미를 위해 별명, 가명을 사용할 수도 있음)! 나중에 투리와 있었던 특정 동기와의 에피소드 글을 따로 올릴까도 생각 중이다.
폴란드의 박물관(미술관)은 대부분 월요일에 닫는다는 점을 잊지 말 것!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큰 영향은 없는 포인트지만, 투리의 글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올리는 사항. 폴란드가 아니더라도 투리가 아는 상당수의 유럽 국가들은 보통 월요일에 박물관이 휴무였다. 이걸 몰라서 우치를 여행했을 때 차질이 한 번 있었는데, 폴란드 여행, 아니 유럽 여행이 처음이신 분들이라면 각자의 일정에 이 부분을 잘 유념해 주시길. (아니면 여행 문외한 투리만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투리의 글은 언제나 본인의 글을 처음 읽는 독자라도 충분히 재밌고 유익한 내용이 될 수 있게!
당연히 투리의 글을 항상 즐겨주시는 분들처럼 앞내용을 알면 이해도가 깊어진다. 그럼에도 본인은 글을 쓸 때 항상 알고리즘으로 처음 이 글에 들어온 분들을 생각한다! 그래서 본인의 글이 비록 회차별로 나오더라도 앞의 줄거리가 현재의 글 이해에 지장이 최대한 없게 만들 것이다! 앞으로도 뜨문뜨문 본인 글에 라이킷을 누르는 애독자, 항상 투리의 글을 읽어주는 구독자, 이 글을 투리의 첫 번째 글로 읽으시는 분들 모두가 만족하는 글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겠다. 교환학생 꿈나무들, 그리고 폴란드에 관심이 많은 분에게, 오늘 글도 유익한 글로 남겨졌으면 한다. 다들 각자의 목표들 번창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