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변화가 만드는 공간의 키워드
하이엔드 주거는 단지 고급 자재와 넓은 면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제 고급 주거는 더 이상 자산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감각 있는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수요층이 등장하면서 공간은 '얼마나 잘 지었는가' 보다 '얼마나 나의 삶과 잘 맞아떨어지는가'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거 공간은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담는 플랫폼이 되고 있으며 하이엔드 시장은 그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번 글은 오늘날의 고감도 수요층이 실제로 요구하는 설계 키워드이자. 하이엔드 주거가 이를 어떻게 공간에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도 바꾸어 놓았다. 단지 '고급'이라는 이유만으로 열린 시야와 많은 이웃을 공유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만의 루틴과 리듬을 방해받지 않는 고요하고 단절된 일상을 원한다. 프라이버시는 하이엔드 주거의 기본값이자 차별화의 조건이 되었다.
수직 동선의 분리, 전용 엘리베이터, 세대별 독립 출입구 등은 외부로부터의 시선과 동선을 차단하며 집으로 들어오는 길 자체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실내에서는 가족 간의 동선 역시 기능적으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파우더룸이나 드레스룸이 방마다 개별로 제공되거나, 침실과 욕실을 하나의 독립된 유닛처럼 구성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설계는 단순히 '더 비싼 집'이기 때문이 아니라 더 개인화된 삶을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이엔드 주거는 이제 '크고 화려한 집'보다 보호받는 나만의 공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라이버시와 더불어 오늘날 보여지는 라이프스타일은 더 이상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동일한 면적, 동일한 구조의 공간에 '같은 방식의 삶'을 이식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사람들은 똑같은 삶을 모방하기보다, 자신의 취향과 루틴에 맞춘 삶을 스스로 기획하려 한다.
이러한 변화는 하이엔드 주거 설계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공간을 제공하는 대신,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염두에 둔 열린 결말의 설계가 중요해진 것이다. 미니멀한 마감, 유연한 방 배치, 기능이 고정되지 않은 여백 있는 구조는 그 대표적인 예다. 하나의 방이 서재, 요가룸, 게스트룸 등으로 자유롭게 변할 수 있도록 가변적인 구조와 배선 설계를 기본값으로 두거나, 주방 상판 또는 벽체 마감의 톤을 미리 정해주는 대신 무채색의 중립 팔레트로 마감해 입주자의 커스터마이징을 고려하는 식이다.
하이엔드 주거에서의 커스터마이징은 옵션 체크리스트의 다양함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방식이 들어설 수 있는 여백의 설계에서 출발한다. 기획자는 모든 것을 채워넣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비워두어야 할지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하는 시점인것 같다.
삶의 감도는 공간의 질감에서 비롯된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예쁜 인테리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촉감, 조도, 재질의 깊이를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인식하며, 느껴지는 공간을 원한다. 이것이 하이엔드 주거가 반드시 디테일로 완성되어야 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간접 조명을 활용한 낮은 조도 설계는 시각적 편안함을 주고 다양한 마감재의 조화는 감각적인 밀도를 더한다. 사용자의 동선에 맞춘 수납 높이, 문 손잡이의 재질, 공간의 음향까지 설계하는 디테일은 하이엔드 주거가 왜 고급스러운지를 설명해주는 가식적이지 않은 설계 언어다.
이제 주거는 단지 기능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경험을 축적시키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고급 주거는 바로 그 경험을 얼마나 섬세하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감도의 깊이가 달라진다.
하이엔드 주거는 더 이상 단순한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다.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그 공간은 사용자 각각의 라이프스타일, 감도,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존중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가치를 갖게 된다.
이제 집은 자산의 일부가 아니라 자기다움(Selfhood)을 담아내는 공간이자, 삶의 리듬에 맞춰 끊임없이 조율되는 플랫폼이다. 변화하는 수요에 발맞추어 하이엔드 주거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기획자는 이 변화의 흐름속에서 무엇을 줄것인가 보다 무엇을 남겨 둘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의 고급 주거는 단지 고가의 공간이 아닌, 개인의 삶을 더욱 정교하게 표현하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은 결국 기술이 아닌 감도 높은 기획의 힘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