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공간'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확장되는 주거 트렌드
앞선 글에서 우리는 하이엔드 주거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았다. 성북동, 평창동의 단독주택 시대부터 방배동과 청담동의 고급 빌라, 타워팰리스와 같은 주상복합의 등장을 지나, 최근에는 나인원 한남과 같은 브랜드 중심의 주거까지 - 공간의 형태와 기획 방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이렇게 하이엔드 주거의 모습이 바뀌어온 배경에는 그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들, 즉 수요층의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소수의 자산가나 특정 계층을 위한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고급 주거가 이제는 더 넓은 층위의 사람들에게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감각적인 안목과 고급화된 선택 기준을 지닌 새로운 소비자층이 등장하면서, 하이엔드 주거는 단순히 비싼 집이 아닌, 감도의 기획이 담긴 주거 플랫폼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최근 하이엔드 주거가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 공간을 실제로 소비하고자 하는 새로운 수요층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감도 높은 안목과 큐레이션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이들이 중심에 섰다.
단순히 자산 규모로만 보더라도 부자의 수는 빠르게 증가 중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고액자산가'는 2023년 기준 약 48만명, 이는 5년 전 대비 4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들은 주거를 단순한 투자처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취향, 삶의 양식을 반영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을 원한다. '집을 산다'는 개념이 아닌, '삶을 기획한다'는 관점에서 공간을 바라보는 것이다.
더불어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큐레이션 기반의 소비 트렌드도 이러한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단순히 넓고 좋은 집보다, 감도 높은 취향이 반영된 고급 공간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 SNS과 컨텐츠 플랫폼의 확산은 이들에게 고급 인테리어,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 협업 아파트 등으로 '라이프스타일을 공간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빠르게 전파했고, 이는 공간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하이엔드 주거는 이제 단지 '있는 사람들의 집' 이 아니라 감각있는 사람들의 삶을 구현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급 주거는 자산가뿐 아니라 좋은 삶의 질을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이들의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과거 하이엔드 주거의 수요층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녔다. 자산을 보전하고자 하는 보수적 수요, 기축 시장을 중심으로 한 실거주 또는 투자 목적, 면적과 입지를 우선 순위로 두는 전통적 선택 기준 등이 그것이다. 고급 주거는 일종의 자산 축적 수단이자, 안정적인 거주지로서의 역할에 집중되어 있었다.
반면 위에서 언급한 새로운 고감도 수요층은 그 양상부터 확연히 달라졌다. 이들은 브랜드의 철학과 감도의 완성도, 컨텐츠로서의 공간 기획을 중시하며,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지, 그 공간이 삶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지를 기준삼아 주거를 선택한다. 이제는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가에 더해 얼마나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감각에 부합하는가를 함께 묻는 시대다. 특히 브랜디드 레지던스 처럼 여러 세대가 함께 구성되는 모델에서도 정교한 큐레이션과 설계의 유연성을 통해 개인화된 감도를 구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처럼 수요층의 변화는 단순한 마케팅 키워드를 넘어서 공간 기획의 방향 자체를 바꾸고 있다. 더 이상 면적이나 자재, 조망과 같은 물리적 조건만으로는 고급 주거를 설계할 수 없다. 삶의 방식과 공간 경험의 일치, 정체성과 취향의 반영, 사용자 중심의 디테일한 기획이 필수 요소로 작용하며, 이는 곧 하이엔드 주거 기획에 있어 디자인과 건축을 넘어 브랜드 기획, 컨텐츠 전략, 사용자 시나리오 설계까지 포함되어야 함을 뜻한다.
결국 이러한 새로운 수요층의 감각과 태도, 삶의 방식을 어떻게 정밀하게 읽어내고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구현하는가에 따라 단순한 주거 상품 설계를 넘어 복합적인 시나리오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다음 글에서는 이 새로운 수요층이 실제로 어떤 삶을 꿈꾸는지, 그리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떻게 공간의 구조와 기능, 서비스 방식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공간은 곧 삶의 방식'이라는 전제를 중심에 두고,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어떻게 주거 공간의 진화를 이끌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