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움을 결정짓는 배경의 조건

하이엔드 주거의 입지와 커뮤니티

by 지감독

좋은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단지 내부 설계를 완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은 물리적 구조물이자, 일상의 태도와 감도를 담아내는 그릇이며, 결국 삶을 품은 하나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섬세한 마감재와 치밀한 평면이 적용되었다 하더라도, 그 공간이 놓이는 입지의 맥락함께 살아가는 커뮤니티가 적절하지 않다면, 고급 주거는 비로소 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다.

지금, 고급 주거는 더이상 집이라는 개별 오브젝트의 완성도가 아니라, 삶을 둘러싼 총체적인 환경의 퀄리티로 판단되고 있다. 입지와 커뮤니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공간의 격을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다.



입지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하이엔드 주거에서 입지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프리미엄 요소다. 하지만 그 입지를 평가하는 기준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시세 상승 가능성, 학군, 교통 접근성 등 자산적 가치 중심의 기준이 입지를 판단하는 주요 요소였다. 특히 '강남', '한남', '해운대'와 같은 지역 이름만으로 고급 입지를 설명하던 시대도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의 하이엔드 수요층은 더는 단순히 주소나 땅값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이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삶의 감도가 유지될 수 있는 생활 반경이다. 예컨대 연희동, 성북동, 이촌동, 방배동처럼 비교적 조용하고, 저밀도 환경이 조성된 지역으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으며, ‘얼마짜리 땅인가’보다 ‘어떤 삶이 가능한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또한 한때 ‘고급 주거 = 고층 + 조망’이라는 공식도 더 정제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고층에서의 한강 조망, 남산 뷰는 여전히 유효한 프리미엄 요소지만, 이는 단지 자산 가치로서의 조망이 아닌, 자연을 일상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창 너머로 펼쳐지는 산이나 물의 풍경은 바쁜 도시 일상 속에서 감각을 환기시키는 여백의 역할을 하며, 하이엔드 주거의 감도를 결정짓는 정서적 요소로 작동한다.



입지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프리미엄 요소

하이엔드 주거를 구성하는 요소가 다양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입지(Location)는 가장 직관적이고 강력한 프리미엄의 기준이 된다. 다만 이제는 단순히 지역 이름만으로 평가되지 않고, 더 세밀하고 복합적인 기준으로 입지를 해석한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높은 땅값이 아니라 삶의 감도가 유지되는 생활 반경이다. 소음과 혼잡에서 벗어난 조용한 환경, 유동 인구가 적고 진입이 제한된 구조, 차폐감 있는 배치 등이 주요 판단 기준이다.

특히 문화적 배경이 살아있는 동네 — 예를 들어 미술관, 서점, 셀렉샵, 베이커리, 하이엔드 리테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지역 — 은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는 입지로 평가된다. 좋은 동네가 아니라 좋은 삶이 가능한 동네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자연환경과의 인접성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조망을 위한 고층보다는 일상의 루틴 안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산책길, 단지 내 조경, 수변 동선 등은 그 자체로 고급 주거의 일부가 된다. 이는 조망과 자연이 단지 '보는 것'이 아닌, 공간을 통해 감각하는 요소로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커뮤니티의 가능성도 입지 판단의 주요 변수다. 특정 지역에 동일 수준의 브랜드 레지던스가 밀집해 있거나, 프라이빗 클럽, 호텔, 고급 마켓 등과 연계된 클러스터 속에 단지가 존재할 경우, 입주는 단순한 주소의 의미를 넘어서 라이프스타일의 연결로 인식된다. 하이엔드 주거의 사용자는 이제 얼마에 지어졌는가 보다는 어떤 삶이 가능한가를 기준으로 입지를 바라본다.



공간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숨은 맥락, 커뮤니티

고급 주거에서 커뮤니티는 단순한 이웃의 개념을 넘어, 삶의 감도와 리듬을 공유하는 감각의 공동체로 인식된다. 과거의 공동체가 보안이나 실용성 중심이었다면, 오늘날의 하이엔드 커뮤니티는 정제된 취향, 조용한 배려, 그리고 높은 수준의 문화적 소비를 함께하는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이 때문에 커뮤니티는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기획되는 조건으로 중요해지고 있다.


glo-ar-2023-azabudai-hills-mori-jp-tower-tokyo-2-01298329_16-9.jpg 도시형 커뮤니티 플랫폼을 구축한 도쿄의 아자부다이 힐스 (Azabudai Hills)


대표적인 사례는 도쿄의 아자부다이 힐스(Azabudai Hills)다. 이 복합단지는 단순히 고급 주거 단지를 조성한 것이 아니라, 호텔, 국제학교, 프라이빗 클럽, 미슐랭급 레스토랑, 하이엔드 리테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도시형 커뮤니티 플랫폼을 구축했다. 입주민은 집 안팎에서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경험하며, 동선을 공유하는 이들 역시 유사한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공간이 아닌 삶 전체가 연결되는 커뮤니티 환경이 고급 주거의 핵심 가치를 형성한다.

이러한 커뮤니티는 입주민의 사생활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선택적 교류와 안목 있는 자극을 가능하게 한다. 프라이빗 라운지나 루프탑 가든, 예약 기반의 스파, 작은 큐레이션 전시 공간 등이 바로 그 예다. 이처럼 단순한 공간 공유가 아니라, 경험의 수준을 공유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고급 커뮤니티의 핵심이다.



하이엔드 주거는 단순히 실내 공간의 고급화를 넘어선다. 진짜 프리미엄은 벽 안쪽이 아니라, 벽 밖의 조건에서 비롯된다. 입지와 커뮤니티는 이제 공간을 구성하는 ‘외부’ 요소가 아닌, 하이엔드 주거의 정체성과 가치를 결정짓는 내부 설계의 연장선이다.

집이 곧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시대.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보다 앞서, 그 삶이 머물러야 할 곳의 분위기와 맥락을 설계해야 한다. 공간은 언제나, 그 배경이 만들어낸다.

keyword
이전 03화라이프스타일이 이끄는 공간의 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