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서 시작되는 고급의 언어

하이엔드 주거의 외관과 철학

by 지감독

입지와 환경이 결정되고 고급 주거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단지 내부의 마감도, 구조도 아닌 바로 외관과 접근의 리듬이다. 설계자는 입면의 리듬과 동선의 흐름을 통해 거주자의 수준과 분위기를 가장 먼저 제안하고, 사용자는 이를 직관적으로 감지한다. 결국 ‘고급스러움’이란 것은 단지 고가의 자재나 넓은 평면이 아니라, 건축적 언어를 통해 삶의 레벨을 암시하는 분위기에서 비롯된다. 이 글에서는 외관, 조망, 입면, 동선 등에서 드러나는 건축적 철학이 어떻게 고급 주거의 감도를 완성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인상을 결정 짓는 입면의 밀도감

하이엔드 주거의 외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존재감 그 자체다. 건축의 외피, 즉 입면(Façade)은 단지 건물의 마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료와 비례, 빛과 그림자의 조합으로 사용자의 눈과 마음에 전달되는 첫 ‘촉감’이다. 이전에는 고급 주거를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장식과 대형 창, 커튼월 외피가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분명히 다르다. 고급스러움이란 ‘고요한 디테일’에서 비롯된다는 인식 아래, 절제된 재료의 조합과 조형성 있는 입면 설계가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특히 천연 석재나 매트한 금속 루버, 조적 마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깊이를 더해주며, 건물의 나이테처럼 공간의 품격을 쌓아간다.

예를 들어, 최근 서울에서 주목받는 하이엔드 단지들은 화려한 입면 대신, 균형 잡힌 수직 리듬과 깊이감 있는 창호 배치로 시간과 빛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건축의 얼굴을 설계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이제 입면에서 건축가의 철학을 읽어내고, 건물의 디테일을 통해 그 삶의 수준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조망을 디자인한다는 것

외관과 함께 붙어다니는 것이 바로 조망(view) 이다. 하이엔드 주거에서 조망은 자연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방식이며, 그것은 공간이 사용자에게 제안하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시티뷰는 여전히 프리미엄 요소로 작용하지만, 점점 더 많은 건축가들은 **‘조망을 채택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큰 창 하나로 만들어지는 ‘액자 같은 풍경’, 조경을 활용해 창 너머의 시선을 통제하거나, 프라이버시와 채광을 동시에 고려한 창호 비례 설계 등은 모두 건축적으로 조망을 다루는 전략이다.예를 들어, 일부 고급 주택은 파사드에 리듬감 있는 수직 루버를 배치하여 낮에는 햇살을 받아들이고, 밤에는 실내의 온기를 외부에 은은하게 전달한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 요소를 넘어서, 외부 환경과의 감각적인 소통을 유도하는 건축적 장치이자, 내밀함과 개방감 사이의 절묘한 균형이다. 고급 주거의 조망은 이제 더 이상 “얼마나 멀리 보이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자연과 마주하는가”로 해석되고 있다.



건축가의 철학이 머무는 집

건축은 삶의 철학을 공간에 투영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제, 하이엔드 주거 사용자들은 그 철학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다. 글로벌 하이엔드 주거 시장에서는 이미 ‘건축가의 작품’을 사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장 누벨(Jean Nouvel)은 자연광과 도시 경계를 다루며,

켄고 쿠마(Kengo Kuma)는 재료의 촉감과 지역성,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은 구조와 도시 맥락의 균형을 다룬다.


그들이 설계한 주거 공간은 단순한 고급 아파트가 아니라, 예술적 철학이 깃든 삶의 그릇으로 작동한다.

국내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 등 주요 하이엔드 단지에는 조병수, 신승수, 민현식, 이정훈 등의 건축가가 참여해 ‘건축가 설계 단지’라는 새로운 가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글로벌 건축가의 국내 프로젝트 참여도 활발해지고 있다. 리처드 마이어의 더 팰리스 73, 장누벨의 갤러리아 포레, UN studio의 오티에르 용산, 헤더윅 스튜디오의 여의도 재건축, 도미니크 페로의 펜디 까사 등. 이제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과 같은 레지던스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자체로도 고유한 차별점이 되고 마케팅 포인트가 되는 것을 보면 사용자 입장에서도 감도 높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고 공간의 외형뿐 아니라 그 철학까지도 자기 취향의 일부로 끌어안고자 하는 성향이 짙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들은 더 이상 브랜드보다 디자이너의 철학과 태도를 선택 기준으로 삼고 있다. 건축은 이제 단지 ‘누가 지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삶을 제안하는가”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17-1.jpg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에 참여한 펜디 까사


하이엔드 주거에서 외관과 조망은 단지 시각적인 요소를 넘어 사용자의 취향과 태도를 반영하는 감도의 언어로 발전하고 있다. 건축가의 손끝에서 설계된 파사드의 비례, 창 너머로 열리는 조망의 깊이등은 모두 거주자의 일상을 지배하는 정서적 장치가 된다.

그리고 지금의 사용자들은 이러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단지 고급스러운 외형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깃든 건축가의 시선과 제안된 삶의 철학을 선택한다. 마치 한 권의 책을 고르듯, 한 점의 예술을 수집하듯,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는 건축적 레벨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제 고급 주거는 면적과 입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삶을 상상하게 만들었는가, 얼마나 감각적인 환경을 제안하는가, 그리고 그 설계에 담긴 태도가 얼마나 정제되었는가가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하이엔드 주거는 결국 좋은 건축에서 시작되어 좋은 삶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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