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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집터에 살면 발복하는 사주

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03

by Posy 포지

나는 타로나 운세 같은 것들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K-샤머니즘의 정수는 사주 아니겠는가. 매년 재미로 신년 사주를 보러 가곤 하는데, 그 당시는 특히나 답답한 마음에 뭐라도 보러 간 것이다. 좋다고 들어간 회사가 날 그렇게 힘들게 할 줄이야.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20대에는 주변에 용한 점집 같은 걸 추천해 주는 사람이 없었을 테니, 검색을 해서 찾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압구정에 있는 재미난 조각가라는 사주 카페였는데, 이때 내가 본 OO 선생님*은 지금도 가장 용하다고(?) 생각하는 분이다. 사주는 정해져 있으니 누구에게 보더라도 비슷한 풀이를 듣게 되는 데, 이 선생님 만큼 정확하고 디테일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이 분을 찾으려고 그다음 해에도 찾아갔는데, 안 계셨다. 직원들도 그분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더라.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다.



사주를 보러 간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선생님은 내 사주를 보며 읽기 힘든 글씨로 한자들을 쓱쓱 써가며 말했다.



"작년, 올해는 마음고생이 아주 심했을 거야. 성장을 하려 하는데 뿌리를 박기가 힘든 운 때였지. 노력해 봤자 결실도 없고. 아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겠네."



내가 힘들어서 퇴사한 것이 예정된 운명이었나? 나의 인생 총운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해주시던 사주 선생님이, 지난 한 해에 대해서는 아주 무시무시한 말들만 늘어놓으셨다.



"선생님, 그러면 내년에는 어떻게 되나요? (저 다시 취업해야 하는데..)"



"이때까지 막혀있던 기운이 내년부터는 완전히 트인다. 올해에 비하면 내년은 100배는 더 좋아지겠네. 특히 환경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그 변화 이후로 악재가 다 없어지고 결과 만족이 되는 운으로 바뀌어."



이때 말한 환경 변화가 아마 새로운 회사로의 이직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신년 운세를 각 월별로 나누어서 짚어주었고, 그 한 해가 마치 예정된 것처럼 이루어졌다.



- "원하는 곳에 무조건 가겠다"라고 한 연초에, 나는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다.


- 6월에는 "조직체가 활성화되어 일이 많고 희생해야 하지만 그만큼의 보답이 따른다"라는 말대로 프로젝트가 급하게 진행되어 야근과 주말 출근을 불사했는데, 나는 그것으로 신입사원으로는 드물게 큰 상을 받았다.


-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가는 역마 기운이 있을 것"이라고 했던 8월에는 예정에도 없던 일본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앞서 사주를 매년 재미로 본다고 말할 만큼 많은 사주 선생님들을 봐왔지만, 다시 찾고 싶은 유일한 분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때 들었던 사주 풀이를 가장 신뢰한다.



그중에서 사주 선생님이 짚어주었던 나의 '부동산 운'과 관련한 내용이 있다.



"당신은 돈에 상당히 절대적인 운이 있는 사람이야. 돈이 뿌리를 박고 있어서 들어오는 운도 있고, 지키는 운도 있네. 심지어 성장 요소까지 다 가지고 있다.



토덕이 있는 데, 즉 큰돈을 마련할 수 있는 토대는 아마도 땅과 부동산이 될 거다. 특히 사주에 이 글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땅과 감응해서 좋은 집터에 살면 발복한다. 당신 사주에 잘 맞는 좋은 지역을 짚어준다면, 삼포와 용산이다."



"삼포가 뭔데요?"



"반포, 개포, 마포."



사실 사주 선생님은 부동산에 관심이 있으셨던 걸까. 반포, 개포, 마포, 용산이라니. 물론 그때도 충분히 좋았지만 지금은 날아가 버린 곳들인데, 10년 전에 이런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그때부터 삼포와 용산이 내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았다고 해야 하나. 수중에 모은 돈은 0원이었고 부동산의 ㅂ도 몰랐던 시절이지만 왠지 나랑 꼭 맞는 지역일 것만 같이 느껴졌다.




EP 3. 용산.jpg 내가 용산을 좋아하긴 해




이게 20대 중반의 일이니, 근 10년 전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자세히 기억하냐고?



나는 모든 걸 다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사주 선생님이 본인이 풀이하며 쓴 메모지를 주시긴 했지만, 나중에는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것 같아 그날 밤 복기를 하며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시 적어두었다.



사주에 나온 것 처럼 내년 운세는 제발 좋아지길 바라며 간절히 적었던 기억이 난다.




EP 3. 사주 1.jpg 사주 총운 중 발췌



EP 3. 사주 .jpg 삼포와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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